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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 최고위원이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 최고위원이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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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12일 오후 1시 8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님, 역사적인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맞은 새날입니다. 간밤에 잠을 잘 주무셨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귀가 매우 간지럽진 않으셨는지요. 인터넷과 SNS에서는 탄핵이 가결된 어제(9일) 오후부터 이 대표님에 대한 이야기로 거의 축제분위기 같았거든요.

아, 새로운 별명까지 얻으셨어요. '런정현'이라고 말이지요. 어느 매체가 한 영상을 올렸는데요, '탄핵안 가결 뒤 혼자 도망가는 이정현 의원'이라고요. 국회인 듯 보이는 건물의 계단을 보좌진인 듯 보이는 사람 몇 명과 함께 빠르게 걸어 내려가는 짧은 영상이더군요. 근데, 앞장을 선 이정현 대표님이 꽤나 잰걸음을 내고 계시긴 하더라고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탄핵안 가결 이후 이정현 대표님은 일약 '전국민적 스타'로 등극하셨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누르고 '이정현 장 지진다'가 포털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고요.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대표님이 가마솥 뚜껑에 손을 대고 자지러질 듯이 웃고 있는 합성사진이나 대표님께서 단식 투쟁할 때 위로 방문했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아래 더민주) 대표님의 사진이 공전의 히트였답니다.

"실천도 하지 못할 얘기들을 그렇게 함부로 해요, 탄핵하자"   

8일 방영된 <KBS 스페셜> '탄핵'의 한 장면.
 8일 방영된 <KBS 스페셜> '탄핵'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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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관련 발언에 대해 번복도 하셨지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요. 한데 어떡합니까. 공영방송 KBS조차 탄핵안이 가결되기 하루 전인 8일 밤 방영한 <KBS 스페셜> '탄핵' 편을 통해 이정현 의원님의 '장 지진다' 발언을 전 국민에게 보도해 버렸는 걸요. 혹시 잊으셨을지 몰라,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하신 그 문제의 발언을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야3당이 임기단축 협상 없다고 했다"는 질문에 대한 긴 대답이었지요.

"그렇게 하라고 해. 국회가 넘겼잖아. 그걸 누가 허락해? 심사해? 허락하고 심사할 일 아니잖아. 국회서 대통령이 임기에 대해서 이제 완전히 내려놓기로 했잖아요. 못 들었어요? 들으셨죠? 못 알아듣습니까? 그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 있어요? 아니, 국회에서 결정을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야당이 그렇게 해가지고 여당하고 협상해서 오늘 그만두게 하든지 내일 그만두게 하든지 그러면 그렇게 결론을... 저하고 '손에 장 지지기' 내기 한 번 할까요? 뜨거운 장에다가 손을 지지기로 하고 그 사람들(야당)이 그거 실천을 하면 내가 뜨거운 장에다가 손을 집어넣을게요. 실천도 하지 못할 얘기들을 그렇게 함부로 해요, 탄핵하자.

지금까지 야당이 여러분들 앞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민과 기자들 앞에 얼마나 실현 못할 거짓말들을 많이 했어요? 거국내각? 자기들이 하자고 했잖아요. (그래놓고) 안 한다고 했잖아요. 야당이 말 바꾸는지 안 바꾸는지 한번 내기 한번 할까요? 교섭단체의 두 당. 새누리당하고 해서 당장 하야하라고 해라, 숫자 많고 다수니 이거 이끌어낼 수 있잖아? 당장 지금 그걸 이끌어내서 관철을 시킨다면 제가 뜨거운 장에다가 손가락을 넣어서 장을 지질게요. 그 사람들 실천 못할 이야기 계속해. 말 계속 바꾸고. 내기한 번 할까? 바꿀지 안 바꿀지." - 11월 30일 국회에서

이 대표님은 이 발언에 대해 '야3당이 임기단축 협상은 없다고 한다'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이후 재차 해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국민들은 분명 "실천도 하지 못할 얘기들을 그렇게 함부로 해요, 탄핵하자"는 말이 귀에 먼저 들어왔을 겁니다.

