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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이다. 어느 날 교장선생님께서 도서관 문을 열었다. 빠끔히 문을 열어 고개만 내민 채 미안한 듯 나에게 말했다.

"황 선생, 화장실이 너무 더러워요. 누가 라면 부스러기를 흘려놓고 갔어요. 한번 확인해보세요."
"네."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닫고 나가셨다. 나는 바로 가서 화장실 문을 열었다. 라면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뿌려져 있었다. 청소시간에 깨끗이 치웠지만, 며칠간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됐다.

청소가 능사가 아니었다.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 교시 쉬는 시간 도서관을 찾아오는 학생들 사이로 상담과 대출을 하며 화장실을 주시했다. 하지만 특별한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았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수사가 시작됐다

2교시가 시작되고, 도서관을 정리하고 화장실에 갔다. 분명 1교시 쉬는 시간에 화장실 출입이 없었는데 라면 부스러기와 라면 봉지가 버려져 있었다. 도깨비의 짓인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아닌가? 1교시 수업시간 중에 도서관 앞 화장실을 찾는 '놈'이 발견됐다. 그 아이가 들어가고 30초 정도 흘렀을까? 화장실 문을 열고 현장을 덮쳤다.

역시 그 아이가 범인이었다. 하지만 눈을 마주치고 서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자주 빌려보는 아이였다. 인사성도 발랐다.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 따라오라고 했다. 도서관 의자에 앉혀두고 잠시 대기시키고, 내 머릿속을 정리했다. 하지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민기(가명) 옆자리에 앉았다.

"수업시간에 화장실에서 뭐한 거야?"

최대한 다정하게 물었다. 아이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생라면.
 생라면.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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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먹었어요."
"그러니까 그걸 왜 수업시간에 먹었어?"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아이 수업시간 교과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이와 상담(?)을 이어갔다. 상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내 중심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이의 대답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니 원하는 답을 말하기 시작했다. 민기와의 대화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랬다.

"제 아침밥이에요."
"생라면이?"
"네."

"집에서는?"
"아빠가 아침으로 먹고 가라고 라면을 박스로 사둬요."
"아빠는?"

엄마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 엄마에 대해서는 전혀 질문하지 않았다.

"아빠는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시니까요."
"그럼 라면을 끓여먹고 오지?"
"아침에 늦잠을 자서요. 배는 고프니까 그냥 들고 와요."
"왜 화장실에서 그걸 먹냐? 교실에서 먹지?"

아이는 대답을 할 때마다 멈칫했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 챘는지 꼬박꼬박 대답을 했다.

"친구들이 빼앗아 먹어요."
'아….'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야, 그럼 화장실에서는 왜 그렇게 흘리고 먹냐?"

참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이미 보여줄 대로 보여준 아이에게 너의 알몸을 보이라는 것과 같았다. 그래도 아이는 모든 것을 달관한 듯 대답했다.

"수업시간에 잠깐 화장실 간다고 나왔는데 빨리 먹어야 하잖아요?"

고생해서 범인 잡았는데... 무거워진 마음

화장실 라면 부스러기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며칠간 고생했는데, 범인을 잡고 보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빵 한 조각을 매일 챙겨주는 것이 민기에게 도움이 될 지도 의문이었다. 자존심이 센 아이였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야. 그래도 화장실 더러워지니까 앞으로 도서실 저쪽에서 먹어. 선생님이 안 뺏어 먹을 테니까. 알았냐?"
"네."

그리고 가끔 음료수나 떡, 과일이 생기면 민기에게 주기도 했다.

"야, 선생님 다이어트 중인데 누가 자꾸 이런 걸 먹으라고 보낸다. 얼른 이것 좀 먹어서 내 눈 앞에서 안 보이게 해다오. 부탁이다."

민기에게 이렇게 말하면 못 이기는 척 먹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 책도 읽힐 겸, 책을 자주 읽는 민기에게 선물도 할 겸 '책 읽고 밥상 받기'라는 이벤트를 만들었다. 

책을 대출하여 읽은 친구들이 뽑기를 하는 아주 단순한 이벤트
 책을 대출하여 읽은 친구들이 뽑기를 하는 아주 단순한 이벤트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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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처럼 보고 싶은 책을 골라 대출해서 읽고, 응모지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벽에 걸린 번호를 골라 해당 상품을 받는 것이다. 아래 오른쪽 그림에 각각의 네모 상자에 맞춰 종이를 잘라 번호를 써 붙여 놓으면 준비는 끝이다. 아마 민기가 초코파이, 초코과자, 음료수 등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막 사회에 발을 디뎠을 민기는 잘 살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청소년문화연대 킥킥에 중복 송고함



태그:#사서교사, #학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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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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