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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열이 지난 2일 조선일보에 게재한 칼럼.
 소설가 이문열이 지난 2일 조선일보에 게재한 칼럼.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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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친다면 4500만도 넘는다. 하지만 그중에 100만이 나왔다고, 4500만 중에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는가. 그것도 1500단체가 불러내고, 매스컴이 일주일 내 목표 숫자까지 암시하며 바람을 잡아 불러 모은 숫자가, 초등학생 중학생에 유모차에 탄 아기며 들락날락한 사람까지 모두 헤아려 만든 주최 측 주장 인원수가.

심하게는 그 촛불 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상태에서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까지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지난 주말 시위 마지막 순간의, 기계로 조작해도 어려울 만큼 정연한 촛불 끄기 장면과 그것을 시간 맞춰 잡은 화면에서는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고도 했다."

안녕하세요, 이문열 선생님. 직접 찾아 뵌 적은 없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선생님이랑 호칭을 쓰고자 합니다. 그 앞에 '작가'를 붙여야 할지, '보수 논객'을 붙여야 할지, 그도 아니면 '정치 논객'이라고 붙여 드려야 할지 헷갈리긴 하지만요. 이런 시각은 저만이 가진 것은 아니니 노여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위에 인용한 내용이 담긴 선생님의 칼럼 잘 보았습니다. 2일자 <조선일보>에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이란 제목으로 쓰신 칼럼이었고, "위기의 대한민국… '보수의 길'을 묻다"란 연재의 일환이었더군요.

칼럼이 게재된 이후인 어제(2일) 하루 수많은 논란이 있었던 걸 선생님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아, 지난 2010년 7월 한 인터뷰에서 "인터넷은 집단사기요, 집단선동"이라고 하셨던 견해를 바꾸지 않으셨다면 잘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선생님의 칼럼은 또 한 번 논란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답니다. 직접적으로 광장의 촛불을 '아리랑 축전'의 집단체조와 비교하면서 두려움을 표현하신 탓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전한 필력이라 느낄 독자들도 있었겠지만, 제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두려우셨습니까. "심하게는 그 촛불 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상태에서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까지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셨지요?

아니, 왜 본인의 감정이라 말을 못 하십니까. 이 촛불의 함성이 두려웠다고, 칼럼 제목과는 반대로 '보수가 진짜 죽어 버릴까봐' 무서웠노라 왜 말을 못 하십니까. 남부럽지 않은 '보수 대표'로서의 영향력과 인지도를 지닌 선생님께서 왜 타인의 의견인 양 익명성 뒤로 숨으려 하시는지요.

과문한 국문학과 출신 프리랜서 글쟁이가 읽기에도 꽤나 두려움에 떨고 있으신 것 같은데 말이지요. 왜, 이번 칼럼 못지않게 과거 쓰셨던 본인의 글이 광장의 언어에 압도될까 두려운 건 아닌지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또 하나, 수치 계산도 '수학 포기자'에 딱 걸 맞는 오류를 범하셨고요. 하지만, 그 오류보다 더한 오류는 선생님이 촛불 민심과 현 정세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유독 촛불 두려워하는 이문열의 촛불 콤플렉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2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제는 개헌이다' 출판기념회에서 서청원 의원, 소설가 이문열씨 등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치고 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2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제는 개헌이다' 출판기념회에서 서청원 의원, 소설가 이문열씨 등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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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하신 '홍위병' 발언이야 워낙 유명하니 따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이미 2009년 1월 한 라디오에 출연하셔서 "홍위병들이 각 분야의 권력 핵심에 들어가 재미를 보다가 이제 내놓게 되니까 각 분야에서 저항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며 본인이 '확신범'이라는 걸 증명해 주셨으니까요.

일단, 이문열 선생님께서 하신 수 많은 발언과 칼럼, 인터뷰들을 세세히 들여다 볼 시간도, 여력도 부족한 관계로 일단 '촛불'에 대한 선생님의 과거 시각을 재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지난 2008년 6월, '광우병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그 시기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셔서 하신 발언들이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요컨대, "촛불집회를 진압할 의병이 필요하다"고 하셨었죠. 꽤나 논란이 됐던 발언이고요. 하지만 당시 발언들은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민중관, 국가관, 언론관들을 압축해서 설명해 주고 있더군요. 실례를 무릅쓰고, 제가 요약을 해 봤습니다.

