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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 기사 한눈에

  • 현재 시점에서의 개헌은, 개헌 논의 자체가 자신의 정치 생명 연장에 유리한 사람에게만 유효한 정치적 선택이다.
  • 현재 시점에서 개헌을 추진한다면, '우리나라 의원내각제 추진 오욕'의 역사에 또 한 자락의 사례를 남기는 것밖에 안 된다.
  • 우리는 이미 개헌을 위한 절호의 시기를 한 번 놓쳤다. 지금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일 뿐이다.
대한민국에선 역사상 중요 고비 때마다, 내각제 개헌 시도가 있었다. 단군 이래 처음, 민중의 힘으로 권력자를 내몬 4월 혁명 이후 새로 만들어진 헌법은 권력구조로 내각제를 채택했다. 1년 뒤 5.16 쿠데타로 민주당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가 대한민국 역사에 유일한 내각제 통치기간이었다.

어릴 때 대한민국 정권의 순서를 알아보다가 "1961년에 대통령은 윤보선이었는데, 왜 장면 정권이라고 하느냐"고 아버지께 물은 적이 있다. "의원내각제였기 때문에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는데,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는 좀 어려운 개념이었다.

강력한 1인 통치체제를 선호하는 군부독재세력은 의원내각제보단 대통령제를 선호했다. 박정희도 그랬고, 전두환도 그랬다. 군부세력이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의원내각제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은 1980년대 분출한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들고 나온 국민들의 요구를 더 이상 묵살할 수 없었던 전두환 정권은 개헌 논의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나온 응답은 직선제 개헌이 아니라 내각제 개헌이었다.

DJ(김대중)와 YS(김영삼), 양김의 카리스마에 대항할 정치인이 없던 군부세력으로서는 장기집권이 용이한 내각제가 구미에 당겼을 수밖에. 그러나 양김이 있는 야당 세력과 직선제 쟁취의 열망에 가득찼던 국민들을 설득할 수는 없었다. 군부 독재는 국민을 어르고 달래며 내각제의 장점을 홍보했지만, 국민 여론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때 야당인 신민당의 이민우 대표가 이른바 '이민우 구상'이라는 것을 들고 나왔다. 요약하자면 민주주의가 확실히 구현된다는 보장을 하면 의원내각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제안이다. 의원내각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논리였다. 군부독재 세력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나섰고, 양김을 비롯한 야당과 국민들은 발칵 뒤집혔다.

이민우 대표가 뜬금없이 의원내각제를 수용할 수 있다고 나선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설로 밝혀진 것은 없다. 확실한 것은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배신했다는 사실이고, 이민우 대표는 그 구상을 기점으로 정치 생명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3당 합당과 함께 다시 살아난 내각제 개헌 시도

시정연설하는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시정연설하는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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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 줄 알았던 군부독재 세력의 내각제 개헌 시도는 1990년 3당 합당과 함께 다시 살아났다. 여소야대 국면을 탈출하기 위하여 노태우의 민정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기로 각서를 쓰고 3당 합당을 단행한다. 노태우 대통령이야 이미 단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니 차기 정권에서 영향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의원내각제가 필요했을 것이고, JP는 대통령에 당선될 정도는 되지 않으니 국무총리 자리를 노렸을 것이다.

3당 합당의 세 주체 중 의원내각제가 내키지 않았던 것은 YS뿐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쓴 각서도 무시하고 특유의 돌파력으로 여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를 쟁취해낸다. 아마도 YS는 애초부터 내각제 개헌에 관심이 없었을 공산이 크다. 그냥 이질적인 정치세력을 하나로 묶어내는 도구로 의원내각제가 쓰였을 뿐이다.

YS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JP는 자민련을 창당하고 충청도를 기반으로 독자적 정치 세력을 꾸린다. 내각제 개헌 시도는 JP를 통해 불씨가 살아남았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되기에는 2% 부족하였고, 만년 2인자라는 불명예스런 꼬리표를 뗄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탈출구는 의원내각제였다.

