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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나 방관자도 아니지만 투사도 아니다. 그런 내가 지금 광화문광장에서 잠을 자고 눈을 뜨면 현장의 모습을 담으며 기록하고 있다. 사명감이 충만해서도 아니다. 내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만큼은 정직하기를 원해서다. 내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은 보편적인 신뢰가 바탕이었으면 싶어서다.

대통령의 비선실세가 있다는 주장들이 진작부터 세간에 떠돌았다. 그러나 이는 대통령을 음해하려는 세력들의 여론조작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곧장 대통령의 입을 통해 "유언비어 엄단"이라는 발언이 뉴스를 통해 퍼졌다. 결국 JTBC의 특종으로 최순실이 사용한 정황이 유력한 태블릿PC에 담긴 문건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대통령이 3회에 걸친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광화문에서 노숙하게 된 이유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촛불시위가 가능하게 된 12월 3일의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는 11월 29일 있었던 박근혜의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모든 걸 내려놓고, 국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이는 정치권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꼼수며, “사심없이”라는 말을 통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판단으로 전국에서 232만명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민이 나섰다. 이날 청와대 앞으로 향해 세월호 유가족들이 행진하고 있다.
▲ 청와대 앞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촛불시위가 가능하게 된 12월 3일의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는 11월 29일 있었던 박근혜의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모든 걸 내려놓고, 국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이는 정치권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꼼수며, “사심없이”라는 말을 통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판단으로 전국에서 232만명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민이 나섰다. 이날 청와대 앞으로 향해 세월호 유가족들이 행진하고 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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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부터 7일까지 사흘간 광화문에 들렀다가 며칠 철원엘 다녀온 뒤 11월 12일엔 광화문광장에서 100만 인파와 함께 외쳤다. 그리고 다음 날 양산시에 있는 지인의 연락을 받고 잠시 들렀다 15일 서울로 왔다. 이때까지 광화문캠프촌에서 노숙까지 할 계획은 없었다.

17일 광화문광장으로 나오기 전 숙소에서 "촛불은 촛불일 뿐 결국 바람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는 강원도 춘천시를 지역구로 한 김진태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발언을 확인하게 됐다. 김진태는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순실 특검법'과 관련해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촛불에 밀려 원칙을 저버린 법사위 오욕의 역사로 남게 될 것"이라며 3차 촛불시위에 100만이 모인 것을 거론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얼른 집으로 가요."

그렇지 않아도 주말이면 광화문으로 향하는 모습을 달갑잖게 여기는 지인들의 말을 들으며 슬슬 저항심리가 발동하던 터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17일까지 숙소를 예약해 두었고, 이미 12일 숙소를 잡기 어려웠던 경험으로 날이 밝으면 강원도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광화문캠프촌에 우선 며칠 머물기로 했다. 애초 무기한 노숙은 계획하지도 않았다.

사람은 하지 말라고 말리면 더 하게 된다. 결혼도 말리면 어떻게든 하려고 발버둥 치지 않던가. 그런데 며칠 머물다 떠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던진 말, 그리고 같은 강원도를 연고지로 한 국회의원의 망발엔 나도 모르게 "끝까지 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예정에 없던 장기 노숙은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처음 얼마간이야 입에 맞는 음식을 먹으려 식당을 찾아다니기도 했으나 이 또한 사치란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혼자만 식사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며칠 식사비가 한꺼번에 지출되다보니 주머니 사정부터 걱정하게 됐다.

추위와 밤새 씨름해야 하는 광화문광장 캠프촌에서 생활하다보면 뜨거운 국물 생각이 간절하다. 설렁탕과 수육을 전문으로 하는 풍년옥을 광화문광장 근처 골목에서 찾아낸 순간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뜨거운 국물에 밥과 국수, 파를 넣어 내는 풍년옥의 설렁탕엔 김치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게 제공된다.
▲ 풍년옥 추위와 밤새 씨름해야 하는 광화문광장 캠프촌에서 생활하다보면 뜨거운 국물 생각이 간절하다. 설렁탕과 수육을 전문으로 하는 풍년옥을 광화문광장 근처 골목에서 찾아낸 순간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뜨거운 국물에 밥과 국수, 파를 넣어 내는 풍년옥의 설렁탕엔 김치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게 제공된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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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시절 고기국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양을 어떻게든 더 보충하려는 생각으로 계란 하나 더 넣고 깍두기국물까지 듬뿍 부어 양을 늘려 먹었다는 이야기를 80년대 처음 설렁탕집을 찾았을 때 안내를 했던 분이 말씀하시며 그대로 몸소 보여줬다. 그렇게 배운 설렁탕을 요즘 광화문근처 골목 풍년옥에서 소금과 후추, 다진 양념으로 간을 맞춰 먹는다. 광장에서의 노숙엔 이만한 영양식도 없다.
▲ 풍년옥 설렁탕 가난했던 시절 고기국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양을 어떻게든 더 보충하려는 생각으로 계란 하나 더 넣고 깍두기국물까지 듬뿍 부어 양을 늘려 먹었다는 이야기를 80년대 처음 설렁탕집을 찾았을 때 안내를 했던 분이 말씀하시며 그대로 몸소 보여줬다. 그렇게 배운 설렁탕을 요즘 광화문근처 골목 풍년옥에서 소금과 후추, 다진 양념으로 간을 맞춰 먹는다. 광장에서의 노숙엔 이만한 영양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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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나 화기를 사용할 수도 없는 광장에서 캠프촌에 들어온 포장된 밥은 그림의 떡이다. 날씨가 추워지며 컵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울 수 있다는 말은 거의 단식을 감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렁탕이나 곰탕 한 그릇의 따뜻함을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뜨거운 곰탕국물에 파 넉넉히 넣고 한 수저 떠먹을 때의 그 따뜻하고 달콤한 맛...

