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씽> 이언희 감독 현장 제공 사진

여성 영화 혹은 장르(스릴러) 영화. 그게 아니라면 이해의 영화. 어느 쪽으로 보든 상관 없는 영화. ⓒ 딜라이트


참 뻔한 대답이었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이언희 감독은 웃으며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질문이 이어졌다. "어떤 것에서 재미를 느끼나?" 이언희 감독은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했다.

영화 <...ing>(2003), <어깨 너머의 연인>(2007) 이후 9년 만에 이언희 감독이 내놓은 영화는 <미씽: 사라진 여자>(아래 <미씽>)였다. <미씽>은 보모인 한매(공효진)와 함께 사라진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한 지선(엄지원)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주연부터 조연까지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을 두고 최선을 다한다. 배역이 크든 작든 그들을 최대한 이해해보려 한 이언희 감독의 노력 혹은 취향 탓일 거다. 이런 이언희 감독의 '관심사'가 영화 <미씽> 곳곳에 뻗어있다.

지난 11월 28일 오후 서울 삼청동에서 <미씽>의 이언희 감독을 만났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과 편견에 맞서 싸운다"

 영화 <미씽> 스틸 사진

브라운관서 공블리라 불리는 공효진의 연기 변신이 새로운 영화 <미씽> 공효진은 <미씽>에서 중국인 보모 역할을 맡았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앰


- 영화 <어깨 너머의 연인> 이후로 9년 만에 감독을 맡았다. 새 영화 <미씽>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나.
"사실 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요즘 살다 보니 나도 힘들고 남들도 힘들고 그런 와중에 다들 열심히 살지 않나. 개개인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주면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말씀 그대로 '이해의 영화'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스릴러라는 장르와의 결합이 신선했는데.
"사실 스릴러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없는 영화일 수 있다. 큰 욕심을 낸 거다. 재미있게 시작을 했지만, 영화관을 나설 때 뭔가 얻어갔으면 좋겠다고. 내 취향이기도 한데,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재미있더라. 사실 <미씽>은 예술 영화도 독립 영화도 아니고, 대작은 아니지만 돈이 상당히 드는 상업 영화다. 내가 평생 벌 수 없는 돈을 썼으니 (웃음) 상업적으로 책임도 지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다."

- 최근 몇 년간 스릴러를 비롯해 여러 장르의 영화에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가 많이 등장했다. <미씽>은 스릴러이나 이런 흐름과는 결이 많이 다른 영화였다.
"이전부터 잡다한 가십을 많이 챙겨봤다. 하지만 가십 가운데서도 관심을 갖는 건 따로 있다. 예를 들어 치정사건으로 누군가 죽었다면, 왜 그랬는지가 궁금했다. 사실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인데. 심지어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그의 과거는 어땠고, 범행이 드러나기 전까지 그의 행적은 어땠는지. 우리 모두는 정말 복잡하지 않나. 만난 순간 외모나 말투라든지 그런 것에서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니까. 그런 내 취향이 <미씽>에 반영됐다고 생각했다."

- 언론시사 이후 기자회견에서 두 배우랑 이언희 감독 모두 시나리오를 극찬했다.
"내가 그간 생각해왔던 것들을 이 시나리오를 통해 표현할 수 있겠구나 싶어 (영화로 제작을) 하고 싶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한매(공효진)는 지선(엄지원)의 시점으로 보는 한매인 거다. 그것도 판단이고 어느 정도 편견이 내재된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착한 보모, 너무나도 착하고 한국말을 잘 못하고 하지만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 곧 한매의 지능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 않나. 중국어로 말한다면 의사소통을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내가 지금 외국어로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바보 같겠나."

