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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찬성 새누리당 국회의원 수 : 총 41명 (탄핵찬성 전체 213명)
 박근혜 탄핵 찬성 새누리당 국회의원 수 : 총 41명 (탄핵찬성 전체 213명)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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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권성동, 김무성, 김성태(서울 강서구을), 김세연, 김영우, 김재경, 김학용, 김현아, 나경원, 박성중, 박인숙, 신보라, 심재철, 안상수, 오신환, 유승민, 유의동, 이은재, 이종구, 이철규, 이학재, 이현재, 이혜훈, 장제원, 정양석, 정용기, 정운천, 주호영, 하태경, 홍문표, 홍철호, 황영철 의원님!

<오마이뉴스> 정치팀장 손병관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뤄질 오늘(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만나게 될 의원님들의 이름을 제 나름대로 헤아려봤습니다.

이중에서 20대 국회가 열린 이래 국회에서 마주쳤을 때 명함을 건네며 직접 인사를 드린 분이 14명이더군요. 나머지 의원님들께는 5개월이 넘도록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한 점,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출입기자로 처음 발령받은 것이 2004년 6월 17일이었습니다. 정말 싫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오마이뉴스>가 당시 당 대변인이었던 전여옥 의원의 베스트셀러 <일본은 없다> 표절 문제를 처음 보도한 날이었습니다. (관련기사: "감옥갈 각오로 '표절' 진상 밝혀낼 것")

"진보 매체라도 <오마이뉴스>는 인정해주겠다"던 대변인은 그 기사가 나오자 태도가 표변했습니다. "<오마이뉴스> 보도는 허위 비방"이라는 브리핑을 마친 뒤 국회 2층 옛 기자실 앞에서 저를 향해 "당신도 고소당하고 싶냐?"고 눈을 부라리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저는 보도 직후부터 누가 거짓말쟁이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대법원이 대중들에게 "전씨가 표절한 게 맞다"고 최종 판정을 내리는 데는 8년에서 정확히 1개월이 빠지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2012년 5월 18일). 그러나 한나라당은 1심 재판에서 패한 전씨에게 2008년 공천까지 줘가며 그를 싸고 돌았습니다. 다시 4년 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을 때는 이미 전씨의 의원 임기가 열하루 밖에 안 남은 터라 '의원직 사퇴'로 책임을 요구할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재보궐선거일인 2005년 4월 30일 저녁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당사에 마련된 종합상황실에서 나서며 전여옥 대변인에게 `수고했다`며 치하하고 있다.
 재보궐선거일인 2005년 4월 30일 저녁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당사에 마련된 종합상황실에서 나서며 전여옥 대변인에게 `수고했다`며 치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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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004년으로 돌아가서, '전여옥 사건' 당시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전씨를 대변인으로 계속 중용하는 박근혜 당시 대표와 한나라당 지도부였습니다. 전여옥 사건은 보수와 진보의 정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일본은 없다> 책의 아이디어를 도용당한 작가 유재순씨와 전씨를 모두 아는 일본의 한국인들은 책이 출간된 직후부터 사건의 실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사람들이 그 정도도 몰랐을 정도로 정보에 어두웠다고 보지 않습니다. 전씨의 허물을 눈감아준 사고방식의 본질은 '보수 전여옥은 내 편이고, 진보 <오마이뉴스>는 저쪽 편'이라는 진영논리였겠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제가 출입하는 한나라당에 좀처럼 정이 들지 않았습니다. 한나라당의 다른 의원들, 전 의원보다 훨씬 도덕적이고 숭고한 이상을 실천하려는 의원들을 만나면서도 "왜 이런 분들이 전여옥 문제에는 침묵할까"라는 답답함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분들과도 크고 작은 갈등을 감수하며 비판적인 기사들을 많이 썼습니다. 2008년 10월 출입처 조정으로 국회를 떠날 때까지 '말 안 통하는 보수, 꽉 막힌 보수'라는 저의 선입견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016년 6월 13일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저는 후배 기자들을 지휘하는 팀장으로 국회에 돌아왔습니다.

일단 낯 익은 얼굴들이 많아서 기뻤습니다.

2002년 이회창 총재 때부터의 '악연'으로 저에게 고운 눈길을 별로 안 주셨던 김무성 전 대표님. 2006년 서울시장 후보 대변인, 2007년 대선후보 대변인 시절 제가 쓴 기사들 때문에 번번이 난처한 입장에 몰렸으면서도 전화를 하면 쿨 하게 받아주셨던 나경원 의원님.

2004년 영등포구 염창동 당사 기자실까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찾아와 제가 쓴 기사에 항의하고, 기사를 고쳐주지 않아도 '밥 한끼 먹자'고 넓은 마음씀을 보여주셨던 심재철 의원님.

2007년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국회의원만 아니라면 'MB 대운하 반대' 시민운동이라도 하고싶다"는 결기를 보여줬던 이혜훈 의원님. 2004년 국회의원이 된 뒤 "정치 입문 37년 만에 국회 들어왔는데 내 고장 충청도를 위해 뭔가 해봐야겠다"고 하시던 홍문표 의원님. 그리고 크고 작은 기사 뒤에 얽힌 복잡한 사정 때문에 아직은 이름을 쓸 수 없는 많은 의원님들. 그분들을 보니 너무 반가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는 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비상시국위원회 위원들이 회의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박인숙, 권성동, 유승민, 정병국, 김재경, 김영우, 김학용 의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는 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비상시국위원회 위원들이 회의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박인숙, 권성동, 유승민, 정병국, 김재경, 김영우, 김학용 의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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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기분이 들까 곰곰 생각해봤습니다. 일단 제가, 저의 날선 세계관이 좀 변했더군요.

