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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아 출신의 반성적 진단으로 쓰여진 그의 책이 또 다시 도마에 오르는 양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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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섭(새누리, 부평갑) 의원이 책 '세월호는 왜?'(2015)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관피아를 옹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 의원의 '마녀사냥' 해명이 궁색해지는 부분이다.
정 의원은 '최순실 국조특위'에서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은 노셔도 된다"라고 발언해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공분을 샀다. 그럼에도 정 의원은 사과는커녕 '마녀사냥', '본질호도', '반어법'이라는 말로 억울한 심겸을 전했다.
'부평 주민 비상행동'은 정 의원 사무실 앞에서 '세월호 유족 사과, 의원직 사퇴' 촛불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30년 해양 전문가, 세월호 참사를 분석하다정 의원은 1978년 행시로 공직에 입문했다. 해운항만청·해수부·건설교통부·인천지방해양청장·한국해운조합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정 의원은 책을 통해 '세월호 참사, 천재인가·인재인가'라는 부제로 사건을 파헤쳤다.
그는 세월호 선박 검사 부실, 화물 고박 결함, 선령제한 원인 여부,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 체계, 해경 시스템 부재, 해수부 장관 등 적재적소 인재 시스템 부족, 안전규정 위반 등에 초점을 맞춰 분석했다.
정 의원은 그러나 대통령과 청와대의 재난컨트롤 부재에 관한 분석은 최대한 자제했다. 정 의원은 다음해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책을 둘러보자. 먼저 정 의원은 우원식 의원의 '선령이 30년으로 완화되면서 세월호가 도입될 수 있었다'는 평에 대해 "선령 완화의 전말을 정확히 모르는 분석"이라고 폄하했다.
정 의원은 "2012년 세월호 도입 당시 세월호 선령은 18년이었다. 규정상 선령이 20년 이하면 정부가 막을 수 없다"고 한 뒤 "사고가 없었다면 세월호는 필리핀으로 팔려갈 운명이었다. 청해진해운이 세월호를 시장에 내놓은 건 선령이 아니라 선박구조적인 문제나 운영상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며 정 의원은 "해수부는 국회에 '세월호 사고와 선령은 직접 관계가 없지만 국민감정을 고려해 다시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아마 전 세계에서 과학적 기술적 근거 없이 오직 국민감정만을 고려해 여객선 선령을 제한하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정 의원은 '관피아가 문제인가'는 분석 글에서 "세월호 사건이 난 이후 모든 적폐 출발이 관피아인 것처럼 매도되었다"며 "내가 보기엔 언론이 누군가 희생양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 낸 왜곡인데 시민단체가 불을 지피고 정치권이 부화뇌동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경을 전했다.
그러며 정 의원은 "부정부패는 발본색원해야 하지만 무조건 관료출신의 취업을 막는 것은 넌센스"라며 "세월호 사건을 관피아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를 뒷받침할 만한 논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선장과 구조선 정장이 제 임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을 대통령과 연계하는 것은 비약"이라며 "이건 정치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적 문제로 둔갑시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비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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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섭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세월호 발언'에 대해 해명을 했지만 누리꾼과 지역민들은 '비겁한 변명'이라고 수백개의 댓글로 비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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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 의원이 부록으로 첨부한 세월호 7시간의 기록도 청와대 해명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정 의원 책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일 오전 10시에 박근혜 대통령이 첫 지시를 했다고 언급됐다. 그러나 청와대의 대통령 첫 지시 시간은 오전 10시 15분으로 확인됐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중대본을 첫 방문한 시각을 오후 5시 30분으로 정 의원은 언급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오후 5시 15분에 대통령이 방문해 "많은 승객들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음, 생존자를 빨리 구출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당시 세월호는 이미 오전 11시 18분에 선수만 남긴 채 완전히 침몰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