- 사실 한매 못지않게 '워킹맘'인 지선 역시 편견에 맞서 싸운다.
"엄청난 편견에 맞서 싸우고 있다. (웃음) 나는 심지어 경찰조차 그렇다고 생각했다. 많은 한국 영화에서 경찰은 공무원의 무능함을 나타내는 역할로 쓰인다. 인물마다 그런 (편견에 맞서 싸우는) 표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찰이 밉게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입장이 있는 거니까. 지선이 한매를 찾으러 간 안마방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지선 역시 안마방이라는 장소에 대해 판단을 하지만, 안마방 주인(김선영) 역시 낯선 인물인 지선을 쳐다보며 판단을 내린다. 안마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선은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낯선 사람일 것이다. 그런 것이 제대로 표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우위에 선 것이 아니라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여성 감독이 아닌 이언희로 이해받을 순 없을까"

 영화 <미씽> 이언희 감독 현장 제공 사진

이언희 "<미씽>은 결국 이해의 영화다." ⓒ 딜라이트


- '여성감독'에 '여자배우들'과 함께 촬영한 영화다. 최근의 페미니즘 흐름과 무관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사실 그 이슈는 깜짝 놀랐다. 아까도 가십을 좋아한다고 말을 했지만 (웃음) 정말 인터넷 하는 걸 좋아하는데 촬영을 하는 동안 잠깐 손에서 놓고 있었다. 세상이 바뀌어있더라. 그 사이에 엄청난 흐름들이 생겨 있었다. 좋은 건가? 어떻게 되는 거지? 싶었다. 올해 그 흐름들을 보면서 되게 고맙기도 하고 그랬다."

- 개봉 전부터 <미씽>이 여성영화라 투자받기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이 영화를 시작하면서 우선 장르영화로서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무언가 와닿는 것과는 별개로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물론 여성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남자도 여자를 이해하고 여자도 남자를 이해하고. 대립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나도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고, 이해받지 못해 오랫동안 힘들었다. 어떤 오해를 받았을 때,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좀 더 잘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왜 그렇게 말을 할까, 싶었다. 물론 지속적으로 애정을 갖는다는 것이 힘들지만 계속 관심을 갖다 보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여성영화라고 말하면 어려운 것이, 남성들을 배척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들에게도 이해받고 싶고. 나는 결국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라고 생각했다."

- '이해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이해는 개인적인 부분인지?
"나는 진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곡해하는 경우는 많지 않나. 아버지 직업이 공무원이다. 처음 영화를 전공하겠다고 말했을 때, '공무원 자식이 무슨 영화를 해?'라는 반응을 들었다. '인생을 모르는데 어떻게 영화를 하겠어'라든지. 영화를 선택하면서 들었던 말들, 편견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판단들이. 이른 나이에 데뷔했을 때는 (이언희 감독은 2003년 영화 <...ing>로 데뷔했다) 심지어 그런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 아버지가 서울시장이라고. '뭐지?' 싶다가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조카가 중학생 때인가 학교 선생님에게 고모가 영화감독이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중학교 선생님이 '감독을 하려면 빽이 좋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는 거다. 중학생 조카에게. 그 이야기를 명절 때 듣고 속이 상했다. 그 선생님도 어딘가 꼬여있겠구나, 그러니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만나서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다. 빽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운도 작용했겠지만 나 되게 열심히 살았다고. 왜 그런 말을 할까 생각하다가 결국 그런 말도 자신의 세계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 그 분은 무슨 배경과 사연이 있어 그런 말을 했을까.
"사실 너무 슬픈 이야기다. 선생님이라면 꿈을 가지라고 말해야 하지 않나. 안타까운 것이다. 그 선생님이 혹시 이 기사를 보신다면 알았으면 좋겠다. (웃음) 내가 빽이 없다는 걸. 빽이 있었으면 이렇게 오랜만에 영화를 찍을 리도 없다는 걸."

- 정말 오랜만이다. 영화를 그동안 안 하고 있었는데.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다. (웃음) 열심히 살았다. 어떤 영화감독이든 활동을 못하는 것이 자의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들 궁금해하지 않나. 그 기간동안 영화감독들은 뭘 먹고 사나. 나도 내가 궁금하다. 내가 뭘 먹고 살았지? (웃음) 뭔가 해보려고 노력을 했다. 내 취향이 그렇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처음에는 아닌 듯 보였다가도 새롭게 보이는 것. 뻔한 상황 안에서 특별함을 찾고 싶은. 그런데 그런 류의 영화는 만들기 전에는 증명하기 힘들더라. 첫 영화인 <...ing>의 경우 '시한부 소녀의 사랑 이야기야'라고 말을 하면, 어디 가서 영화를 말할 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한다. 사실 줄여서 축약할 때는 그 특별함을 알기 어렵다. 그런 것이 고민된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영화 <미씽> 이언희 감독 현장 제공 사진

