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게릴라카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퇴진 촉구' 촛불의 바다와 적막한 청와대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3일 오후 촛불로 밝혀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뒤로 적막한 모습의 청와대가 보인다.
▲ '박근혜 퇴진 촉구' 촛불의 바다와 적막한 청와대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지난 3일 오후 촛불로 밝혀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뒤로 적막한 모습의 청와대가 보인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주말을 달군 촛불시위에 청와대가 보였다는 반응이다. 몇 번째 촛불시위에 대한 언급이었는지 물을 필요는 없다. 1차에서 6차까지 이어진 대규모 시위에 대해 똑같은 논평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매주 시위대 규모가 늘어나고, 하루 다르게 분노가 커가고 있는데도 청와대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맥빠진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다른 상황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행위는 화자의 낮은 지능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화자가 상대를 얕잡아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부가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을 되뇌며 한 달 반 이상 시간을 끌 때, 그 의미는 명확하다. 그들은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 와중에도 대통령 임기를 연장하면서 차기 대권까지 거머쥘 묘수를 짜내고 있다.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만들겠다더니, 정말 꿈도 야무지다.

우리는 '국민'이 아닌 '시민'이다

'즉각 퇴진' 요구하며 청와대 향하는 시민들 3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의 날'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즉각 퇴진' 요구하며 청와대 향하는 시민들 지난 3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의 날'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이런 '초현실적 뻔뻔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옳을까? 한국의 권위주의 정치세력은 늘 국민을 쉽게 속일 수 있는 어리석은 존재로 간주해 왔다. 그들에게 '국민'은 모호하고 뚜렷한 형태도 없는 '사람 덩어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 또는 '국적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 국민은 국가의 통치를 받는 수동적 존재다. 이들은 노동력을 공급하고, 세금을 바치고, 통치자에게 표를 주고, 새끼를 낳아 차세대 노동자를 공급한 뒤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이 관계에서는 국가가 주인이고 국민은 노예다. 국민은 자신의 권리를 알지 못하므로, 국가에 요구하는 법이 없다. 때리면 맞고, 주면 받아먹고, 안 주면 굶으면서 통치자들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는 '신민'이다.

그런 면에서, 현 정부의 고위관료가 말한 '개, 돼지' 발언은 뚜렷한 역사성을 갖는다.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개, 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 주면 된다." 올해 7월, 교육부 정책기획관이었던 나향욱은 이 말로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교육부는 재빠르게 그를 파면했지만, 정부가 그 말에 당황한 까닭은 국민을 모욕해서라기보다는, 말해서는 안 될 진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향욱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던 인물이다. 그의 발언은 보수정치세력이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민'과 달리, '시민'은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권리를 잘 이해하고 있고, 그 당연한 권리를 행사할 줄 안다. 정부는 시민의 뜻을 대신해서 수행하는 '대의 기관'이므로, 국가는 시민의 명을 받드는 하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부패를 겪으며 깨닫게 된 것은, 시민이 요구하지 않으면 주종관계가 뒤바뀐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과거 민주화 항쟁을 통해 절차적 민주화를 이뤘으나, 주인으로서 요구하는 법까지 배우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독재의 어둠 속에 살아온 탓이다.

우리는 지금 촛불시위를 통해 자신을 '국민'에서 '시민'으로 바꿔가고 있다. 87년에 완결짓지 못했던 민주주의를 이제 비로소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이 말한 '선의'와 '국민의 뜻'

'시민'이라는 말은 왠지 생소하게 들린다. 현대에 이 말은 '부산시민,' '서울시민'처럼 도시 안에 거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 희랍시대에 '시민(citizen)'은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지닌 자유인'을 의미했다.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은 '노예'였다.   

시민은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권리를 행사한다.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법 위에 존재하려는 자들은 '티라노스(tyrannos)', 즉 '전제군주' 또는 '독재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부정선거와 반민주적 개헌을 통해 4번이나 대통령이 되려고 시도했다가 쫓겨난 '티라노스'였다.

