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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 성하훈 시민기자의 기사 <'9년 만에 처음', 확 달라진 청와대 앞 분위기>(2016.11.26.) 보도 후 기사의 주인공인 통인동 커피공방 박철우 대표가 보내온 공개편지입니다. [편집자말]
서울행정법원이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 대규모집회를 앞두고 청와대 앞 200m 위치한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집회 행진에 대해 오후 5시 반까지 허용한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 통인동 커피공방에서 시민들을 응원하며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 청와대 앞 집회 허용에 음료 무료제공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이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 대규모집회를 앞두고 청와대 앞 200m 위치한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집회 행진에 대해 오후 5시 반까지 허용한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 통인동 커피공방에서 시민들을 응원하며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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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훈 시민기자님. 지난 26일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통인동 커피공방 앞에서 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요일(27일) 아침, 집회가 끝난 거리를 출근해 가게 문을 열곤 카페 손님들에게 다소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사장님, 공방이 네이버에 났네요! 호호, 축하해요. 메인에 있던데요?!"

오픈을 마치고 스마트폰으로 들어가 본 네이버엔 성하훈 시민기자님이 쓴 기사 <'9년 만에 처음', 확 달라진 청와대 앞 분위기>라는 기사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기사는 "통인동 커피공방이 '9년 만에 처음,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글자를 유리창에 붙여 놓고 오가는 시민들에게 따뜻한 보리차 음료를 제공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신기한 마음에 댓글까지 보게 되더군요.

11월 26일, 많은 기자들이 "왜 이런 준비를 했는지 알고 싶다" "저 9년이 무슨 뜻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워 이런 호의적인 질문에도 "동네 상인일 뿐이고 드릴 말씀은 전혀 없습니다"라고 매몰차게 돌아섰지요. 그런데 밤사이 이런 기사가 올라갔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나름 열심히 한다는 커피전문점이 커피로 유명해진 것도 아니고, '보리차'로 유명해진 이 사건(더군다나 이런 때에!)을 두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이 기사가 나간 뒤 쏟아지는 관심과 다양한 해석들 때문에 난감하기도 했는데, <오마이뉴스>에는 이렇게 기사의 형태로 뒷이야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청와대 앞 장사 9년째

박근혜 퇴진 5차 범국민행동 때 많은 이들이 현장과 SNS에서 궁금해하던 '9년만에 처음'이라는 문구엔 대단한 뜻이 담겨있는 게 아닙니다. 통인동이라는 위치상, 저희 가게는 경찰 차벽 뒤에 있어 몇 주일째 주말 오후와 저녁 장사는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공방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과연 이번 주말엔 우리 가게 앞까지 사람들이 올까'였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부터 햇수로 9년째. 광화문이 지척인 통인동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수없이 많은 집회에 대한 경험이 있고, 당장 지난 촛불집회 때만 해도 편의점 등에 생수가 떨어져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시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났습니다.

자연스럽게 멀리서 우리 마을에 오시는 손님(?)들이 있다면 대접하는 게 도리요, 물이라도 정수기로 준비해 무료로 담아갈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이왕 하는 거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뜨거운 물이라도 준비해 시민들이 컵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계획이 계획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11월 26일 당일이 되니 심상치 않은 날씨에, 점심부터 차량이 뜸해진 자하문로를 보면서 '과연 정말 우리 마을에 손님들이 오실 것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날씨에 100만 명은 말도 안 될 것이고, 외롭고 힘 없이 어깨를 움츠린 시민들만이 걸음해 오진 않을까 걱정도 됐습니다.

장사 9년만에 처음... 청와대 앞 거리가 '광장'이 되다

서울행정법원이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 대규모집회를 앞두고 청와대 앞 200m 위치한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집회 행진에 대해 오후 5시 반까지 허용한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수많은 시민들이 청와대 인간띠잇기를 벌이며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인간띠잇기로 청와대까지 모인 시민들 서울행정법원이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 대규모집회를 앞두고 청와대 앞 200m 위치한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집회 행진에 대해 오후 5시 반까지 허용한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수많은 시민들이 청와대 인간띠잇기를 벌이며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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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가 지났습니다. 그냥 물만 드릴 순 없었습니다. 커피는 엄두도 안 나고, 보리차라도 시민들에게 드립시다라는 의견이 나와 동네 오거리마트로 달려가 보리차와 종이컵 두 박스를 사왔습니다.

