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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의 여자 계나가 호주로 떠난다. 호주 시민권을 따서 정착하겠다는 계획이다. 태어나 오늘까지 3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이 나라를 떠나 말도 사람도 생소한 곳에서 살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그녀에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계나가 처한 상황을 글로 옮겨놓고 보면 그리 나빠 보이지만은 않는다. 서울 시내 이름 있는 대학교를 나와 3년 동안 금융회사에 근무했고, 누구 말만 따나 부잣집 아들에 예의 바르고 목표가 뚜렷한 남자친구도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녀는 한국을 떠나려고 하는 것일까.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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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그 도발적인 제목에서부터 계나가 이 나라를 떠나는 이유를 분명히 한다. 자, 계나의 말을 들어보자.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맨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11p

계나가 보기에 자신은 톰슨가젤 같은 존재다. 사자 같은 맹수로부터 '걸음아 날 살려라' 늘 도망치지만, 그래도 몇은 언제나 잡혀먹히는 그런 동물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젤은 사자를 잡아먹을 수 없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계나가 사자가 될 일은 없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그래서 계나는 부모와 형제와 사랑하는 남자를 한국에 둔 채 새로운 터전으로 향한다. 그곳에선 적어도 대책없는 가젤은 되지 않으리라 믿고서.

이민을 생각하기 전에 계나는 은퇴 후의 삶을 자주 상상했다. 쉰 쯤에 은퇴하고 제주도로 내려가서 간소하면서도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삶 말이다. 계나가 은퇴 후의 삶을 상상하는 대목을 읽으면 계나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쯤 되면 상추 같은 작물을 텃밭에 키우고 싶기도 해. 생각해 봐라? 집에서 물을 주는데 이 물 주는 애들이 열매를 맺어. 되게 좋지 않아? 귀농이 어렵다지만 그건 사업으로 하려니까 힘든 거지. 하루에 20~30분 허리 굽히고 땅을 조금 갈아 준다거나 하는 일이 전부일 텐데 그게 그렇게 힘들까. 그런 건 할 수 있어. 그리고 수영을 배워서 물 속에서 막 자유롭게 슉슉 다니고 싶어. 수영장에서 턴 찍고 인어 공주처럼 잠수도 오래 하고. -15p

저마다 삶은 다른 모양이라지만 계나가 그린 삶은 상상 밖에선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다. 하루에 20~30분 소일거리로 일을 해서 텃밭을 유지하는 것이나 수영을 배워 물 속에서 자유롭게 슉슉 다니는 일 따위는 실제론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텃밭에서 작물을 키우는 데도 고생이라 할 만한 노력이 들어가고 물 밖에서 인어처럼 자유로워 보이는 물질도 물 안에 든 사람에겐 단내나도록 몸을 움직여야 하는 노동이니까.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계나의 시각이란 대체로 순진에 가까운 무지와 막연한 기대에서 출발한 듯 보인다. 그래서일까. 호주까지 떠나온 그녀지만 치밀한 준비나 무모한 열정 같은 걸 찾아보긴 어렵다. 그저 한국이 싫었고 도저히 이 곳에선 못 살겠어서 떠나왔을 뿐이다. 그녀 스스로가 말하듯 호주행은 자신의 신분을 한 단계 높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쪽을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적자생존의 정글이자 주인이 따로 있는 거대한 축사 가운데서 스스로 도태되지 않기를 선택한 한 마리 톰슨가젤의 도피인 것이다.

