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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날씨 예측이 힘들어졌습니다. 어떤 날은 너무 덥고 어떤 날은 너무 춥죠. 겨울이지만 갑자기 풀린 날씨에 꽃이 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는데요. 갑자기 변한 날씨와 맞지 않은 옷을 입고 거리를 걸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제가 입은 옷의 부끄러움도 잊은 채 아침에 꺼내놓은 아이들의 옷이 마음에 걸립니다. 자주 감기에 걸리고, 감기에 걸리면 도돌이표처럼 두 녀석이 '너 다음에 나 다음에'를 다투며 병치레하기 바쁜데요.

너무 이른 아침에 출근, 늦은 저녁에 퇴근을 하니까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날씨에 맞지 않는 옷을 입혀 보내서 덥거나 추워할 아이들이 신경 쓰이는 거죠.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는 것이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하는 제 탓인 것만 같아 속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이게 뭐야?"라며 입고 있던 카디건에 붙은 스티커를 팀장님께서 떼어주셨는데요. 아이들이 3~5세 사이일 때쯤. 스티커만 주면 20~30분은 조용할 정도로 몰입하는 시기였을 겁니다. 엄마에게 일부러 붙여줬는지 혹은 제가 앉거나 기댔다가 옷에 붙었는지 모를 뽀로로 스티커와 함께 회사에 출근한 게 몇 번이나 된답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다는 기사가 연일 등장하는데요. 소비 위축으로 의류 신발의 지출이 전년 동기 대비 0.7%p가 줄었고 14분기 연속 감소 추세라고 합니다.

하지만 매년 5~10cm씩 쑥쑥 커가는 아이들의 옷을 안 살 수 없습니다. 계절마다 소매나 기장이 짧아진 아이들의 옷을 교체해줘야 합니다. 쌍둥이 남매라 같이 입거나 물려받을 수가 없어 아이들의 옷은 커다란 서랍 하나를 교체해야 하는 분량으로 계절마다 옷을 사고 있습니다.

워킹맘 옷장엔 18년 된 정장이

반면 저는 정장을 산 지 적어도 3년은 넘은 것 같아요. 물론 아이들보다는 제 옷이 숫자로 봤을 때 훨씬 많습니다만, 이상하게도 늘 입을 옷이 없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이 가득 찬 옷장을 열어보고 입을 옷이 없다며 한숨 쉬는 것을 멈추기 위해 옷장에 무슨 옷을 가지고 있는지 뒤져봤습니다. 1998년에 구입한 원피스, 1999년 대학 졸업앨범을 찍기 위해 구입한 정장까지 무려 18년이 된 옷들을 가지고, 입고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워킹맘 동료들의 사정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8년까지는 아니지만 아이 낳기 전후로 구입한 10년이 넘은 옷을 깔끔하게 돌려 입기 바쁘더라고요.

화장하는여성, pixabay
▲ 화장하는 여성 화장하는여성, pixabay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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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니는 회사의 드레스코드는 정장이 기본이라 그에 맞게 화장도 하고 다녀야 합니다.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던 회사에서 지금의 회사로 이직한 10년 전에는 아이가 없을 때라 계절별로 정장 세트를 두세 벌씩 구입했습니다.

화장도 열심히 하고 다녔죠. 쌍둥이 남매를 출산하고 복직한 뒤 약 1년간 아이들이 어림에도 불과하고 열심히 옷을 사고 화장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구입한 옷은 디자인이나 사이즈 미스로 절반의 성공에 그쳤고, 아이들이 출근 배웅을 시작하면서부터 화장도 천천히 옅어졌습니다.

