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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나태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재미있지만 시끄럽지 않고, 철학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삶을 위한 공간 만들기.

#. 작고 오래된 집

왜일까? 나는 어려서부터 줄곧 제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내 나이 스물다섯, 이제 막 인도에서의 반 년을 뒤로하고 돌아온 나는 무작정 또다시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제주로 날아왔다. 그 곳에서 J를 만났다. 나는 "제주에 살고 싶어"라고 말했고, J는 "나는 어디라도 상관없어. '어디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인지'가 중요하니까"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 '귤'이라 부르는 섬. 제주에 살게 되었다.

제주의 오래된 집을 처음 만났던 날.
▲ 오래된 집 제주의 오래된 집을 처음 만났던 날.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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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업을 마치기 위해 육지 인천 집에 있었고, J 혼자 제주에 남아 이곳저곳 우리가 적을 두고 살아갈 공간을 찾아다니던 그런 날들이었다. 어느 날, 제주의 남서쪽 마을에 작고 아주 오래된 집을 찾았다는 J의 연락을 받았다. 여러 개의 작은 건물들로 이뤄져 있으며, 그중 가장 오래된 안채는 100년 가까이 됐다고 했다.

나는 직접 가서 보지도 못했지만, 꽤나 마음에 들어 하는 J의 모습에 고민할 틈도 없이 "오케이!"를 외쳤고, 그렇게 우리는 해가 뜨는 동쪽 마을에서 해가 지는 서쪽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됐다. 그와 함께 우리의 '사서 고생'도 시작되었다.

100 살 가까이 된 옛집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 제주 옛집 100 살 가까이 된 옛집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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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가까이 된 이 건물이 바로 안채의 처음 모습이다. 사실 내가 이 집을 찾았던 아주 처음에는 마당에 풀이 무성해 집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이 집은 많이 낡아 있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지 오래돼 풀이 무성하던 안채 마당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마당에는 100년 가까이 된 안채 건물과 작은 창고 세 동이 함께 놓여 있다. 크지 않은 땅덩어리에 자그마한 건물들이 너무 가깝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양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도 100년 가까이 된 집이자 우리 사서 고생의 주인공인 안채는 처음부터 골칫덩이였다. 우리가 오래된 집을 고치겠다는 소문을 듣고 구경 온 지인들은 안채를 보자마자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냥 허물어 버리고, 새로 건물을 올리라는 소리를 했다. 이유인즉슨, 집이 너무 낡아 고쳐도 시간만 오래 걸리고, 고생만 더 하고, 돈만 많이 들고, 새로 짓느니만 못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J와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도저히 안채 건물을 허물 수는 없었다. 길지 않지만 한동안 제주에서 지내오면서 여기저기 올라가는 번쩍번쩍한 신축 건물을 수도 없이 봐왔고, 이처럼 제주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을 막무가내로 짓는 사람들에게 약간 화가 나 있기도 했다. 게다가 이제 갓 30년을 산 J와 30년도 채 살지 못한 내가 무슨 권리로 100년을 산 이 오랜 집을 허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재미없잖아…, 너도나도 힘쓰는 신축 건물 올리기에 우리까지 합세해야겠어?'

손재주는 있지만 고작 두 달 목수 삼촌 따라다닌 게 전부인 J. 살면서 못질 한 번 안 해본 나. 우리 둘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할 새도 없이 우리의 사서 고생은 시작되었다.

#. 사서고생의 시작

J(나의 남편)는 우리가 처음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어떠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해왔다고 말했다. J가 꾸던 그 꿈은 어느덧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이 돼 있었고, 우리는 이 자그마한 건물들을 고치고 손봐서 그 어떠한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이것이 우리 둘의 '사서 고생 프로젝트' 이야기의 시작이다. 쉬운 길보단 어려운 길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J와 덕분에 같이 사서 고생하는 나의 이야기.

처음 두 달 동안은 연세 집을 얻어 지내던 제주 동쪽 마을에서부터 매일 70km를 왔다 갔다 하며 공사를 했다. 추운 겨울이었고, 원체 잠이 많은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공사현장(?)으로 1시간씩 차를 타고 달려오는 일이 정말 끔찍이도 힘이 들었다.

돈을 아끼자고 6000원짜리 백반 한 끼 사 먹지 못하고, 매일 3분 요리로 점심을 때우던 그런 날들이었다. 그렇게 두 달 간의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집 안에서 가구를 만들며 보냈던 시간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공사를 마친 바깥채로 우리 신혼살림을 이사했다. 사실 살림이라 해봤자 내가 육지에 올라가 있었을 때,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며 모은 몇 십만 원으로 장만한 중고 냉장고, 세탁기, 그릇들이 전부였다. 그 외에 침대, 옷장, 책상, 식탁, 의자, 싱크대 등은 J가 손수 다 만들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도 잠시, 우리는 2주간의 꿀 같은 휴일을 뒤로하고 다시 안채 공사에 들어갔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했다고 해야 할까. 바깥채는 40년 된 건물이라 비교적 상태가 양호했고, 안채는 말 그대로 100년 세월이다. 낡을 대로 낡은 아주 오래된 집이었다. 막막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오래되고 낡은 이 공간이 우리의 '사서 고생'으로 어떤 공간으로 바뀌어 나갈지…. 기대 만발, 걱정 만만발이었다.

왼쪽이 내가 그린 집의 도면(이라기 보다는 지도). 그리고 오른쪽이 J가 그린 집의 도면.
 왼쪽이 내가 그린 집의 도면(이라기 보다는 지도). 그리고 오른쪽이 J가 그린 집의 도면.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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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시작 전, 집의 전체적인 모습을 도면으로 그려보았다. 실제로 이 그림 두 장만 비교해보아도 J와 내가 얼마나 다른 성격의 소유자인지 알 수가 있다. 하하. 그리고 우리 집 동쪽 담 너머로 동녘 할망네가 있고, 서쪽 담 넘어는 서녘 할망네 집이 있다. 우리는 주변 할망들에 둘러싸여 할망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내게 되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길고양이 쉼터가 되어있었다.
▲ 길고양이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길고양이 쉼터가 되어있었다.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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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채로 비워져 있던 집이라 길고양이들의 쉼터가 되고 있는 듯했다. 하루에도 여러 마리의 길고양이들이 드나들었다. 이렇게 오래 비워져있던 낡은 집이 어떤 공간으로 바뀌어갈지 우리도 궁금했다.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허름하고 낡은 우리의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 남겨두고 싶었다. 나는 일전에 어느 SPA 옷가게에서 4만8000원 주고 사뒀던 빈티지스러운 웨딩드레스를 꺼내 입었고, J는 결혼식에 갈 때나 입는 딱 한 벌뿐인 정장을 입었다. 차디 찬 겨울바람이 부는 2월의 어느 날이었고, 우리 둘은 오래된 집을 뒤에 두고 서서 한 겨울 추위에 한껏 웅크렸지만 즐거웠다. 그렇게 우리의 달콤살벌한 신혼생활이 시작됐다.

나와 J가 우리의 '오래된 집' 앞에서 함께 찍은 웨딩사진.
 나와 J가 우리의 '오래된 집' 앞에서 함께 찍은 웨딩사진.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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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주농가주택고치기, #셀프리모델링, #제주옛집고치기, #사서고생, #막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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