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캐릭터와 배우가 동일 인물처럼 여겨져 혼동할 만큼 내가 그리 촌스러운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서인국이 루이를 연기한 바람에 촌스럽기 짝이 없는 그 함정에 빠졌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샹들리에가 예쁜 한 카페. 여전히 서인국이 루이라는 착각 속에서 나는 종영한 MBC 드라마 <쇼핑왕 루이>의 주연배우 서인국을 만났다.

루이처럼 아이 같고 천진한 구석은 있지만, 깊이 있는 생각들을 성숙한 말솜씨로 유려하게 쏟아내는 서인국이 꽤나 당황스러웠다. 아니, 루이가 이런 사람이었어? 끈을 엮듯 계속 붙잡고 이어온 연기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진하게 배어져 나왔다. 

촬영 전 캐릭터 고민, 스트레스 엄청나

서인국, 쇼핑같이가고 싶은 남자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에서 루이 역의 배우 서인국이 2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에서 루이 역의 배우 서인국이 2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해맑고 늘 편안해 보이는 인상 탓(?)에 서인국은 '타고난 재능'으로 연기하는 연기자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재능형 인간으로 분류해버리기엔 그가 붙잡고 있는 고민들이 꽤 묵직해보였다. 하나의 배역을 맡고 실제 촬영에 들어갈 때까지, 서인국은 어떻게 그 캐릭터를 충실히 현실화할지 고민하느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편이다.

'프랑스 온실 화초남'이 복실(남지현 분)을 만나고 내면이 성숙해가며 깊어지는 눈빛까지. 루이가 변해가는 과정 하나하나 서인국의 연구가 깃들지 않은 게 없었다. 특히 루이의 심리 상태나 성격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손짓과 말투 등 '디테일'이 아주 섬세하단 생각을 했는데, 이에 대한 질문에 서인국은 그간의 고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루이는 왕자처럼 갇혀 살아서 정신연령이나 정서가 또래보다 어릴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 중에 기억까지 잃었으니 온 세상이 불안했을 거고요. 그런 내재적인 불안감을 몸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손가락을 움직거리는 동작을 설정해봤어요. 부각되는 컷이 아닌데 이렇게 알아봐주실 때 기분이 너무 좋아요. 하지만 걱정이 정말 많았어요. 내가 정답이라 생각하고 연기하는 걸 시청자분들이 오답으로 받아들이시진 않을까 두려웠어요. 루이가 독특한 캐릭터인데, 결국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야 하니까 접근 자체가 어렵더라고요."

회차를 더할수록 서인국은 루이 그 자체처럼 보였다. 제3자의 입장에서 루이를 설명하는 서인국의 모습이 낯설 정도로.

"초반에 루이스러우면서도 어두운 면을 갖고 있는 걸 표현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런데 기억을 잃으면서 백지가 되고, 점점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루이가 인간으로서 자기 색깔을 찾아가요. 기억을 잃기 전 루이는, 뭐랄까, 회색이 끼어있는 충충한 톤의 노란색이었는데 복실을 만나면서 개나리에 가까운 노란색으로 점점 색이 짙어져요. '싫어!'라는 말도 세게 이야기하고요. 자기 주도하에 사기극도 하고, 사랑 표현도 하고. 루이의 변화예요. 그 표현에 집중했어요."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에서 루이 역의 배우 서인국이 2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인국은 '루이'란 캐릭터에 애정을 갖고 있다. ⓒ 이정민


서인국은 인물의 '표현자'로서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생각을 피력하는 연기자다. 현장에서 이것저것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감독님에게 새로운 길을 제안한다. 원래 대본에는 "복실아" 부르는 걸로 돼 있었는데 "복실"이라고만 부르는 게 '더 루이스럽다'고 생각해 제안했고 감독님이 수락했다. 이런 뒷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는 복실!, 복!실, 복실~, 복실?, 복...실...하고 다양한 버전으로 복실을 호명해보였다. '김집사님'도 원래 대본에는 '김집사'로 부르는 것이었지만 그의 생각엔 반말보단 '김집사님'으로 존대하는 게 루이에게 더 맞는 것 같아 건의했다.

"캐릭터 창시자(작가와 감독)가 글로써, 연출로써 나타내는 것을 저는 구체적인 표현자로서 '같이'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촬영 전에 상대배우와 리허설을 많이 하면서 이것저것 맞춰봐요. 부산에서 복남이를 만나는 신에서 원래는 "복남이 찾았다!" 여기까지 대사였는데 막상 복남이를 안으니까 너무 울컥하는 거예요. 감독님에게 울어도 되는지 허락받고 "복실이 볼 수 있겠다" 이 대사도 제 감정이 시키는 대로 넣게 됐어요."

이야기 전체를 바라보는 눈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에서 루이 역의 배우 서인국이 2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인국은 연기에 대한 고민이 치열하다. ⓒ 이정민


수목극의 약체로 불리며 5%의 시청률로 시작한 <쇼핑왕 루이>는 시청자들의 입소문으로 10%를 넘기는 저력을 보였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드라마 자체가 '웰 메이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웃기고 재미있는데 그 속에서 메시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했다. 서인국도 이에 백번 동의했다. 연기를 하면서도 "작가님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고.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물었다.

"마지막 할머니가 떠나는 장면이요. 노래 '마이웨이'가 깔리면서 할머니가 빨간 구두를 신고 떠나잖아요. 사람이 하늘로 가는 신을 그렇게 표현했단 게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쇼핑왕 루이>란 드라마는 이야기 안에 나쁜 사람이 있고, 이런저런 사고도 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상에서 살고 싶잖아요. 참 동화 같은 드라마예요. 그 점이 훌륭했죠." 

