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 올린 바바리, 그것도 80년대 유행하던 목깃의 컬러가 다른 색으로 된 '나그랑(raglan sleeve)' 스타일의 올드 패션, 그걸 입고 김사부(한석규 분)가 휘적휘적 걸어가면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이어지는 강한 선율의 전자 기타음, 그리고 등장하는 빌리 조엘의 목소리, 바로 <낭만 닥터 김사부>(아래 <김사부>)의 OST 'The stranger'가 드라마와 어우러지는 순간이다.

Well we all have a face That we hide away forever
글쎄요 우리 모두는 영원히 숨기는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And we take them out and Show ourselves
그리고 우리는 그 얼굴을 내밀고 우리 자신을 보여주죠
When everyone has gone
Some are satin some are steel
어떤 얼굴은 악마이고 어떤 얼굴은 철판이며
Some are silk and some are leather
어떤 얼굴은 비단이고 어떤 얼굴은 가죽이에요
They're the faces of the stranger
그것들은 낯선 사람들의 얼굴이에요
But we love to try them on
하지만 우리는 그런 얼굴을 하기 좋아하죠

 <낭만 닥터 김사부>에서 '사람을 살린다'는 원칙 하나를 실현시키고자 고군분투하는 김사부.

<낭만 닥터 김사부>에서 '사람을 살린다'는 원칙 하나를 실현시키고자 고군분투하는 김사부. ⓒ SBS


드라마는 의학계에서 추방된 부용주인 '돌담병원 김사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김사부는 빌리 조엘의 노래 제목처럼 이방인이요,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사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이사장을 모시고 온 강동주(유연석 분)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그를 돌려보내고, 위기의 윤서정(서현진 분)을 대신해 자신의 희생을 자청하는가 싶더니 윤서정을 다시 방에서 내모는 김사부의 진짜 얼굴. 심지어 그를 몰아내려는 도윤환(최진호 분) 등은 그를 사이코패스라고까지 모는 상황. 그의 진심은 더더욱 모호해지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이제 10회를 마친 <김사부>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의 돌담 병원 내 속칭 '사부'처럼, 부용주의 진짜 모습이 '사부'라 믿고 싶어진다. 아니 믿어지게 된다. 왜?

The stranger 김사부

그건 그의 앞뒤 모를 얼굴 때문이 아니라, 상황, 상황, 아니 위기의 상황에서 그가 선택하는 '선의'의 본질에 대한 믿음이 깊어가기 때문이다. 본원의 모략에 의해 돌담 병원에 들이닥친 감사팀은 결국 김사부의 치료 행위를 막는다. 강동주도, 도인범(양세종 분)도 없는 상황에서 김사부는 기꺼이 불법임을 감수하면서도 수술을 감행하려 한다. 박은탁(김민재 분)이 나서서 주먹질을 해보아도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6중 충돌 교통사고 환자까지 들이닥친다.

이 '드라마틱한' 드라마는 바로 그 위급 환자 가운데 병원 감사팀의 딸을 끼워 넣는다. 작위적인 상황, 감사팀은 당황스러워하지만 자신의 직무에 충실해야 하는 고지식한 감사팀장은 자기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김사부는 말한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라"고, 나는 나의 일을 하겠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김사부의 선언, 자신의 일이란 오직 한 가지, '살린다', '환자를 살린다' 뿐이라고.

이사장을 통한 편법적 선의 대신 김사부가 선택한 것은 원칙, 의사로서의 원칙이다. 마치 미담처럼, 김사부는 감사 직원의 딸을 수술을 통해 살려낸다. 당혹스러워하며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 감사 직원에게 김사부가 던지는 한 마디, '못나게 살지는 말자'고.

다른 때와 달리 10회 엔딩 부분, 김사부의 진료실에서 윤서정은 그의 오래된 테이프 하나를 튼다. 거기서 울려 퍼지는 건 신디 로퍼의 'True colors'.

You with the sad eyes
슬픈 눈을 한 당신

don't be discouraged
용기를 잃지 마세요

oh I realize
전 알 수 있어요

It's hard to take couragein a world full of people
사람들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용기를 가지는 건 쉽지가 않죠

You can lose sight of it all
당신은 그 모든 꿈을 잃어버리고

and the darkness inside you can make you feel so small
당신 안의 어둠이 당신을 작게 느껴지게 할수 있어요

But I see your true colors shining through
하지만 나는 당신 안에서 빛나는 진짜 색깔을 볼 수가 있어요

I see your true colors and that's why I love you
나는 당신의 진정한 색깔을 보고, 그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에요

so don't be afraid to let them show your true colors
그러니 당신의 진정한 색깔을 다른 사람 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김사부를 믿고 따르는 돌담병원 의사들.

김사부를 믿고 따르는 돌담병원 의사들. ⓒ SBS


김사부의 'True colors'

때로는 위악적이고, 종종 모질고, 그래서 사이코패스라는 험담이 어색하지 않은 김사부지만, 시청자들은 그의 의료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진짜 얼굴과 색깔에 매료된다. 그 진짜 얼굴은 10회 드러난 감사 직원과의 해프닝에서 보인다. '못나지 않은 인간됨',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인간적'이라는 그 막연하지만, 마치 올드팝처럼 낯설어지는 선의. 마치 부용주가 걸친 오래된 바바리처럼 경쟁과 욕망이 점철된 세상에서 자꾸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 인간적 선의, 그래서 '낭만'이란 접두어가 붙는 선의가 <김사부>의 주제 의식이다.

하지만 그 김사부의 선의는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 돌담병원에 들어온 환자는 무조건 살린다는 '용기' 있는 모토. 하지만 이사장을 이용하려는 강동주의 얕은수에 김사부는 말한다. 지금은 자신의 편인 듯 보이는 이사장은 그저 '돈주'일 뿐이라고.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경계가 없는 도윤환을 원장으로 앉힌 그의 본질을 혼동하지 말라고. 그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건, 그저 자신의 수술 때문이라고.

매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권력과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곁들인 해설, 부제를 곁들인 드라마는 소박한 인간적 주제 의식과 달리, 이 사회에 맴도는 어설픈 '편먹기'와 선의를 경계하며, 진짜 '인간주의'를 향해 성큼성큼 나간다.

물론 강동주와 윤서정의 긴장 넘치는 사랑이 곁들여 지지만, '달달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김사부>는 20%를 훌쩍 넘겼다. 이는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와, 그것을 관통하는 휴머니즘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기 때문이리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낭만 닥터 김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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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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