"촛불 장난을 너무 오래하는 것 같다. 불장난을 오래하다 보면 결국 데이게 된다. 이제 사회적 반작용이 일어나야 할 때다. 예전부터 의병이란 것이 국가가 외적 침입에 직면했을 때뿐만 아니라 내란에 처해 있을 때도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쇠고기 문제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효순, 미선 사건 때 주한미군 사령관이 사과하자 부시 사과를 요구했고 부시가 사과하자 미국 정부의 정식 사과를 요구했다. 만일 그때 미국 정부가 사과했더라도 또 다른 요구를 했을 것이다."

"여론조작이 며칠 전부터 확실해졌다. 느닷없이 공영방송 사수하면서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음모라고 주장하는데, 음모란 말을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고….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공영방송에 대해 정부의 인사권은 당연한 것이다."

이때만 해도, 선생님은 촛불 민심을 장난이라고 하셨습니다. 좋습니다. 그 수치만 놓고 보면, 2016년의 '박근혜 퇴진' 촛불과 비교할 수 없는 인원과 기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6주차입니다. 100만을 넘어, 200만, 300만을 향해 가고 있는 전국의 촛불을 외신들까지 앞 다퉈 경이롭다는 논조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의병이 아닌 계엄령이라도 선포해야 하는 건가요. 법원이 청와대 앞 100m까지 집회를 허용하고 나선 마당에 말입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으면 눈도, 귀도 어두워진다고 하지만, 저 광활한 촛불 민심은 제쳐두고서라도 전 세계 외신이나 법원까지 무시하실 셈입니까. 도리어 박 대통령이 내란죄를 저질렀다는 일각의 법해석이 나오는 있습니다. 오히려 의병은 작금의 촛불 민심들이 아닐런지요.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이문열, 팩트보다 가십이 먼저인가

지난 1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광화문 광장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리고있는 가운데 본행사가 끝난 후 행진을 시작하고있다
 지난 1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광화문 광장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리고있는 가운데 본행사가 끝난 후 행진을 시작하고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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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홀린 듯 여성 대통령의 미용이나 섭생까지 깐죽거리며 모욕과 비하를 일삼다가 그것도 특종이랍시고 삼류 도색 잡지도 다루기 낯간지러운 사생활에 대한 억측과 풍문을 무슨 큰 폭로라도 되는 것처럼 뉴스로 쏟아내는 매스컴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다.

무슨 교수, 무슨 평론가, 무슨 전문가 해서 풍채 좋고 언변 좋은 양반들이 온종일 종편이 펼쳐준 좌판에 몰려 앉아 대통령 여당 몰매 놓기로 의식 수준의 고하를 겨루거나, 대통령 속곳까지도 슬쩍슬쩍 곁눈질하며 최가네 일족 잡상스러움을 시시덕거리거나, 문고리 몇 인방이니 친박 개박 매화타령 하며 킬킬거리는 모습이 보기 민망스럽다는 이들도 있었다."

다시 칼럼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번 박근혜 게이트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과 방송, 그리고 논평을 하고 있는 전문가집단까지 매도하셨더군요. 일부 그런 매체와 평론가, 기자 집단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세력들이야말로 대부분 그 여성 대통령에게 기생하고 집권 세력을 찬양해왔던 집단들이랍니다. 왜, 그들의 변절이 그리도 고까우셨습니까.

아마도 이럴 때 쓰라고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 말이 그리도 많이 쓰여 왔나 봅니다. 어떡합니까. 그 억측과 풍문이 대부분 팩트로,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선생님께서 어떤 신문, 어떤 방송을 주로 접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보려면 좀 제대로 보십시오.

