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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 표 택배 상자가 왔다. 상자를 열어 보니 뭔가가 끊임없이 나온다. 인절미, 백설기, 시루떡, 찹쌀떡, 송편. 온갖 종류 떡 한가득!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귤, 식빵, 어묵, 홍합, 조기, 고등어까지….(우리 부부는 고립된 산골에 사는 게 아닌데.)

그전에도 자주 먹을거리 보내주시긴 했으나 이번처럼 종류가 다양하긴 또 처음. 이걸 하나하나 싸서 택배까지 부치시느라 칠십 대 후반, 여기저기 아픈 곳 투성이인 어머니가 힘드셨을 거 같아 눈물이 다 나려고 한다. 한 상자 가득한 먹을거리를 풀어놓고는 택배 잘 받았노라고 전화부터 드린다.

"어머니, 이번에 보내주신 거 엄청 다채로운걸요? 식빵에 생선까지! 홍합도 보내신 거 맞죠? 미역국 끓여 먹어야겠어요. 이거 싸느라 고생 엄청 많으셨죠."

"힘들긴, 싸면서 재밌었지. 택배 부치는 데 이렇게나 많이 어디로 보내느냐고 묻더라. 우리 며느리 준다니까 한 아줌마가 그러네. 요즘 어느 며느리가 이런 거 보내준다고 먹기나 하냐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우리 며느리는 잘 먹는다고."

재밌게 싸셨다는 말씀에 '울컥' 하고 뜨거운 무엇이 가슴에서 올라온다.

"재밌게 싸셨으면 다행이고요. 저도 재밌게, 맛있게 자알 먹겠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삐딱한 며느리였던 나, 변했습니다

시어머님 표 택배 상자가 왔다. 상자를 열어 보니 뭔가가 끊임없이 나온다. 인절미, 백설기,  시루떡, 찹쌀떡, 송편. 온갖 종류 떡 한 가득!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귤, 식빵, 어묵, 홍합, 조기, 고등어까지…….
 시어머님 표 택배 상자가 왔다. 상자를 열어 보니 뭔가가 끊임없이 나온다. 인절미, 백설기, 시루떡, 찹쌀떡, 송편. 온갖 종류 떡 한 가득!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귤, 식빵, 어묵, 홍합, 조기, 고등어까지…….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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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살 때 나는 삐딱한 며느리였다. 한 번씩 떡이든 반찬거리 챙겨 주시면 속으로, '내가 자기 아들 잘못 먹일까 봐 걱정되신다, 이거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시는 거 받지 않을 수 없어서 가져다가는 냉장고에 처박아두고는, 시간이 길게 흘러 먹기에 곤란한 지경에 이르면 하나하나 꺼내서 버렸다(한가롭게 떡 쪄서 먹을 시간 같은 거 없기도 했고, 어머니 표 반찬이 입맛에도 잘 맞지 않아서). 그렇게 버릴 때, 죄송하지 않았다. 어머님께도 음식들에도.

시골에 살면서 식구들이나 아는 사람들한테 이것저것 싸 보내면서 알았다. 누군가를 위해 먹을거리 챙기는 마음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래서 몸에 좋은 거 하나라도 더 넣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고, 그렇게 상자에 차곡차곡 넣다 보면 어느새 한두 시간 훌쩍 가 버린다는 것도.

그렇게 정성껏 싸고, 읍내 나가서 택배까지 보내고 나면 두근두근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이걸 좋아할까? 안 좋아하면 어쩌지? 아, 저것도 넣을 걸….'(어머님께 택배 받으면 꼭 먼저 열어보고, 이 음식도 저 음식도 잘 받았고 잘 먹겠노라고 전화 드리는 것도 보내는 사람의 이런 마음을 절절히 느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어묵에, 생고등어 얼려서 보낸 비닐봉지까지 보면서 분명 짜증을 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면서.

'내가 어묵 못 먹어 안달인 줄 아시나, 여기도 어묵 파는 데 많다고! 냄새 섞이게 떡이랑 고등어를 같이 싸서 보내는 건 뭔데. 고등어는 생물로 먹어야지 얼려서까지 굳이 왜 보내느냐고!' 

'냄새 섞이게 떡이랑 고등어를 같이 싸서 보내는 건 뭔데. 고등어는 생물로 먹어야지 얼려서까지 굳이 왜 보내느냐고!’ 예전의 나였다면 생 고등어 얼려서 보낸 비닐봉지까지 보면서 분명, 짜증을 냈을 것이다.
 '냄새 섞이게 떡이랑 고등어를 같이 싸서 보내는 건 뭔데. 고등어는 생물로 먹어야지 얼려서까지 굳이 왜 보내느냐고!’ 예전의 나였다면 생 고등어 얼려서 보낸 비닐봉지까지 보면서 분명, 짜증을 냈을 것이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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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젠 참말로 고맙기만 하고, 하나도 안 남기고 맛있게 다 먹을 것이다. 비닐봉지만 수십 개가 넘는 이 택배상자를 싸면서 재밌고 행복하셨을 어머니 마음을 이제 조금은 알겠기에. 무엇보다 산골마을에선 귀하디귀한 음식인 것도 맞고!

우리 부부, 귀촌한다고 처음 말씀드렸을 때, 꼭 가야 하느냐며 몇 날 며칠 울기만 하셨던 시어머니. (솔직히 그땐 속이 좀 상했다. 무슨 귀양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시냐고, 어머니가 그렇게 울면 저희가 가서 잘 살겠느냐면서 짜증 섞인 대꾸도 몇 번 했다. 버릇없고 삐딱하기 이를 데 없는 며느리였다, 정말!)   

어머님의 사랑과 정성이 철철 넘쳐흐르는 소중한 먹을거리들, 행복하고 감사하게 잘 먹는 것으로 그때 흘리신 눈물을 조금씩 닦아드리고 싶다. 잘 먹고 있으니 잘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더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태그:#시어머니, #귀촌, #택배,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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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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