박철민, '커튼콜'의 희노애락 영화 <커튼콜>에서 철구 역의 배우 박철민이 6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철민은 일종의 '치트키'같다. 장르 불문하고 그는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고 캐릭터의 입체감을 품을 줄 아는 배우다. ⓒ 이정민


영화 <커튼콜> 속 박철민이 실제로 눈물을 보였던 순간 기자간담회 일부가 술렁거렸다. 근 30년 차 배우가 "캐릭터에 현재 본인의 고민이 묻어있나"라는 질문에 답하다 감정이 복받쳤다. 여러 해 그를 봐왔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일까. <커튼콜> 개봉 직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참 죄송하고, 수치스럽고, 어떤 사진은 또 대성통곡하는 것처럼 찍혀서 참 그렇다"며 "근데 이것도 내 모습이잖나"라고 웃어 보였다.

이처럼 <커튼콜>은 그를 포함한 국내 모든 연극배우의 애환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작품이 무겁거나 진지하기만 한 건 아니다. 에로 연극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는 배우들이 정극 <햄릿>에 도전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작품. 박철민은 배우를 꿈꿨지만, 과거 트라우마 때문에 연극 제작자로 일하고 있는 철구 역을 맡았다.

애드리브의 달인이라고?

박철민, '커튼콜'의 희노애락 영화 <커튼콜>에서 철구 역의 배우 박철민이 6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기가 하고 싶어 극단을 전전한 적이 있다는 박철민. 연기를 향한 그의 열정만큼은 'A급'이다. ⓒ 이정민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그리고 연극무대까지 종횡무진 하는 박철민은 매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덧씌워진 이미지와의 싸움이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코미디에 능한 배우라는 수식어는 좋지만, 굳어진 그 이미지가 때로는 그의 연기에 벽이 되기도 했다. <커튼콜> 속 철구가 던지는 대사 "쉭~ 요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역시 그 입장에선 우려가 있었다. 실제 그가 출연한 전작 <목포는 항구다> 대사를 차용한 건데 자칫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지만 감독과 상의 끝에 수용했다. 이처럼 한 마디의 대사에도 박철민의 고민이 담겨 있다.

"(웃음) 그날 눈물은 참…. 왜 그랬을까요. 애드리브가 주는 장점을 알고, 제가 사랑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대중에게 지적받는 부분도 바로 그것이라. 그 과정을 겪고 가슴앓이했던 게 겹쳐져서 그런 거 같아요. 과장하는 것도 연기의 한 축이고 절제하고 생략하는 것으로도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과정이 생각나서 눈물이 난 거 같네요. 예전의 제 생각만 고집했으면 아마 안 울었을 겁니다.

<커튼콜> 속 철구는 배우를 꿈꿨지만, 무대만 올라가면 대사를 까먹는 일로 제작자를 하는 친구예요. 연기를 너무 하고 싶어 하는 철 지난 개그맨이죠. 저와 매우 비슷해서 (출연에) 고민도 많았죠. '쉭쉭!' 그 부분도 원래는 다른 대사였는데 바뀌었죠.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제 연기 인생이 투영되는 부분이라 진솔하게 표현해야 했습니다(웃음)."

 영화 <커튼콜>의 한 장면. 코믹이 감동으로 전환되는 데 그 흐름이 꽤 자연스럽다.

영화 <커튼콜>의 한 장면. 코믹이 감동으로 전환되는 데 그 흐름이 꽤 자연스럽다. ⓒ ㈜모멘텀엔터테인먼트


그와 닮았다는 부분은 바로 연기에 대한 열정. 박철민 역시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너무도 하고 싶어 극단을 전전했고, 현재까지 연기자를 하고 있다. "어쨌든 행복을 느끼는 일을 이 나이에도 하고 있고, 나의 장단점을 볼 줄 아니까 참 다행이지 않나?"라며 그가 되물었다. 이 말이 진중하게 느껴진 이유는 그가 결코 전작들을 '좋은 환경'에서 '배려받으며' 해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비롯해 삼성 반도체 백혈병 투병 직원의 이야기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 등 투자가 어려웠던 저예산 영화에서 그는 몸으로 부딪히고 혼을 던졌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티켓파워가 좀 있고, 흥행력이 있으면 더 도움이 될 텐데"라는 미안함을 애써 밝힌다.

고향과도 같은 무대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말 그대로 '감초' 역할을 할 때도 있었고, 분량이 다소 늘어 주·조연으로 활약할 때도 있었지만, 박철민은 "그래도 무대가 내 연기의 고향"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코미디 연기로 대중에게 주목받으며 잠시 흔들렸던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는 업계에서 '치트키'(게임을 유리한 상황으로 이끄는 특수 문장)와 같다. 혹자는 그의 연기가 단편적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의 무대 연기를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다.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는 벌써 16년째 출연하고 있는 그다.