"엄마 뽀뽀"를 외치는 아이들을 위해 립스틱은 대문을 닫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혹은 안에서 슥슥 바릅니다. 회사에 도착에서 화장을 하는 워킹맘도 있죠. 저는 이미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얼굴이 노출되었는데 새삼스레 화장실에서 다시 메이크업을 하는 것이 어색해서 외근이나 외부 회의가 없는 날에는 그냥 하루를 버팁니다. 퇴근하면 신발을 벗기가 바쁘게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달려드는 두 녀석 때문에 차라리 메이크업을 덜 하는 것이 시간 절약이라는 계산도 깔려있습니다.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화장을 하는 여성을 보면 전에는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했는데요, 지금은 나름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집에서 풀 메이크업을 할 상황이 안 되는 경우도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아예 화장을 포기한 저보다는 그래도 부지런한 사람이려니 생각한답니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결혼 전후로 체형이 크게 변하지 않은 저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말에 힘입어 인생 100세 시대에는 생물학적으로도 두세 번 결혼하는 게 맞으니까 관리 중이라는 얘기를 농담 삼아했더니 "얼굴에 메이크업이나 하고 관리 중이라고 말씀하시죠!"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처음 만난 10년 전에는 곱게 화장하고 다니더니 이제 맨얼굴도 안 부끄러운 사이가 돼버렸냐는 지인의 반박에 살짝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침에 아이들과 출근인사를 나누는 대신, 퇴근 후 정신없이 수다를 떠는 아이들 대신 약간의 시간만 넉넉했다면 풀 메이크업이 대수겠습니까.

출퇴근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특히 퇴근길은 워킹맘에게 100미터 달리기와 같이 바쁜 길이기에 구두 역시 오래전에 단화로 바꾸었습니다. 회사에 도착하면 구두로 갈아 신고, 아침저녁 출퇴근길에는 단화를 신고 다닌답니다.

주말에는 아이를 안고 다녀야 하고, 주 중에는 지하철에서 읽을 책이 든 무거운 가방을 지고 지하철 환승구간마다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를 했습니다. 최근에는 많이 줄었지만 아이가 일곱살이었던 지난해만 해도 밖에서도 자주 안아달라, 업어달라고 했었거든요. 점점 낮아지는 구두굽이 결국 단화로 바뀌었네요.

내가 이러려고 워킹맘 했나 싶다가도, 아이만 보면...

아이를 핑계 삼아 복장도 메이크업도 신발도 포기하고 지내다 보니 내가 이러려고 워킹맘을 하나 싶은 자괴감이 들기도 하죠. 아이들 옷은 계절별로 사면서 나를 위한 옷 한 벌 마음껏 못 구입하다니 말입니다. 쌍둥이 남매보다 더 어린아이 둘을 둔 동네 워킹맘 한 분과 아침마다 노 메이크업의 피곤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곤 하는데요. 주말 마다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것을 봐주느라 사정을 뻔히 아는 저희는 서로 안쓰러운 눈빛을 주고받곤 합니다.

문득 쌍둥이 남매가 태어나기 전에 같이 직장생활을 했던 워킹맘 J가 생각났습니다. 계절별로 자신을 위해 옷을 사고 마스카라와 립스틱을 생략하지 않고 화장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죠. 당시에는 넉넉한 부모님을 모시고 사니까 저렇게 꾸밀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보니 지금의 저는 당시 J의 아이와 비슷한 연령이 되었고, 저희 부부의 소득수준도 그때보다 두 배가량 넉넉해졌어요. 그러나 저는 저의 외모를 위해 J의 절반도 투자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과도하다고 생각했던 J의 옷 구입과 화장은 소비는 둘째치고 보통의 노력과 부지런함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물론 외모를 가꾼다고 일과 육아를 소홀히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계절마다 유행에 따라 옷을 사 입고, 매일 아침 깔끔한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고 사무실에 등장하는 젊은 직원들이 조금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나도 저 때엔 저렇게 화사한 느낌이었을텐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저를 꼭 끌어안으며 입술에 뽀뽀를 해준 아이의 체온을, 아이의 표정을 사무실에 올 때까지 담고 있습니다. 화장을 안 해도 아이에게 저는 최고의 엄마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립스틱을 짙게 바르지 않아도 워킹맘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사회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만큼, 직장에서 버텨내는 만큼 더 예쁘게 성장할 워킹맘이 가진 내면의 가치를 인정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까칠한워킹맘, #워킹맘육아, #쌍둥이육아, #오피스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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