'이 차가운 눈바람 속에 시민들이 올까'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거리에서 차량들이 하나 둘 사라지더니, 잠시 적막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두툼한 긴 옷에 우비를 입은 사람들, 손에 빨간 종이를 든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뒤따르는 북소리와 깃발들, 시민들의 머리 위로 일으켜 세워진 파란 고래를 보며 가게 안 손님들과 직원들은 바깥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좁지도 않은, 청와대로 향하는 그 넓은 6차선 자하문로가 시민들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거리는 청와대로 가는 도로가 아니라, '거대한 광장'이 됐습니다.

200미터. 매주 이어진 '겨우 200미터'의 전진이 제 눈앞을 가득 메우며 펼쳐질 때의 광경이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게는 9년 만의 광경이지만, 이 마을을 더 오래 사셨을 누군가에게는 수십 년만의, 아니 처음으로 열린 광장의 모습이었을 겁니다. 이 길을 열기 위해 전국에서 온 시민들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은 단 하나.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마을'은 지켜보고 있다

지난해 3월 31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 맞은편 세월호유가족 농성장이 경찰병력과 버스로 가로막힌 가운데 한 세월호 유가족이 피켓을 들고 세월호 인양과 정부시행령즉각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 눈물 훔치는 유가족 지난해 3월 31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 맞은편 세월호유가족 농성장이 경찰병력과 버스로 가로막힌 가운데 한 세월호 유가족이 피켓을 들고 세월호 인양과 정부시행령즉각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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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지난해 어느 날의 광경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도 트지 않고, 아직은 추웠던 새벽. 저 멀리 팽목항과 안산을 출발해 여의도를 거쳐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 지친 몸을 끌고 걸어오실 때, 자하문로는 적막했습니다. 서늘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유가족들이 새벽 5시 반쯤 청운효자동주민센터에 도착할 것 같다는 한 호프집 사장님의 문자에 잠에서 깨어나 우리 마을에 오시는 그분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마을 상인들과 주민들은 SNS 등을 통해 알음알음 모여 더운물을 끓이고, (결과적으로 그 어느 분도 삼키지 못하셨던) 컵라면과 담요·우산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그날 그 새벽을 잊지 못합니다.

부랴부랴 탁자와 물, 우유 박스를 들고 주민센터 앞에 모였을 때 어둠을 뚫고 도착했던,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던, '아침이 되면 대통령님을 만나고 싶다'면서 새벽부터 찬 바닥에 앉아계셨던 그분들을 잊지 못합니다.

물을 끓이는 소리조차 죄인양 조심스러워 한쪽에서 손을 모으고 무력하게 유가족들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 때문에, 26일 전국에서 온 시민들을 기쁘게 맞을 수밖에 없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촌에 우리 가게뿐이겠습니까

지난 26일 오후, 통인동 커피공방 근처엔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를 메웠다. 나와 우리 직원들은 '청와대 앞이 열렸다'라고 평가했다. 놀라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26일 오후, 통인동 커피공방 근처엔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를 메웠다. 나와 우리 직원들은 '청와대 앞이 열렸다'라고 평가했다. 놀라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 통인동 커피공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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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1월 26일. 좁은 가게에 두 칸뿐인 화장실을 열어두고, 물을 끓이고, 단지 물밖에 드리지 못함을 안타까워 했지만, 많은 분들의 열렬한 격려과 감사는 저희를 감동시켰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3000잔의 종이컵과 1000개의 핫팩은 순식간에 동이 났습니다. 겨우 물밖에 대접하지 못한 저희 공방에는 시민들이 건네는 사탕과 음료수, 빵과 핫팩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과분한 관심'이라는 표현이 적당해 보입니다. 사실 서촌 일대의 적지 않은 가게들이 저희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화장실을 개방하거나 율무차를 준비하고, 휴대전화 충전기를 가져다 놓은 곳도 있었습니다. 청와대 앞 우리 마을을 찾은 시민들을 위한 상인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았을 텐데, 하필이면 통인동 커피공방이 길가 목 좋은 곳에 있어 눈에 띄기 쉬웠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솔직하게 해명해야 할 문제도 있습니다. 3000잔이 넘는 보리차를 무료로 드린 건 맞지만, 전 결과적으로 이 보리차를 30만 원에 판 죄가 있습니다. 26일의 오후 내내 마을의 주민들과 공방의 오랜 손님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동네에 무슨 일이래' 하는 표정을 짓는 분들부터 "어머, 오늘 문여셨네요"라며 반가워해 주는 분들까지, 이어지는 손님들 중에서 눈길을 끄는 손님이 계셨습니다.