30대 기자 시절의 저는 새누리당을, 그 당을 지지하는 분들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비친 보수정당 새누리당의 이미지는 이랬습니다.

강자에게 설설기고 약자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보수.
"그래도 북한보단 낫잖아"라며 권위주의 통치를 두둔하는 듯한 보수.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정치판에서 자기 몫이나 챙기려는 보수.

12년 전에는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정도를 빼고는 말을 먼저 건네고 싶은 분들이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때로 시계바늘을 되돌린다고 한들 이런 보수에 정을 붙일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어느 덧 40대 기자가 된 저는 "그럼에도 보수와의 대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습니다. 불가측의 혁명보다는 개량과 개혁이 훨씬 어렵고, 국민의 대표자들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해야한다는 사명감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 저에게, 2004년 새누리당을 탄핵 역풍으로부터 구해낸 '박근혜 신화'의 탄생을 지켜본 저에게 최근 두 달간 이어진 '최순실 게이트'는 만감을 일으킵니다.

30대의 손 기자는 타이타닉처럼 침몰하는 보수를 조롱하는 기사 쓰기에 열을 올렸을 지도 모릅니다. 40대의 손 팀장은 대한민국을 이끄는 한 축인 보수가 속절 없이 무너지는 모습에 말할 수 없는 갑갑함을 느낍니다.

2007년 이명박, 2012년 박근혜를 연거푸 대통령에 당선시키며 '보수불패'의 신화를 써내려가는 듯했던 새누리당의 '좋은 시절'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40대의 손 팀장은 30대에 노무현 정부의 영욕을 지켜본 손 기자에게 "얕잡아보지 마라. 상대를 우습게 보는 순간 네가 우스워진다"고 타이릅니다(이것은 진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제1당을 예상하지 못했던 20대 총선의 민의는 '겸손, 또 겸손'을 속삭입니다).

그러나 보수의 미래를 기약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 4년의 적폐와도 결별해야 합니다.

바른 말 하는 당정의 인재들을 다 내치고 베일 뒤의 측근 말에만 '오냐오냐' 했던 무능한 지도자.
일신의 처벌이 두려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낱낱이 밝힐 용기가 없는 무책임한 지도자.
그리고 '세월호 7시간 동안 뭘 했냐'는 물음에 "굿은 안 했다"는 동문서답을 내놓는 불통의 지도자.

감히 내놓고 얘기 못하지만 '친박 중의 친박' 이정현 대표조차 박 대통령의 '꽉 막힌 리더십'을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국회 탄핵안 표결은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 순간은 차라리 '보수답지 않은 보수'에게 결자해지의 기회를 주려는 국민들의 마지막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글 시작에 언급한 34명의 새누리당 의원님들은 그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의원님들이 전선을 이탈하지 않아야 님들보다 앞날을 확신 못하는 동료 의원 10, 20명도 마음을 다잡게 될 것입니다.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민원실에서 시민들이 TV 모니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기자회견을 열어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에 대해 "이번 최순실씨 관련 사건으로 이루말할 수 없는 큰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헌신적으로 뛰어주셨던 정부의 공직자들과 현장의 많은 분들, 그리고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지켜보는 시민들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민원실에서 시민들이 TV 모니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기자회견을 열어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에 대해 "이번 최순실씨 관련 사건으로 이루말할 수 없는 큰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헌신적으로 뛰어주셨던 정부의 공직자들과 현장의 많은 분들, 그리고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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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의원님들은 12년 전 '전여옥 사건'을 수수방관하시며 저에게 '작은 실망'을 안겨주셨습니다. 상식과 정도를 믿는 많은 이들은 지금도 그 사건을 떠올리며 '표절한 사람이나, 그런 사람에게 공천을 준 정당이나'라며 비꼽니다. (많은 이들이 최근 전씨의 박근혜 공격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도 결국에 냉소를 보내는 이유도 그의 이중성에 대해 저와 동일한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이겠죠)

물론. 12년 전 제가 느낀 실망은 전씨가 모셨던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이 돼서 저지른 잘못에 비해서는 터럭처럼 작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국민에게 '큰 실망'을 주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려되는 것은, 박 대통령을 보수 전체의 운명공동체 비슷하게 보는 시선입니다. 그러나 역사가 주는 교훈은 정반대입니다.

미국의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자신을 수사하는 특별검사를 해임하면서까지 자리를 지키려고 했지만,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공화당 의원들은 반칙과 꼼수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공화당은 민주당과 합세해 탄핵안 발동을 불사하면서까지 그를 권좌에서 쫓아냈습니다. 공화당은 2년 뒤 지미 카터의 민주당에 정권을 내줬지만 그렇다고 몰락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4년 뒤에는 정권을 되찾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닉슨을 쫓아낸 연방 의원들을 '헌법의 수호자'로 추켜세울지언정 그들에게 '배신자'의 낙인을 찍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합리주의 기풍을 높이 평가해온 새누리당 의원님들의 선택은 너무나 자명하지 않습니까?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 3시 국회 본회의장 입구 로텐더홀에서 뜨겁게 만나길 바랍니다.


태그:#박근혜, #탄핵, #전여옥, #새누리당, #탄핵소추안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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