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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목소리가 여렸고 키가 꽤 작았으며 싸움도 잘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남자 아이들이 로봇을 가지고 노는 동안 저는 여동생과 함께 인형놀이를 하며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 내곤 했었지요. 감수성이 풍부하고 종종 소심한 모습을 보였던 저를 사람들은 '계집애 같은 새끼'라고 놀려대고는 했습니다. 그런 놀림들이 앞으로의 제 삶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여성스럽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먹잇감으로 찍힌다는 선고였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에서 저는 왕따를 당했고 그 상황을 어떻게도 해결하지 못한 채 중학교를 졸업한 저는 타 지역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괜히 싸움을 잘하는 척, 예전 학교에서 '잘 나갔던' 척을 했습니다. 그렇게 제게 없는 남성성을 흉내 내면 그곳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은 금세 들통났고 저는 고등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학창시절을 지내면서 저는 몸으로 배웠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여성성은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꽁꽁 숨겨야 하는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것을요.

그렇게 한남이 되었다

제가 공격받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저는 제게 없는 '남성성의 부분'들을 습득했습니다. 다른 남성의 여성성을 혐오하고 또한 여성을 혐오하고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부각시키며 다른 남성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또 제게 얼마 없는 남성성을 강한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욕설과 비속어를 남발하고 허세를 부렸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 남성으로 살면서 이런 걸 교육받고 받아들인 건지, 아니면 제가 살아남기 위해 더욱 남성성을 적극적으로 포장한 것인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이 과정 속에서 제 자아는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학대하는지도 모른 채 스스로를 부수고 있었습니다.

퀴어 운동을 하면서

20대 중반에 만나게 된 학교 후배가 저에게는 귀인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며 저에게 퀴어 감수성을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배를 통해 저는 성소수자도 비성소수자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고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가 잘못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스물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노동당에 입당하면서 성정치위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활동을 하고 페미니즘을 함께 배우면서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구나. 나도 충분히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렇게 저는 서른의 나이에 저를 안드로진으로 정체화했고 저에게 쓰여 있던 굴레를 벗어났습니다. 아니, 벗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안드로진 : 성 역할 고정 관념을 이루는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을 구분하지 않고 한 인격체 내에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갖춘 것으로 인식하는 것, 또는 그런 사람. -위키피디아 '양성성' 항목 참조

쉽게 없어지지 않는 '한남스러움'

절반은 성소수자로, 절반은 한남으로 살아가는 필자의 모습을 이미지로 표현했다. 물론 남성성이 꼭 '파란색'으로 표현된다는 것도 선입견일 수 있다.
 절반은 성소수자로, 절반은 한남으로 살아가는 필자의 모습을 이미지로 표현했다. 물론 남성성이 꼭 '파란색'으로 표현된다는 것도 선입견일 수 있다.
ⓒ 노동당여성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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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는 지금도 종종 여성을 외모로 평가합니다. 저는 지금도 길을 지나가다가 흡연하는 여성을 보면 힐끔힐끔 쳐다보곤 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일상의 순간에서 저는 저의 '한남스러움'이 종종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놀라고는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30년이 조금 안되게 살아오는 동안 제가 누군가로부터 '후려쳐지고' 혐오를 당하고 그렇게 저도 저와 비슷한 누군가 혹은 불특정 성소수자나 여성을 혐오하고 '후려치며' 살아왔다 보니 의식을 하며 살고 있는 지금도 아직까지 제 안의 '한남스러움'은 완벽히 없어지지 않고 제 안에서 종종 잘못을 저지르곤 합니다.

성소수자 남성도 노력해야 한다

'성소수자들은 비성소수자들에 비해 젠더감수성이 월등히 뛰어나다거나 혹은 남성성이 비성소수자들에 비해 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성소수자 남성들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저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저런 모습으로부터 빠져 나오고자 하는 지금도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남스러움'이 덜 하다라고도 절대 말할 수 없을 듯합니다. 성소수자나 비성소수자의 삶이 유별나게 다르진 않듯 성소수자나 비성소수자나 한국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한남스러움'을 교육받고 한국사회의 남성성을 공고히 하는데 일조하는 것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고의적이건 아니건 말이죠. 일례로 게이 남성의 경우 '뽈록이'라는 단어로 여성을 혐오하거나 '끼순이'라는 단어로 여성성이 강한 게이 남성들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지면의 특성상 실을 수 없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성애자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듯 탑 포지션의 게이 남성들이 바텀 포지션의 게이 남성들을 혐오하는 양상이 있습니다. 결국 성소수자 남성도 한국 사회로부터 여혐을 경험하고 교육받고 서로가 서로를 '후려치고 후려쳐지며' 살아온 '한국 남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소수자 남성들은 비성소수자 남성들보다 더욱 자신에게 물들어 있는 남성성을 빼내고 지워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글을 마치며

사실 성소수자 남성들의 여성혐오는 더욱 서글프고 무섭습니다. 여성이나 성소수자나 혐오를 당하는 당사자라는 점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지우지 못한 저의 '한남스러움'이 종종 튀어나올 때 이런 제 자신이 슬프고 언제쯤에야 제 '한남스러움'을 지울 수 있을지 아득하고 지금도 스스로 많은 혐오를 공고히 하고 있는 이 한국 사회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노력하고 싸울 것입니다. 저 개인으로서 제 남성성을 지워내기 위해 분투할 것이며 한국 사회의 '한남스러움'을 깨부수기 위해 노동당원으로서 많은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싸움을 응원해 주시고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리며 이 글을 마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오님은 나이 서른에 퀴어로 변신한 노동당 당원으로, 노동당 여성위원회가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당원들과 함께 시작한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에 참여합니다.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는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노동당원들이,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시작한 글쓰기 시리즈입니다. 여기에서 '남성성' 이란 R.W.코넬의 저작 『남성성/들』에서 인용한 것으로, 하나의 ‘남성성’이 존재한다기보다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개념으로서 한국사회의 남성성이 어떻게 실천되고 유지되는가를 성찰적으로 나누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태그:#남성성, #성소수자, #성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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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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