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자 베스트>의 한장면

<우리 손자 베스트>의 한장면 ⓒ 인디플러그


20대 청년 백수 교환(구교환 분)은 남초 커뮤니티 '너나(너나나나)베스트'의 열혈 유저다. 세월호 피해 가족이나 시위 참가자, 여성 등 눈에 걸리는 무엇이든 조롱하고 비난하는 그는 어느 날 우연히 탑골공원에서 '종북 척결'과 '국가 부흥'을 부르짖는 노인 정수(동방우 분)를 만난다. 극우 단체인 어버이별동대 대장 정수는 자신을 찍던 교환의 카메라를 부수고,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정수는 나름의 애국 운동을 위해 벌이는 갖가지 퍼포먼스에 교환을 동원하고, 교환 또한 이런 정수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면서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둘의 연합 전선이 형성된다.

영화 <우리 손자 베스트>는 온·오프라인의 대표적 극우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와 '어버이연합'을 보란 듯이 풍자하는 작품이다. '헬조선'을 대하는 한 20대 청년과 70대 노인의 인식을 중심에 두고, 사회를 향해 각자 다른 결로 표출되는 이들의 반감을 동일 선상에 놓는다. 이성과 논리가 배제된 채 피해의식과 분노로만 채워진 타자 비판, 그리고 융통성이라곤 없는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국가주의. 교환과 정수가 각자 이어가는 투쟁(?)은 서로 완전히 별개의 것이지만, 그 에너지의 강도 만큼은 이상하리만치 꼭 닮았다.

 <우리 손자 베스트>의 한장면

<우리 손자 베스트>의 한장면 ⓒ 인디플러그


극 중 교환은 게임 사운드를 편집해 만든 "차벽 산성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나레이션으로 경찰과 대치하는 시위대를 희화화 한다. 그런가 하면 팬티 바람으로 잠든 여동생을 몰래 촬영해 너나베스트에 공개해 스타가 된다. 이런 교환의 태도는 마치 잠자리의 날개를 하나하나 뜯어내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면서도 잔인하다. '악의가 없어서' 더 공포스러운 그의 모습은 현실 속 여느 '키보드 워리어'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장수해야 이 정권도 장수한다"는 정수는 '보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꼰대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교환에게 "한겨레? 경향? 오마이? 어디 기자냐"고 다그치는 그에게 진보란 '빨갱이'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매일 아침 국립현충원에서 조깅을 하는 그는 국가유공자로 선정돼 그 곳에 묻히는 게 유일한 바람이지만, "미군에게 몸 팔아가며 우리나라 먹여 살렸다"는 기지촌 출신 숙희(박명신 분)를 두고는 "더러운 주둥이"라고 무시하기 일쑤다.

 <우리 손자 베스트>의 한장면

<우리 손자 베스트>의 한장면 ⓒ 인디플러그


내내 두 주인공을 구제불능의 악당으로 바라보던 영화는 중반 이후 그들 내면의 뼈아픈 상처를 조명하기에 이른다.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은 10대까지만 지옥을 경험한 것 아니냐"며 "그게 엄청 부러웠다"고 말하는 교환. 그리고 "나한테 노인 냄새가 나느냐"며 "차에만 타면 사람들이 피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정수는 비뚤어졌을지언정 관객의 연민을 자아내는 데 일정 부분 성공한다.

결국 <우리 손자 베스트>는 단순히 '헬조선'의 단면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영화가 아니다. 찬바람 부는 이 나라를 살아가는 개개인을 가만히 응시하는 작품이고, 더 정확하게는 헬조선의 주축을 이루는 악당들을 또 다른 약자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온갖 주장과 이념과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 세계에서 완벽하게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없다는 사실. 영화 말미 "내가 찾은 팩트는 바로 나"라며 광화문 광장에서 미친 듯이 춤추는 교환의 모습을 통해 <우리 손자 베스트>가 남기는 메시지다. 오는 8일 개봉.

어버이연합 일베 헬조선 키보드워리어 보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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