낯선 골목을 며칠 헤매 비싼 배추로 담근 김치까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설렁탕집을 찾았을 때의 감동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사람 만났을 때와 같았다. 오죽했으면 광화문에서 종로4가까지 걸어 다니며 설렁탕이나 곰탕집을 찾았을까. 그러다 광화문광장 횡단보도를 건너 뒷골목을 기웃거리다 '설렁탕 풍년옥'이란 간판을 발견하자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다.

허름한 골목은 70년대 풍경이라 해도 그대로 믿겠다. 아마도 이 골목은 87년 6월 항쟁도 지금 모습 그대로 목격했으리라. 그런 생각으로 주인에게 "이 집 언제부터 여기서 했어요"라 물었다.

"30년 됐습니다."

30년 전 그날의 함성을 끝으로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극히 일부에서나 그런 생각을 할 뿐 많은 이들은 여전히 팍팍한 삶들을 영위하고 있다. 맛나게 간을 맞춰 먹는 설렁탕 한 그릇도 마음 편히 먹지 못하는 이들도 세상에 많다는 서글픈 현실만으로도 힘겨운데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에 눈멀어 국민의 피와 땀이 밴 세금으로 자신들의 사치스런 생활을 유지했다. 따뜻한 설렁탕 한 그릇으로도 눈물겹게 고마운 오늘이다.
▲ 풍년옥 설렁탕 30년 전 그날의 함성을 끝으로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극히 일부에서나 그런 생각을 할 뿐 많은 이들은 여전히 팍팍한 삶들을 영위하고 있다. 맛나게 간을 맞춰 먹는 설렁탕 한 그릇도 마음 편히 먹지 못하는 이들도 세상에 많다는 서글픈 현실만으로도 힘겨운데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에 눈멀어 국민의 피와 땀이 밴 세금으로 자신들의 사치스런 생활을 유지했다. 따뜻한 설렁탕 한 그릇으로도 눈물겹게 고마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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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인 1987년 전두환 정권이 굴복한 6월 항쟁. 그때 서울은 어디나 대로에서 몇 발자국만 골목으로 들어서면 이 풍경 그대로였다. 종로는 물론이고 중구도 마찬가지였다. 신당동이나 창신동은 중심가라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과 밤늦도록 소주잔 기울이는 이들로 넘쳐났고, 어디에서나 봉제공장 미싱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때 맛 본 설렁탕 한 그릇 참으로 마음 푸근했다.

광화문캠프촌으로 그동안 소라광장에서 진행되던 주중 촛불문화제가 옮겨왔다. 이른 저녁엔 쉴 생각 아예 접어야 한다.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든가, 어디 조용한 장소를 찾아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

얼음이 맺히는 텐트, 이 나라에도 어서 봄날이 오기를

사람이 호흡을 통해 얼마나 많은 수분을 배출하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아침이면 텐트는 온통 물방울이 맺혀 뚝뚝 떨어진다. 모두 잠 든 몇 시간동안 내가 호흡을 통해 내뿜은 수분이다. 몇 리터의 물을 마셔도 이 정도로 수분을 배출한다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성 싶으나 여전히 밤중에 소변을 보러 찬바람 부는 광장을 가로질러 뛰어야 한다.
▲ 텐트에 맺히는 물방울 사람이 호흡을 통해 얼마나 많은 수분을 배출하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아침이면 텐트는 온통 물방울이 맺혀 뚝뚝 떨어진다. 모두 잠 든 몇 시간동안 내가 호흡을 통해 내뿜은 수분이다. 몇 리터의 물을 마셔도 이 정도로 수분을 배출한다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성 싶으나 여전히 밤중에 소변을 보러 찬바람 부는 광장을 가로질러 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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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을 통해 배출된 수분이 물방울로만 맺히는 건 아니다. 기온이 뚝 떨어지면 텐트는 곧장 바닥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얼어버린다. 아침 세면을 하러 화장실을 가기 위해 텐트 출구를 열 때 얼어붙었던 얼음이 후두둑 떨어진다. 어서 봄이 오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언제가 될지 모를 노숙생활을 한다.
▲ 결빙 호흡을 통해 배출된 수분이 물방울로만 맺히는 건 아니다. 기온이 뚝 떨어지면 텐트는 곧장 바닥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얼어버린다. 아침 세면을 하러 화장실을 가기 위해 텐트 출구를 열 때 얼어붙었던 얼음이 후두둑 떨어진다. 어서 봄이 오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언제가 될지 모를 노숙생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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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캠프촌의 커다란 텐트들은 장비를 보관하는 용도나 회의를 하는 공간으로 이용된다. 개별로 생활하는 텐트는 낮아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옷을 갈아입기도 불편하다. 더구나 밤새 내뿜은 호흡으로 텐트는 하룻밤만 지나면 흥건히 젖어 아침이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호흡을 통해 내뿜은 숨결로 맺힌 물방울은 얼어 텐트 바닥을 제외하고 모조리 이글루로 변한다.

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박근혜 정권이 물러나고, 이를 두둔하고 감싸며 사익을 챙기던 무리들을 모두 단죄하여 이 땅에 오롯이 민의가 바로 서는 봄이 오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이 차디찬 광장에도 봄이 와 가벼운 옷차림으로 활보하며 죄지은 자들을 끝까지 찾아 엄벌하라고 외치기 어렵지 않은 봄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광화문캠프촌, #박근혜 탄핵, #박근혜 국정농단, #풍년옥, #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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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고,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한 다음 이제 행동하라. 시인은 진실을 말하고 실천할 때 명예로운 것이다. 진실이 아닌 꾸며진 말과 진실로 향한 행동이 아니라면 시인이란 이름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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