"연극무대를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제가 지킨다고 지켜질 무대도 아니고, 그 무대가 지금의 날 있게 했죠. 영화 일정을 조정해가면서까지 연극을 하거든요. 관객분들이 박수쳐주고, 신나하는 모습에서 엄청난 에너지와 행복을 얻고 있습니다. 제 SNS에도 쓴 적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오히려 돈을 돌려 드려야 해요. 절 받아주셔서 함께 해주셔서 고마운 거죠. 영화나 드라마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도 연극 무대를 통해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해요. 활동할 힘을 얻고요.

<커튼콜>을 보면 마지막 장면에 가장 작은 역할의 배우부터 나와 인사하잖아요. 실제 연극에서 하는 걸 따온 건데 이게 바로 연극의 매력입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다 루저잖아요. 삶의 무게에 밀리고 밀려서 구석까지 간 사람들입니다. 누가 애초부터 에로 연극을 하고 싶었을까요. 능력이 부족하거나 상황에 밀려서 그리된 것이겠죠. 그런 인물들이 <햄릿>에 도전하고 완주하잖아요. 등수를 매기면 꼴등이나 마찬가지지만 완주했다는 게 중요합니다. 부끄러워 마라! 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한다! 그리고 완주한다! 이런 마음인 거죠."

인생 최고의 커튼콜을 그에게 물었다. 주저 없이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를 꼽았다. "관객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그렇게 좋다"며 "<구르미 그린 달빛> 때는 수염을 뽑아버리고 싶다는 시청자 반응이 그렇게 좋았다"고 재치 있게 말했다. 맡은 연기로 평가받을 때 좋다는 천생 배우였다.

박철민, '커튼콜'의 희노애락 영화 <커튼콜>에서 철구 역의 배우 박철민이 6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기하는 이유를 그는 확실히 알고 품고 있었다. "경력이 쌓일수록 더 겸손해지고 노력해야 한다"며 그는 자신을 '비급배우'라 정의했다. ⓒ 이정민


B급 배우

여기서 그의 일상생활을 잠시 엿보자.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촛불집회에도 바쁜 일정을 제치고 동료 배우들과 광화문을 찾았다. <커튼콜> 100만 관객 돌파 시 촛불 100만 개를 제공하겠다는 공약도 걸었다. "인기에 편승할 생각 전혀 없고, 시국에 맞는 따뜻한 공약을 하고 싶었다"며 제작사와 배우들이 협조해주면 충분히 가능한 공약"이라고 그가 설명했다.

또 그는 사회인야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매년 연말이면 그는 동료 연예인, 야구선수들과 함께 자선 야구 대회에 참여한다. 올해 역시 경기가 열렸고, 3루타를 쳐냈다. "연기보다 야구 잘한다는 아픈 칭찬을 종종 듣는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일상과 일 모든 면에서 건강하게 타인과 공존하려는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일에 대한 자신감은 있다 없다 합니다. 온탕과 냉탕의 반복, 그게 인생 같아요. 연기 말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할까 극단적 생각을 하기도 했고, 영화 <약장수> 땐 난생처음 맡은 악역으로 신나서 지낼 때도 있었죠. 친한 동양철학과 교수가 내년 하반기부터 대운이 온다는데 한번 봐야죠. 근데 그 얘길 3년 전부터 했어요! (웃음) 이 재밌는 연기를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를 항상 생각합니다. 배우는 결국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강퇴 당하는 존재잖아요.

누구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전 길게 오래 가고 싶네요. 침대에서 겨우 일어날 수만 있고, 겨우 말 한마디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일을 마치고 매니저 부축을 받아 집에 올 때 맥주 한 잔 먹고 잠이 들고, 안 깨어났으면 좋겠어요. 스타 배우든 누구든 비슷하지 않을까요. 돈은 좀 안 벌어도 됩니다. 지금보다 많아지면 위험할 거 같아요(웃음)."

박철민, '커튼콜'의 희노애락 영화 <커튼콜>에서 철구 역의 배우 박철민이 6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희노애락을 표현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박철민이 연기의 희노애락을 표정으로 표현했다. ⓒ 이정민


박철민은 자신을 스스로 'B급 배우'라 표현했다. "그 어느 곳보다 B급이 필요한 곳이 바로 여기"라며 그는 "아름답게 늙고 싶고, 그때까지 내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먹먹함이 전해졌다. "애써 내세우지 않아도 조용히 후배들이 뒤에서 박수 쳐주는 그런 연기자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 같다"고 덧붙였다.

"뭐 (박)보검이처럼 선천적으로 선하고 좋은 사람도 있고, 날 때부터 잘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박철민은 어떤 놈이냐? 선한 놈인가 악한 놈인가, 성실하냐 잡놈이냐 물어보면 전 잡놈 같아요. 그렇다고 못된 짓을 하면 안 되겠지만, 모범적이고 매력적인 삶을 내가 살 수 있나 생각합니다. 늘 고민해요. 배우로서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 어떻게 갚을지를. 조금씩 나눠주며 살려고 합니다. 지금 다 공개하기엔 그렇지만 받은 사랑은 그대로 돌려드려야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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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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