어두운 눈과 귀에라도 착착 감길 수 있는 가십만 보지 말고, 검찰 수사 결과나 피의자들의 증언을 보셔야지요. '피의자 박근혜'를 필두로 그의 공범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를 더 낱낱이, 매의 눈으로 보시란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킬킬거리는 모습이 보기 민망스럽다는 이들도 있었다"며 본인은 아닌척 짐짓 에둘러 가셨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글을 끝맺음 하셨더군요.

이문열이 원하는 '보수의 죽음', 문자 그대로 이뤄지기를

"하지만 이 또한 어찌하랴. 그 촛불이 바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성난 민심이며 또한 바로 '국민의 뜻'이라는 것은 지난 한 달 야당의 주장과 매스컴의 호들갑으로 이제 누구도 쉽게 부인할 수 없는 논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큰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가까운 날 대통령의 자진 사퇴라도 이루어지면, 그래서 비상한 상황의 권력 변동이 일어나면 보수의 위기는 한층 더 확정적인 사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땅의 보수의 길은 하나밖에 없다.

죽어라, 죽기 전에. 그래서 진정한 보수의 가치와 이상을 담보할 새로운 정신으로 태어나 힘들여 자라가기를. 이 땅이 보수 세력 없이 통일되는 날이 오기 전에 다시 너희 시대를 만들 수 있기를."

미안하지만, "그 촛불이 바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성난 민심이며 또한 바로 '국민의 뜻'이라는 것"은 "지난 한 달 야당의 주장과 매스컴의 호들갑으로 이제 누구도 쉽게 부인할 수 없는 논리"가 아니라 진짜 국민의 뜻입니다. 그저 "4500만 중에 3%"라고 우기시려면, 제발 박근혜 대통령이 그리도 신뢰했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지지율 4% 대통령, 국민 70% 이상이 탄핵과 하야를 원하는 '진짜 국민의 뜻'을 말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공감하는 대목이 하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 땅의 보수의 길을 "죽어라, 죽기 전에. 그래서 진정한 보수의 가치와 이상을 담보할 새로운 정신으로 태어나 힘들여 자라가기를"이라고 지정해 주신 것 말입니다. 그것이 칼럼 전반부, 바호메트의 금언을 비유로 따온 맥락이라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국민의 뜻'은 실제적인 보수의 죽음을 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공범들에 대한 처벌과 한국사회의 대변혁을 열망하고 있는 바로 그 국민들이 말이지요.

물론, 선생님께서는 보수 세력의 재결집과 재정비를 위해 칼럼을 그리 마무리하셨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이 보수 세력 없이 통일되는 날이 오기 전에 다시 너희 시대를 만들 수 있기를"이란 마지막 문구는 확실히 진보 세력에게, 촛불 민심에게 보내는 경고와도 같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의 고언을 이미 들어서인지 몰라도 비박계는 4월 퇴진을 못박으며 민심에 거스르는 결정을 내렸더군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휴가지를 찾아가고, MB 정부 하에서 문화부장관이나 총리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던 선생님께서 박 대통령과 현 정부를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해 오셨던 것도 잘 알려져 있지요.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보수의 죽음'은 실제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께서 나서주십시오. 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새누리당과 범보수 세력에게 훨씬 더 강력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 주십시오. 그럴 때만이 선생님의 진심 역시 쉬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겁니다. 선생님도 사회 원로시니까요.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했던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걸 잘 봐 두어라!"라는 일갈 속 '노인'이 되지 않으시려면 더 정진하셔야지요. 

아, 어쩌면 힘드실까요? 보수정권 재창출에 힘을 기울이시고, '9인회' 중 한 명인 서청원의원과도 친하신 선생님께서도 '공범'으로 오해를 받으실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속담 하나를 건네 드리며 편지를 마치려고 합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속담 말입니다.

공들여 칼럼까지 쓰셨는데, 같이 '공범'으로 몰리면 억울하실테니까요. 그렇게, '촛불 민심' 따위 두려워 마시고, 계속 건필해 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어차피 그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하고 구속될 때 까지, 그리고 그 공범들이 완전히 "죽어라, 죽기전에"와 같은 지경에 이를 때까지 계속 타오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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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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