한 손님의 놀라운 주문

26일 김 선생님이 주문한 '아메리카노 100잔' 영수증.
 26일 김 선생님이 주문한 '아메리카노 100잔' 영수증.
ⓒ 통인동 커피공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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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커피 원두를 사가시는 단골이지만 이제는 택배를 통해 만나야 할 정도로 먼 곳에 사시는 고객이었던 그분을 오랜만에 뵐 수 있었습니다. 오늘 촛불 집회를 위해 나오셨다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옷차림이었습니다. '오랜만인데, 하필이면 오늘 원두를 사러 오셨나 보다' 생각하면서 환영해드렸더랬죠.

적지 않은 인파를 헤치고 오시느라 힘드셨을 분에게 "어떻게 오늘 오셨어요? 오기 힘드셨을텐데"라고 물으며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다시 보리차를 준비하며 정신이 없을 때였습니다. 안에 있던 동료가 "사장님, 어쩌죠, 어떤 손님 한 분이 아메리카노 100잔을 사시겠다는데요?"라고 물어왔습니다. 보리차 끓이기도 바쁜데 이게 무슨 재앙과 같은 단체 주문인가 싶어 반쯤 얼이 나간 채 "지금 100잔을 어떻게 만들어?"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문자가 바로 그 단골손님이셨습니다. 동료는 "아뇨, 결제만 하고 안가져 가시겠데요"라면서 난감해했습니다. 바로 그 분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사장님 정말 좋은 일 하시네요."

커피를 사가기는커녕 오늘 같은 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메리카노 100잔 값을 내고 갈 테니 사람들한테 나눠주라고 하십니다.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어찌할 바 모르다가 "이거 그냥 물 드리는 건데요. 괜찮으니 나중에 커피 자주 사가시면 되죠.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라고 말씀드렸지만 완강하십니다.

"아니에요. 사장님 잘 하시는 거예요. 이거 그냥 100잔 결제하세요. 물값이라도 하세요. 이래야 세상이 바뀌어요."

결국 테이크아웃 할인을 적용해 30만 원을 결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노출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30만 원은 3000잔의 보리차가 돼 시민들에게 갔습니다.

그분은 결제를 마친 뒤 홀연히 다시 인파 속 경복궁역 방향으로 사라졌습니다. 단순히 이것 때문에 오신 거였습니다. 그 먼 길을 말입니다.

지난 26일, 광장에는 5000만 명의 이야기가 있었을 겁니다. 통인동 커피공방의 이야기는 그 중 하나의 이야기일 뿐, 더도 덜도 아닙니다. 평범한 가게 앞에서 벌어진 일을 성하훈 시민기자님이 잘 써주셨나 봅니다.

이번 주말에도 많은 일이 있겠지요. 추위에 애쓰시는 시민들의 건투를 빕니다. 그리고 기자님들, 냉랭하게 대해 미안합니다. 그저 상인일 뿐인데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 말고, 자하문로를 광장으로 만든 시민들을 주목해주세요. 그들을 쳐다보고 있자면, 저분들이 '무슨 일'을 낼 것 같거든요.

덧글. 오는 12월 3일의 계획은 미정입니다. 또다시 가게 앞까지 시민들이 와주신다면…. 이번엔 옥수수차를 준비해볼까요?



태그:#범국민행동, #박근혜, #퇴진, #청와대, #커피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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