의원내각제는 물과 기름처럼 절대로 섞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DJ와 JP의 연합을 일구어냈다. 둘의 유일한 공통점이라곤 영문 이니셜에 J가 들어간다는 것 하나였건만, 내각제 개헌 추진이라는 접착제를 통해 DJP 단일화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YS와 마찬가지로 DJ에게도 내각제 개헌 약속은 집권을 위한 도구였을 뿐 내키는 권력제도가 아니었다. 역시 JP의 오래된 꿈인 내각제는 물거품이 되었다. 이렇게 1980년대의 내각제 개헌 시도는 완벽히 사라졌다. 그리고 탄핵 파동에 이은 열린우리당의 부상과 함께 JP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을 주목한 까닭

JP의 퇴장과 함께 의원내각제 개헌 시도는 잠잠해졌지만, 1987년 체제에 대한 회의가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모두 말년에 여당에서 탈당을 하는 내홍을 겪고 정권 말 위기에 처하는 것을 보면서 6월 항쟁의 결과물인 87년 헌법의 정치적 효율성이 의문시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87년 헌법의 가장 큰 힘은 절차적 정당성에 있었다. 집권자의 집권 연장 수단이 아니라 민주화 열기가 이끌어낸 헌법 개정이었다. 87년 헌법 개정이 9차 개헌이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 39년 동안 9차례 개정이 되었으니 평균 4.3년에 한번씩 헌법이 개정된 셈이다. 그럼에도 87년 헌법이 30년 가까이 개정되지 않은 것은 6월 항쟁의 절차적 정당성이 끊임없는 개헌 시도를 무산시키는 역사적 원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2002년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후임을 결정하는 대통령 선거가 2007년에 있음에 주목하였다. 5년 단임제 대통령으로서 네 번째 대통령이고 그의 임기 말은 정확히 1987년으로부터 20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5년 주기 대통령의 임기와 4년 주기 국회의원의 임기가 처음으로 다시 만나는 날이었다.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웠던 5와 4의 최소공배수, 그게 바로 20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주요 권력의 임기 단축 없이 개헌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하였다.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딱 한 조항의 개정만 제안한 것이다. 이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박근혜 대표가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은 유명하다. 그때 남긴 한마디가 바로 "참 나쁜 대통령"이었다.

오늘날 박근혜 대표의 추락은 그때 예견됐다. 국가 백년지대계에 대한 생각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MB(이명박)도 박근혜도 대부분의 임기 동안 개헌에 대해서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들에게 87년 체제의 개선이란 과제는 자기들의 권력 안정 혹은 정권재창출에 도움을 줄 경우에만 시도해볼 수 있는 부차적 문제였을 것이다.

과거의 박근혜는 오늘의 박근혜를 반박하는 근거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개헌론은 아이러니하게도 개헌을 추진하는 대통령을 향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 비난한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지난 10월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제안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박근혜의 과거는 오늘의 박근혜를 반박하는 근거가 된다. '참 나쁜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조기 레임덕을 극복하고 정국을 장악하겠다는 대통령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제안이었으나 일부에서는 그래도 수명이 다한 87년 체제의 혁파를 위하여 개헌 제안을 받아들이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있었다. 적어도 그날 저녁 JTBC의 최순실 PC 특종보도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숨 가쁜 한 달여가 지난 지금, 한국 정치의 만년 2인자 JP의 숙원이었던 의원내각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YS를 3당 합당으로 이끌었고, DJ와 JP를 접착시켰던 의원내각제가 이 시점에 다시 떠오르기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새누리당을 살펴보자. 친박 주도에 의한 반기문 대통령 프로젝트는 무산되었다고 봐야 한다. 친박은 차기 대통령을 배출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 유일한 정치적 활로는 내각제 개헌이다. 내각제 개헌을 한다면 미세하게나마 남아있는 TK지역의 정치적 지분을 활용하여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정치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원포인트 개헌이 아닌 개방적 개헌 논의 구조는 국가를 백가쟁명의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논의 구조의 확대는 박근혜-최순실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사태를 희석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탈출구다. 친박에게는 정국 구조를 단숨에 바꿔버릴 수 있는 카드인 것이다.

비박은 오히려 친박보다 내각제 개헌에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비박이라 한들 박근혜 꼬리표를 완전히 잘라낼 수 없다. 이미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 김무성은 대통령 후보 자리를 포기하였다. 재밌는 것은 다음이다. 대선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더니, 국회의원 선거는 다시 넘보고 있다. 의원내각제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의원이 내각에 참여하여 총리도 하고 장관도 하는 제도다. 대통령을 안 한다는 것이지 권력자의 자리를 포기했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3차 담화문에 담긴, 그의 진심

더 재밌는 사실은 김무성 전 대표가 '친문과 친박을 빼놓고는 다 연대할 수 있다'고 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박근혜 대통령은 아웃이고 더불어민주당과는 연대할 수 없고, 국민의당과는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DJ를 계승했다고 하는 호남 기반의 국민의당과 새누리당 비박 계열은 무엇을 매개로 연대를 할 것인가?