임기단축 협상을 포함해 야당이 말을 바꾸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겠지만, 다소 흥분한 이 대표님의 긴 발언은 '임기단축 협상'과 '탄핵'. '거국내각'을 모두 포함해 "야당이 실천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 셈이지요. 결국 말이, 언어가 발화되는 순간 그 의미는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이 대표님 역시 그 말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지요.

한 누리꾼이 만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합성 이미지. '손에 장 지지겠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영감을 받은 듯.
 한 누리꾼이 만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합성 이미지. '손에 장 지지겠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영감을 받은 듯.
ⓒ 디씨 주식갤러리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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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아니 천만 이상이라 짐작 가는 SNS 사용자들 중 어제오늘 한 번이라도 접속했던 사용자라면 대다수가 대표님의 패러디 사진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을 제외하고 이 정도 인지도를 획득한 정치인은 아마 드물지 싶습니다.

몇몇 시민들은 의원님이 자리를 비운 의원실 앞까지 진출, '장을 대신 지져드린다'는 편지(?)를 두고 오기도 했더라고요. 한 프로레슬러 해설가이자 작가는 대표님을 도와드릴 용의가 있다고 공개 영상 편지를 보내기도 했고요.

사실 저는, 이제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님께서 보여주신 탄핵안 가결까지의 혁혁한 공로를 감안한다면, 국민들이 오히려 더욱 너그럽게 행동할 때 같거든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대표님께서 대통령 탄핵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촛불민심에 기름을 부어줬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니까요.

'박근혜의 복심'에서 박근혜에 대한 '변치않는 사랑'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8월 11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 초청 오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한 뒤 자리를 안내하는 손짓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현 대표, 박근혜 대통령, 정진석 원내대표.
 박근혜 대통령이 8월 11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 초청 오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한 뒤 자리를 안내하는 손짓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현 대표, 박근혜 대통령, 정진석 원내대표.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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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표는 야당 대표시절 정부 여당을 상대로 정치개혁, 당 혁신, 개헌, 외교, 안보, 통일, 경제, 교육, 과학기술, 복지, 노동, 지역균형발전, 소외그룹 정책 등 국정전반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왔음이 이 자료집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네요. 2008년 7월, 당시에도 '박근혜의 입'이라 불렸던 이정현 대표님께서 한나라당 의원 시절 당시 박근혜 전 대표의 4년간의 발언들을 묶은 <박근혜 어록>을 출간하셨던 때 말입니다. 그때 이 대표님은 '박근혜의 말'에 대해 "항상 일관성이 있다"며 "또 명쾌하고 분명하다. 정제된 단어지만 힘이 있어 보인다"는 총평을 내렸었습니다. 그러면서 위 발언과 같이 국정전반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며 칭송을 아끼지 않으셨죠. 

집권 이후 번역기까지 필요했던 박 대통령의 '총기'는 바뀌었을지언정, 이 대표님은 바뀌지 않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인간 박근혜에 대한 지극한 충심과 사랑 말이지요. 이 대표님이야말로 정치인 박근혜의 복심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지금까지 10년 넘게 박근혜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전 국민에게 자랑한 남자로 등극하시게 됐습니다. 뒤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정치 입문도 그 '사랑'의 힘이었나 싶더군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언론특보를 맡았고, 이후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22번으로 국회에 입성하셨더군요. 요컨대,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박근혜의 선택'을 받고 국회의원 배지를 단 셈이지요. 이후 19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 을에 출마했다 낙선 한 뒤, 박근혜 정권에서 도드라지게 활약한 후 전남 순천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것만 봐도 이 대표님의 정치인생이 얼마나 정치인 박근혜에게 기대왔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오로지 당신의 이름값과 힘으로 배지를 단 적이 없는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VIP 의중"을 전달하기도 하셨죠.

그 외에도 '진박'으로서 대통령 박근혜를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동분서주하셨다는 걸 이제 온 국민이 잘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이제는 탄핵정국 동안 빛나는 '이정현 어록'으로 탄핵안 가결에 일조하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사상 유례 없었던 여당 대표 단식은 물론이고요. 예컨대, 국민들이 공분하고 쓴웃음을 지었던 이런 발언들에 대해서요.