소설은 계나가 호주에서 겪은 일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동양인 여자로 호주 사회 맨 밑바닥부터 한 단계씩 나아가는, 그리 순조롭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실망스럽지도 않은 나날이 그녀 앞에 펼쳐진다. 한두 차례 가진 돈을 모두 잃고 범법자가 될 위기에도 처하는데 놀라운 건 이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170p

계나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끝에 시민권을 취득한다. 하지만 극적인 변화 같은 건 이뤄지지 않는다. 변화래봐야 웨이트리스 대신 직원이 50명쯤 되는 작은 회사에서 회계 겸 총무를 맡은 것 정도? 수입은 웨이트리스로 일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어떨까. 오후 4시에는 칼같이 퇴근해 자기만의 삶을 꾸릴 수 있고, 1년에 1달쯤은 휴가가 보장된다. 집을 살 때나 자식을 대학에 보낼 때, 큰 병에 걸리거나 할 때는 나라에서 보조금도 지급된다. 소설 초반부 한국 금융회사에 다닐 때와는 비교조차 불가하다. 토종 한국인 대신 한국계 호주인이 된 계나의 선택은 얼마나 합리적인가.

호주에서의 평범한 삶이 한국에선 웬만한 노력으론 다다를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독자 모두가 안다. 야근과 주말출근이 일상이고, 피말리는 경쟁 끝에 도태되거나 끝까지 견디려다 병에 걸려 낙오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게 한국의 현실아닌가.

<한국이 싫어서>는 한국인이길 포기하고 대안을 찾아 떠난 계나의 선택이 그 평범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현명한 것인지를 절감하게 한다는 점에서 울림이 있다. 대체 한국은 얼마나 비정상적인 나라이며, 한국인은 얼마만큼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인지.

애국가 가사 알지? 거기서 뭐라고 해? 하느님이 보우하는 건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고. 나는 그 나라를 길이 보전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야. 호주 국가는 안 그래. 호주 국가는 "호주 사람들이여, 기뻐하세요. 우리들은 젊고 자유로우니까요."라고 시작해. 그리고 "우리는 빛나는 남십자성 아래서 마음과 손을 모아 일한다."고, "끝없는 땅을 나눠 가진다."고 해. 가사가 비교가 안 돼. -171p

소설 말미에서 계나에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어떤가. '아직도 목소리 큰 게 통하는' 원칙 없는 나라, '워홀러와 유학생과 교민으로 갈라져'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게시판 풍경. 이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이다.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니고 누구와 싸워 이길 자신도 없는 계나는 처음부터 한국과 맞지 않는 것이었을까?

물론 호주가 완벽한 나라인 건 아니다. 계나가 아무리 노력해도 저들처럼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없다고 느끼듯, 호주에서 계나가 호주인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적어도 한국에서처럼 서로 치고 치이며 지칠대로 지쳐서 미래를 걱정하게 되는 불안은 훨씬 덜할테니까.

이야기의 끝에서 계나가 바라게 되는 건 행복이다. 사자에게 잡아먹힐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얻은 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 그게 바로 행복이다. 어쩌면 이 소설이 묻고자 하는 게 바로 이것일지 모른다. 치열한 싸움에서 이겨 남보다 우위에 선 것으로 만족하고 살거나, 감히 한국 밖에서의 삶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반복해 살아내거나. 행복은 이 같은 사람들로 가득한 나라에선 감히 꿈꾸지도 못할 감정이 아니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계나는 한국에서 한국을 바꾸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톰슨가젤 수백마리가 연대해도 감히 사자에 맞설 수 없으니, 약육강식의 땅을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손에 넣겠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녀의 선택이 틀렸을까? 사자와의 싸움, 톰슨가젤들의 연대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계나의 삶을 비교해보면 과연 계나의 선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연대해 싸우기를 선택한 수많은 활동가들이 감옥에 가고 수억 원의 돈을 배상해야 할 처지에 놓이는 게 이 나라다. 계나의 말처럼 이 나라 정부는 결코 약한 구성원을 보살피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독자가 내릴 수 있는 답은 무엇일까. 계나처럼 탈출하거나 한국에 남아 침몰하거나, 둘 중에 하나 뿐인 것일까. 제2, 제3의 계나가 한국에서 행복해지는 건 영영 불가능한 걸까.

이 책을 읽고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 생각이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싫어서 / 민음사 / 장강명 지음 / 2015. 05. / 13000원>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지음, 민음사(2015)


태그:#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장강명,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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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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