여기서 다시 1980년대 이후 한국 정치사에서 주요 고비마다 등장했던 '의원내각제'라는 접착제가 등장할 것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 등장한 제3후보들이 번번이 실패한 것은 대통령제가 권력 분점을 하기에 매우 불편한 제도였기 때문이다. 양보하는 후보가 모든 것을 내주는 구조였기 때문에 양보가 쉽지 않고, 그를 따르는 참모들이나 지지자들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각제는 다르다. 일정의 정치적 지분만 있다면 협상에 의해 권력을 최대한 행사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야당 사이의 교착 국면에서 비박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 열쇠를 장악하게 되는 것을 보면, 비박에게 의원내각제가 구미에 당기는 제도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야당으로 넘어가면 국민의당이 의원내각제의 유혹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호남이라는 확고한 정치기반이 있지만, 대통령감이 없다. 안철수는 동교동계 직계가 아니다. 안철수를 밀어 대통령에 당선을 시킨다 해도 동교동계 입장에서는 제2의 노무현일 뿐이다. 자신의 권력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고 있다. 3차 담화문의 핵심 조항을 인용한다.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

대통령이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법 절차는 헌법밖에 없다. 하야는 정치적 결단이고, 탄핵은 헌법이 규정한 사법적 수단이다. 이 두 개를 제외한 방법은 바로 헌법 개정뿐이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 담화문에 나타나 있는 속내는 국회가 알아서 헌법을 개정하여 자신의 임기를 단축하면 받아들이겠다는 정도의 의미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고민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발언일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헌법 개정 논의에 들어가면 정국은 블랙홀이 되어 버린다. 내각제 추진론자와 대통령 4년 중임제 추진론자의 합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문제는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하자는 주장도 한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참에 오랫동안 문제가 제기되어 온 사회적 시장 경제 조항을 손보자는 의견에, 영토 조항을 손보자는 이야기, 헌법 전문에 건국절을 넣자는 이야기까지... 백가쟁명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권력 나눠먹기... 그들의 불순한 의도가 보인다

김무성 "범국민 개헌특위 구성해야"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24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논의를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여야와 정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김무성 "범국민 개헌특위 구성해야"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지난 10월 24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논의를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여야와 정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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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개헌특위 구성하는데만 시간은 훌쩍 갈 것이고, 아마도 몇 달은 지루한 공방이 계속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헌법이 보장한 박근혜의 임기도 성큼 성큼 다가올 것이고, 어느 시점이 되면 합의가 안 되니 그냥 현행 헌법대로 가자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혹자는 이번 기회에 대통령 결선 투표제 도입 같은 딱 한 개의 포인트만 잡아서 개헌을 하자는 이야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원 포인트 개헌도 정치권의 문턱을 못 넘었는데, 이번에 누가 나서서 그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그것도 곳곳에 의원내각제에 구미를 당겨 하는 여러 정치 세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포인트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원 포인트 개헌도 힘든 것이다.

국민의당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의원내각제가 구미에 당겨도 새누리당 개헌 세력과 손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탄핵 역풍으로 정치 세력 자체가 존폐의 위기에 빠졌던 경험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개헌은 불가능하다. 혹자는 87년 체제 혁파를 위한 개헌에 문재인이 걸림돌이라 주장할지 모르지만, 아마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 도입을 위한 개헌을 주장하면 그날로 문재인은 '대통령병 환자'로 매도될 것이다. 차기 대통령 자리와 아무 상관없던 노무현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 제안이 어떻게 무산됐는지만 살펴보아도 이는 불문가지의 일이다.

현재 시점에서의 개헌은, 개헌 논의 자체가 자신의 정치 생명 연장에 유리한 사람에게만 유효한 정치적 선택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천하가 다 알고 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의원내각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제도이다. 그 자체로는 매우 훌륭한 제도이지만 1987년 이민우 파동부터 3당 합당, DJP단일화, 그리고 현재 정치권 물밑에서 추진되는 사례까지... 하나같이 권력 나눠먹기의 불순한 의도 하에 추진되어 왔다.

꽃이 꽃이기 위해서는 그 밑의 토양이 받쳐줘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개헌을 추진한다면, '우리나라 의원내각제 추진 오욕'의 역사에 또 한 자락의 사례를 남기는 것밖에 안 된다.

필자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부터 줄곧 개헌을 주장한 사람이다. 할 수만 있다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둘 중 하나의 임기를 단축해서 불규칙한 선거 주기의 폐해를 줄이고, 권력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정치적 이상만 갖고 정치 현실을 재단할 수 없다. 87년 체제의 혁파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정권 초기부터 개헌 논의를 활성화해, 시간을 두고 국민적 동의를 끌어낸 뒤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할 비전을 제시하는 대통령을 뽑는 방법 밖에는 없다.

우리는 이미 개헌을 위한 절호의 시기를 한 번 놓쳤다. 지금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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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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