<쇼핑왕 루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야기다. 그에게 이 드라마의 주제를 물었다. 서인국은 대뜸 극중에서 루이가 부른 '지금 이 순간'을 언급하는 것으로 답변을 시작했다.

"루이가 이 노래를 부를 때 할머니 눈에 눈물이 고이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하시잖아요. 마늘껍질이 날리고 카메라가 넓은 앵글로 거실에 있는 모두를 쭉 비추죠.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이 이 드라마의 주제인 것 같아요. 작가님 원래 성향도 그렇더라고요. 죄는 미워해도 사람 자체를 미워하진 않는 성향이 드라마에 다 묻어났어요."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에서 루이 역의 배우 서인국이 2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인국은 '즐거운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해 촬영장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 이정민


4번의 키스신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키스신을 묻는 질문에는 첫 번째 키스를 꼽았다. "첫 키스신까지의 서사가 중요해요. 만약 우리가 1회부터 키스했다면 아름답지 않았겠죠. 루이와 복실이 긴 서사를 거쳐서 마침내 처음으로 입술이 부딪혔을 때. 자기들끼리 놀라서 뗐다가 다시 하고. 그런 것들이 아름다워요. 드라마 자체의 서사가 탄탄해서 첫 키스가 더욱 아름다울 수 있었어요."

가벼운 질문에도 극 전체의 서사에 기반하여 답변하는 서인국은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똑똑한 배우였다. '현실성'을 거듭 강조하는 그의 통찰도 놀라웠다.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 장르소설이라도 판타지적 설정이 끝난 후 그것을 풀어낼 땐 최대한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있는 이야기가 된다. 서인국은 그것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이 드라마는 CG와 뮤직비디오 같은 요소, 과한 설정들이 가벼운 듯 많이 들어있지만 그걸 현실적으로 풀어내려고 연기자들이 많이 노력했어요."

음악과 군대와 연애 이야기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에서 루이 역의 배우 서인국이 2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인국은 말을 잘한다. ⓒ 이정민


"음악은 항상. 생각을 해요. 음악 생각은 항상."

서인국은 Mnet <슈퍼스타K> 시즌1에서 우승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이젠 그를 '배우 서인국'으로 먼저 인식하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연기로써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응답하라 1997> <주군의 태양> <고교처세왕> <왕의 얼굴> <너를 기억해> <38 사기동대> 등 출연작마다 호평 받았다. '배우 서인국'으로 먼저 불리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표면적인 것 같다"고 했다. 드라마는 3개월 정도 지속성을 띠며 방송되지만 음악은 주목받는 시간이 훨씬 짧기 때문이라고. 자신은 음악을 한 순간도 놓지 않고 계속 하고 있지만 대중이 긴 기간동안 보여지는 드라마로 자신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3월에 앨범 <너라는 계절>을 발표했고 꾸준히 다음을 위한 작업 중이다. <38 사기동대> 촬영 때도 현장에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음악작업을 이어갔다. "저 스스로 느끼기에 제 안에 채워져 있는 건 음악과 연기 두 가지예요. 주변 형들과 술자리에서 연기와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아요." 연애 이야기는 안 하냐 묻자 "그것도 무지 하죠"라며 끄덕였다. 연애할 때 스타일은 주도적인 편이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이거 하자, 저기로 가시죠 하고 리드하는 편"이라며 "상대가 여기 별로인데 그러면, 그래 그럼 저쪽으로 가실래요" 한단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을 별로 어려워하지 않는다고.

올해 서른이 된 서인국은 "이번 년도에 정말 열심히 일했다"며 한해를 돌아봤다. 한편으로는 뿌듯하지만 여행도 가고 개인적인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쉽다고 했다. 30대는 더욱 즐기면서 일하고 인생 경험을 많이 하고 싶다고. 군대도 가야한다. "내년 초에 영장이 나오면 바로 가려고요." 대답하는 그의 얼굴에 그늘은 없었다.

"걱정되진 않아요. 다만 군대기간 동안 흘러가는 트렌드를 잃을까봐 걱정돼요. 저는 음악을 해야하고, 무대 위의 의상도 신경써야 하고, 연기할 때 캐릭터도 신경써야 하는데 요즘은 말투도 너무 빨리 변하고... 그런 감성적인 부분을 못 따라갈까봐 걱정이에요. 제대 후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배워야죠."

그는 2일 자정, 도끼와 함께 피처링으로 참여한 래퍼 더블케이(Double K)의 신곡 'OMG'를 공개했다. 서인국은 연기뿐 아니라 자신의 음악세계도 부단히 넓혀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작품 속의 그 캐릭터로 보일 수 있는 배우면 좋겠어요." 어쩐지, 서인국이 루이처럼 보이더라니. 캐릭터를 만들 때 겁이 많아서 "엄청 불안해하고 무서워한다"는 그는 겁이 나는 그만큼 연구하고 고민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서인국은 "오늘 시원하게 수다 떤 기분"이라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루이가 더블샷 막심골드를 마실 때의 표정이었다. 오랜만의 인터뷰라 할 말이 '이만큼' 쌓였었다며 팔을 크게 휘저었다. 단지 오랜만이어서가 아니라 혼자 쌓아온 고민들이 워낙 많아서 그토록 시원했을 거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인국, 쇼핑같이가고 싶은 남자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에서 루이 역의 배우 서인국이 2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인국 ⓒ 이정민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에서 루이 역의 배우 서인국이 2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인국은 캐릭터 자체가 되는 배우를 꿈꾼다. ⓒ 이정민



서인국 쇼핑왕루이 인터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