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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사망자 화장 후 10년 동안 안치될 무연고사망자 추모의 집으로 나눔과나눔 자원활동자가 유골함을 운구하고 있습니다.
▲ 무연고사망자 유골함 운구 무연고사망자 화장 후 10년 동안 안치될 무연고사망자 추모의 집으로 나눔과나눔 자원활동자가 유골함을 운구하고 있습니다.
ⓒ 나눔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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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무개(78년생)씨는 지난 4월 27일 한 요양병원에서 말기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이혼한 어머니가 계셨지만 여러 사정으로 고인의 시신인수를 포기했고, 결국 무연고 사망자로 삶을 마감하게 됐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르는 나눔과나눔이 같은 달 30일 이아무개씨의 장례를 진행했다. 다행히 장례식에는 지인과 사촌형님이 참여해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안타깝게도 고인의 아버지 또한 무연고 사망자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후 고인 혼자 지내다 말기 대장암 선고를 받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더니, 어처구니없게도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직도 생존해있다며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어 화장 등 시신처리를 구청에 위임했는데, 아무도 무연고 사망자인 고인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가족은 시신인수를 포기했으니 구청에서 할 것으로 생각했고, 구청은 원칙적으로 사망신고는 친족이 해야 하니 가족이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사람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85조 제1항에서는 사망신고의무자로 동거하는 친족을 들고 있다. 제2항에서는 친족, 동거자 또는 사망장소를 관리하는 사람, 사망장소의 동장 또는 통·이장도 사망의 신고를 할 수 있도록 사망신고를 할 수 있는 범위를 넓게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그 누구도 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문제점은 이미 제도상으로는 보완된 상태다. 2014년 5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실제 사망했으나 사망신고가 되지 않을 경우 주민등록 도용 등과 같은 범죄 노출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직권 사망처리 근거 규정을 마련하도록 법무부에 권고했다. 그리고 2014년 12월에 법무부는 법적으로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사망처리 통보절차를 마련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은 구청에, 구청은 가족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서울시의 한 구청 무연고 사망자 담당자에게 확인한 결과, 제도가 바뀐 것은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사망신고의 우선적인 책임은 가족에게 있기 때문에 가족이 시신인수를 포기할 때 사망신고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사망신고를 강제하거나, 이를 위한 별도의 통보 절차는 진행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여전히 무연고 사망자에게는 '사망신고'조차 걱정거리이다.

사는 것도 걱정, 죽음마저 걱정거리

이제는 사는 것도 걱정이지만 죽음마저 걱정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올해 3월 보건복지부는 '무연고 사망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공설장례식장 이용기준'을 마련했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공설 장례식장을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은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하되, 무연고 사망자와 기초생활수급자, 홀로 사는 노인이 우선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서울에 위치한 72개 장례식장 가운데 공설장례식장은 5개에 불과하다. 이러한 장례지원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설장례식장 분향소 수가 장례예식 수요대비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로 취약계층이 직접 이용하려고 해도 수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민간병원장례식 또는 사설장례식장을 이용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장례식장은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취약계층에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그동안 서울시적십자사가 제공하던 무료 영구차서비스가 올해 5월 말에 갑작스레 중단됐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추가적인 장례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기본적인 장례조차 치를 수 없는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장제비가 75만 원이 지급되었는데, 운구차 비용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공공성을 갖춘 공영장례제도 시급

이제 죽음은 가족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무연고 사망자 혹은 홈리스 사망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더 이상 죽음의 문제를 시장에 맡겨둘 수는 없다. 공공성을 갖춘 공영장례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장례식조차 치를 수 없는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공영장례지원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5개에 불과한 공설장례식장이 시장에 영향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나야 한다. 단기적으로 어렵다면 사설장례식의 공공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무연고 사망자 시신 처리에 책임 있는 시장 등이 무연고 사망자 '사망신고' 관련 구체적인 기준과 지침을 마련해서 시행해야 한다. 언제까지 가족이 사망신고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장례를 위한 운구차 지원 등 장례지원 서비스가 현실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사항을 담아 올해도 동짓날에 '홈리스 추모제'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를 통해 홈리스분들의 사망을 추모하고, 아울러 열악한 홈리스 실태를 고발하며 사회적인 대책을 요구한다. 격랑의 12월이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우리 곁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태그:#홈리스추모제, #무연고, #공영장례, #공설장례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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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영장례지원상담을 하고 있으면, 저소득시민 및 무연고자 장례지원하고 있는 "나눔과나눔"에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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