"재미있는 걸 여자라는 이유로 힘들다고 피하진 않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신나게 했다." ⓒ 딜라이트


- 공효진과 엄지원, 두 '여성배우'들과 함께 한 현장은 어땠나.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느냐는 것이다. 힘들다! 그런데 남자도 힘들다. 남편도 연출 일을 하는데 드라마 촬영할 때 무릎에 동상 걸리고 그런다. 다 힘들다. 여자 배우라 힘든 것이 아니라.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힘이 나지 않나. 장소 헌팅을 하러 산에 올라가는 길이었다. 정말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다들 힘들어 하고 있으니 '내가 감독이니까'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 책임감을 준다는 건 그만큼 권리도 주는 것이기에 재밌어지는 것이다. 그 재밌는 걸 여자라는 이유로 힘들다고 피하지는 않을 것 같고 그것이 우리를 신나게 했던 것 같다. 엄지원씨도 밤마다 전화해서 자기랑 이야기하자고 했다. (웃음) 힘들어 죽겠는데 이야기하고 나면 뿌듯해지고 그랬다."

-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제대로 책임지는 현장이라니 자연스럽게 힘이 났을 것 같다.
"힘들기만 하고 권리가 없으면 모르겠는데 그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니 너무 즐겁지.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보통 감독들은 현장에 나가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모니터로 보지 않나. 나는 모니터로 보는 것보다 배우들을 직접 보는 게 더 좋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여자 감독들은 다 그런가 봐요, <비밀은 없다> 이경미 감독도 그러신다는데?'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 그게 왜 여자 감독의 특성으로 해석이 돼야 하지? 단지 소수이기 때문에 퉁치는 것이지 않나."

- <미씽>도 마찬가지다.
"맞다. '워킹맘'이라고, 한국인이라고 같을 수 없다. 나는 나인 거고 여자 감독이라고 다 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 텐데. 아무래도 영화 현장이, 세계가 남성 위주이다 보니 여성들을 하나의 특성으로 묶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내 생각이 영화에도 반영돼있다. 우린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영화를 만든다고, 현장의 남자 스태프들에게도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난 <미씽>이 처음부터 남자들에게도 재미있는 영화였으면 했다. 그들 나름대로 와닿는 것이 있지 않을까. 이를 자꾸 하나로 몰아가려는 순간 서로 재미 없어지고 이해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결국, 이해다."

- 인터뷰가 이해로 시작해서 이해로 끝날 것 같다. (웃음) 여성 감독의 표본이 너무 없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니까. 남편에게 작년 연말쯤 여성영화 감독 너무 없지 않느냐고 말을 했다. 남편이 '작년에 디렉터스컷 갔는데 거기 여자 감독들 많던데? 10명도 넘어' 이러는 거다. 화가 났다. 그 자리에 200~300명 정도 왔다고 들었는데 10명이 넘는 게 많은 건가? 물론 점점 많아지고 가시화되는 부분은 있는데 통계화 되지 않을 정도로 많으면 세상이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나도 여성감독이 아니라 이언희라는 감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자꾸 소수가 되다보니 '퉁쳐지고' 연대 책임을 지게 된다. 우리 대통령도 여자의 책임이 아니라 누군가의 책임인 거고 개별적으로 봐야할 땐 봐야 하는데…"

 영화 <미씽> 스틸 사진

영화 <미씽>은 보기 드물어 더 응원해주고 싶은 여성 영화이지만, 그 이전에 '이해'에 관한 영화였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앰


- <미씽> 평이 좋다. 흥행은 얼마나 기대하고 있나.
"모르겠다. 정말 잘 됐으면 좋겠는데. 우선 배우들이 연기에 대한 칭찬을 받아서 그것 하나는 다행이다. 배우 분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웃음) 스태프들도 어디 가서 '저 <미씽> 했어요'라고 말했을 때 '엥?' 이러면 안 되지 않나. 부끄럽지 않으면 그것만으로 다행인 거다. 전쟁터에서 같이 싸운 사람들이니. 그것만으로 우선 한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씽 이언희 공효진 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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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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