이승만은 결코 순순히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부정선거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 뗐고, 반정부 시위는 '공산당의 책동,' '반대파 정치인의 공작,' '일부 종교단체의 책동'이라고 주장하며 계엄령을 선포했다.

경찰의 폭력적 진압과 발포로 수백 명의 시민이 죽거나 다치자, 이승만 정부를 후원해 오던 미국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 졌다. 독재정권을 비호한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매카나기 미국 대사가 찾아와 혁명적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승만은 이렇게 대꾸했다. 

"젊은 시절 나는 내 국민들을 알고 있었고, 지금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더 많은 시민이 죽고 다쳤다. 그럴수록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이 시위에 가담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대통령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국민 뜻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고, 자신이 "'선의'로 한 일을 남들이 악용했다"며 억울해 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이제 대통령의 신변마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경무대(현 청와대)의 구중궁궐에 칩거하던 지도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매카나기 대사가 미정부에 보고한 대로, 이승만 대통령이 "아첨을 좋아하고 비판자의 동기를 의심하는 그의 '잘 알려진 편견'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정적 문제는 '국민을 잘 알고 있다'는 잘못된 확신이었다.

결국 미 대사가 김정렬 국방장관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고, 미정보국(CIA)의 피어 드 실바까지 나서서 "2시간 안에 총사퇴하지 않으면 목숨을 보전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제서야 이승만은 부랴부랴 하야 선언을 했다. 

박근혜도 말하는 '선의'와 '국민의 뜻'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굳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굳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대통령은 부정선거, 국민 생명권 무시, 권력 사유화, 포괄적 뇌물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티라노스'다. 하지만 스스로 물러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승만이 그랬듯, 그 역시 '선의'로 한 일이라며 억울해 하고 있고, '국민의 뜻'을 입에 담는 횟수도 지지 않는다.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모르나, 우리는 더 이상 그가 잘 알고 있다고 믿는 그 '국민'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주인의 권리를 아는 시민이고, 우리는 주인의 자격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를 요구한다. 

이제 12월 9일이면 모든 게 판가름 난다. 나는 탄핵을 좌초시키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점은, 청와대와 새누리당 정치인들의 정치적 생명은 그것으로 끝이라는 점이다. 탄핵을 피한다고 대통령을 지킬 수는 없다. 이미 어두운 대통령의 미래가 더 어두워질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은 '질서있는 퇴진'과 '명예로운 퇴진'을 주장한다. 그들은 대통령 사퇴 후 60일 뒤 선거를 치르도록 한 헌법 규정을 무시하고, 4월까지 대통령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법을 무시해 온 이들은 끝까지 초헌법적 발상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헌법이 정해놓은 규칙이 '무질서'의 온상이라도 된단 말인가? 무엇이 '질서'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지, 범죄 혐의자나 공범들 몫이 아니며, 국민들 뜻을 저버린 '티라노스'에게 준비된 명예는 없다.   

최소한 덜 수치스럽게 퇴진하는 길은 남아있다. 그것은 탄핵 표결이 예정된 9일 이전에 하야 선언을 하는 즉시 물러나는 것이다. 사퇴를 선언한 뒤 4월에, 1월에, 혹은 12월 말에 물러나는 게 아니라, '선언'과 '직무정지'를 동시에 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들에게는 대통령이 자리에 남아 있는 매순간이 고통이고 불안이다. 그는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하던 순간에도 한일 군사정보 협정 강행, '세월호 막말' 목사 국민통합위원장 임명, 국정교과서 재시동을 지시했다.

앞으로 그가 '대통령으로서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휘두를 폭정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가 국정원 등의 국가기관을 이용해 어떤 '상황변화'를 시도할지를 생각하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우리는 시민 혁명을 시작했다. 빛을 경험한 사람은 결코 어둠 속으로 돌아가지 않고, 광장을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독방에 머물지 않는다.

시민으로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즉시 물러나라.


댓글2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법조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