"(대통령 연설문 유출 관련해)"나도 친구 얘기 참고해서 연설문을 쓴다."
"(비박 대선주자에 대해)지지율 10%도 안 되는 사람들이..."
"나보고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 예수 부인한 베드로가 되란 말이냐."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 의혹에 대해) "세월호 때도 거의 900억 원을 금방 모금했다고 한다."
"(탄핵안 가결 하루 전) 지금이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을 중지시켜야 한다."

박근혜를 배신할 것인가, 촛불민심을 배신할 것인가

 광화문광장 촛불집회를 주도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게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동참을 요구하며 꽃을 전달하자, 이를 뿌리치며 거절하고 있다
▲ 퇴진행동, 탄핵 동참 꽃 전달.... 거절하는 이정현 광화문광장 촛불집회를 주도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게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동참을 요구하며 꽃을 전달하자, 이를 뿌리치며 거절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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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제 책임이고, 제가 당연히 책임을 질 것이다."
"국민 여러분께 여당 대표로서 정말 죄송하고 용서를 구한다."
"12월 21일에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는데,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
"당 조직에 공백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만 마련하고 나서 오는 21일 이전에 물러날 용의가 있다."

어제(9일) 탄핵안 가결 이후 가진 새누리당 최고위원단 긴급회의에서 하신 발언들을 요약해 봤습니다. 역시 '박근혜의 남자'답습니다. '즉시 사퇴'는 안 하셨더군요. 용감하십니다. 대신 '당의 공백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란 표현을 두고 말 들이 많았습니다. 여전히 '친박'이 박 대통령을 위해 여당 내 지분을 행사하겠다는 메시지로 읽은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거든요. 9일 방송된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와 '비박계' 황영철 의원 역시 그런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방송을 못 보셨을 것 같아 길지만 대신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정현 대표 발언도 오늘 보니까 '수습을 위한 최소한의 어떤 조건만 마련되면 물러나겠다' 하는데. 정말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얘기한 그게 뭘까 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끊으려고 하는 어떤 비대위, 이거는 못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저는 읽었어요.

그래서 그 싸움이 박근혜 대통령이 일일이 이렇게 지시하거나 개입하지 않아도 지금 친박 쪽에서 자동적으로 최소한 박근혜 대통령과 내놓고 끊으려는 사람들에게 비상대권을 넘겨줄 수 없다, 조기 대권을 앞두고. 이게 확실한 것 같아요. 그게 지금 향후의 새누리당의 내부수습 또는 혁신, 재창당을 가로막는 제일 큰 변수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에요." (유시민 작가) 

"그런데 저희는 오늘의 투표 결과는 결국은 '이정현 대표의 리더십은 더 이상 없다'라는 것이 오늘 표결에서 나온 거라고 보고요. 저는 이번 주말 사이에 이정현 대표가 결단을 내려야 된다고 보고 있어요. 우리 새누리당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야당의 경우는 유력한 대선후보들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그렇게 큰 변화를 예고하지 않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저희 새누리당은 지금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서 시작해야 되거든요. 그러면 이 새로운 집을 지어가려면 우리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는데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아요. 그래서 '하루 빨리라도 빨리 시작할 수 있게 해야 된다. 그 결단을 이정현 대표가 하게 해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황영철 의원)

굳이 '장을 지지는 퍼포먼스'를 벌일 필요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그리 야박한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대신 국민들도, 새누리당 내에서도 대표님의 결단을 바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이네요. 물론, 계속 '박근혜의 남자'로 남는 것을 선택하실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배신의 정치"를 철저하게 비판한 평소 대표님의 소신을 떠올린다면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제야말로 결단과 선택을 하실 시간이 온 것 같네요. '용의자' 박근혜를 배신할 것이냐, 탄핵안 가결을 밀어 붙인 '촛불민심'을 배신할 것이냐 말이지요. 그 실천안은 이 대표님께서 더 잘 알고 있으실 겁니다. 주변에 황 의원과 같은 동료 의원들도 즐비하고요. 부디,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는 '정치인 이정현'으로 남아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태그:#이정현, #새누리당, #박근혜, #배신의정치,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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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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