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따끔 글도 쓰다 보니, 최근들어 난감한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바로 '요즘 같은 시국에 보면 좋을 영화가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물론 가끔 주변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맞추어 '지금 본다면 좋을 영화' 같은 것을 추천하곤 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마주한 현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어떻게 정리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난 전무후무한 일이니 비슷한 일을 다룬 작품도 드물다. 요즘의 나는 사람들이 질문을 던지면 '차라리 그냥 술을 드세요'라고 답한다.

요즘같은 시국에 볼 만한 영화? 차라리 술을...

물론 억지로 짜내고 찾아 본다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한 권력자의 부정과 몰락은 많은 영화나 문학 작품들의 소재였기 때문이다. 현대사의 맥락에서 그런 작품을 찾아보자면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닉슨>(1996)일 것이다. 이야기가 지금의 상황과 유사한 면이 많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실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이었으며, 그 역시도 대중적이기 보다는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뉘던 인물이었다. 재임 기간 중 리처드 닉슨의 행보는 많은 반발과 논란을 낳았지만, 그는 단단한 고정 지지층을 안정적으로 유지했고 연임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언급한 것은 그의 마지막 행보 때문이다. 그는 임기를 모두 채우지 못하고 백악관을 떠나게 된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영화 <닉슨>의 한 장면

영화 <닉슨>의 한 장면 ⓒ 올리버스톤


아마 그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한 계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것이다. 바로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있던 워터게이트 호텔에 괴한들이 침입하고 이들이 도청을 시도한 정황이 포착된다. 거기에 이들이 백악관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고 사람들의 의심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을 향하게 된다. 그리하여 의회에는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를 설치되고, 결국 위원회가 연 공청회에서 대통령 직무실의 모든 대화를 녹음하는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닉슨은 테이프 공개를 거부하며 완강하게 버티지만 결국 녹음 기록은 넘어가고 닉슨은 퇴임을 발표한다. 여러 면에서 지금의 한국이 겹쳐보이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닉슨> 연출자인 올리버 스톤은 이미 '베트남 3부작'을 통해, 베트남전과 당대의 시대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감독이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가 영화를 통해 닉슨의 부정과 위선을 신랄하게 파헤쳐 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물론 영화에는 그런 순간들도 다수 등장한다. 가령 평화와 화합을 이야기하는 닉슨의 얼굴 위로 실제 경찰의 폭력과 전쟁의 참상을 담은 영상을 오버랩 시키는 장면이 한 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닉슨>이라는 간결하고 명료한 제목처럼 그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실패한 권력자가 되었는가를 탐구하는데 집중하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의 행보와 동시에, 리처드 닉슨이라는 인물 자체에도 포커스를 맞춘다.

닉슨과 박근혜는 안 닮았다, '결정적 결함'때문에

 영화 <닉슨>의 한 장면

영화 <닉슨>의 한 장면 ⓒ 올리버스톤


이 과정에서 닉슨은 단지 부정한 권력자 이상의 입체성과 인간성을 지닌 캐릭터로 묘사된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마냥 긍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닉슨은 가난한 집안에서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케네디와 같은 엘리트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열패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는 충실한 퀘이커 교도로서 굳건한 정의관과 사명감을 지녔지만, 자신의 옳음을 추구하며 발생한 사람들의 고통과 그들이 저지른 부정은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부패를 저지르고,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린 와중에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강변하는 한 명의 괴물이었다. 이 영화는 후반부에 비극적인 톤으로 진행되지만, 그 분위기는 숭고하기 보다는 음울하고 기괴하다.

아마 영화를 보다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나는 순간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작금의 현실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싶진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너무나 유사한 상황임에도 아마 <닉슨>과 같은 영화는 한국에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엔 닉슨과 박근혜의 캐릭터가 너무나도 다르다. 아니 실은, 박근혜는 캐릭터 자체가 없다. 대통령의 지난 국정 운영 행보를 살펴보라. 기억에 남는 게 있는가? 인장으로 남을 만한 비전이 있었는가? 그렇게나 밀어붙였던 규제 완화 정책까지도 사실은 거래의 대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우리에겐 박근혜가 어떤 사람이리라 그려볼 만한 단서가 없다. 심지어 비리에서조차 대통령은 주인공이 아니다.

세월호참사 당일 중대본 방문한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참사 당일인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세월호참사 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인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세월호참사 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무섭다

대선을 앞둔 2012년 겨울, 나는 지인과 '박근혜가 무서운 건 왜 대통령이 되려는지 알 수가 없어서다. 그게 사익 추구든, 권력욕이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든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이 보였는데 박근혜는 그게 안 보인다'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16년에 와서 알게된 놀라운 사실은 그건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정치인 박근혜의 특성이기도 했다. 박근혜는 내용이 있는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상징이나 기표에 가까웠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런 박근혜에게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혹은 경제적 호황기로 복귀하고픈 욕망을 투영했다. 정치인으로서 박근혜는 한 것이 별로 없다. 존재 자체만으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징과 기표의 특징은 그것이 실은 텅 비어있다는 것이다. 나는 박근혜가 '멍청하다'는 식으로, 대통령의 인격에 대해 추측성 비난을 던지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왜냐하면 문제는 박근혜의 인격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시간, 심지어 박근혜가 대통령의 이름으로 했던 몇 안 되는 일조차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즉 박근혜 정부에서 그의 자리는 그냥 공백으로 남아있다. 때문에 탄핵 앞에서 '국정 혼란'을 우려하는 사람들을 보며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국정? 그런게 애초에 있기는 했나?

올리버 스톤이 닉슨을 복잡하고 거대한 괴물로 그려낼 수 있었던 건, 그가 정말로 말할 거리가 많은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는 부패라도 자기 생각으로 했다. 닉슨은 최후의 순간에도 스스로가 여전히 옳은 잃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자기에게 반하는 건 단지 자신이 싫어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이 그의 눈을 가려버린 탓에 그는 자신의 부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어떠한가? 내가 정말 두려운 것은 무엇이 대통령의 눈을 가렸나가 아니라, 박근혜가 자신의 부정을 파악할 수조차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와 현실의 간극이자, 이번 사건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닉슨 박근혜 탄핵 하야 워터게이트
댓글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