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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개월이나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쿠바의 기억은 묻혀있었다. 돌아오자마자 취업준비에 학교생활까지 바쁘게 지내니 그곳에서의 생활이 꿈결처럼 멀어졌다. 그러다가 어제 한국 뉴스에서 쿠바를 만났다. '향년 90세, 피델 카스트로 타계'. 잠시 멍해졌다. 피텔 카스트로라는 이름 하나에 쿠바에서 혼자 보냈던 10일이, 무작정 탔던 비행기가, 벽면에서 처음 마주한 피델 카스트로가 떠올랐다. 3개월 동안 미뤄왔던 기억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쿠바로 떠난다고 했을 때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거기 빨갱이 나라 아니냐. 둘째, 거기 너무 위험하지 않냐. 쿠바는 물리적인 거리로도 멀었지만 마음의 거리론 더 아득했다. 대한민국에서 쿠바란 북한과만 수교하는 나라, 중남미라 치안이 안 좋은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간혹 쿠바를 들어본 사람들은 체 게바라와 혁명, 야구와 재즈로 그곳을 기억했다. 나 또한 그랬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 김지윤

25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하바나에 내렸을 때 생각보다 비슷한 기후, 제주도와 비슷한 식생에 놀랐다. 하긴 8월 말에 갔던지라 한국도 같은 더위에 시달리던 중이었다. 하지만 겨우 환전을 마치고 낡아빠진 택시를 탄 채 달릴 때 밤의 내음이 달랐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낡은 라디오에선 쿠바 재즈가 흘러나왔다. 나는 혼자 외계에 온 것 같다는 두려움과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을 턱에 괴고 차창 밖만 바라봤다.

쿠바에서의 10일은 뚜벅이의 연속이었다. 차비가 쌌지만 매연을 뿜으며 끼어타는 버스는 사절이었다. 대신 뚜벅이로 걸으며 내가 몰랐던 쿠바를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쿠바 혁명에 대해선 체 게바라밖에 몰랐던 내게 '피델 90세 축하'라는 식의 벽화는 낯설었다. 호세 마르티나 그 외에 여러 혁명 영웅들이 동상으로 하바나를 지키고 있었다. 골목 어디를 걸어도 어김없이 피델과 빨간 별, 피델의 초상이 체 게바라 다음으로 자주 등장했다.

 우고 차베스와 체 게바라의 그림, 혁명구호로 수놓인 곳이 많았다
 우고 차베스와 체 게바라의 그림, 혁명구호로 수놓인 곳이 많았다
ⓒ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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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성공한 혁명가, 50년 넘게 사회주의를 수호한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을 달린다. 하지만 최소한 쿠바 하바나에 지낼 동안 문자가 아닌 열기로 피델에 대해 가늠할 수 있었다. 하바나를 돌아다닐 때 인력거를 끌어주던 윌(40)은 국립병원 앞으로 향했다.

"여기서 우린 무상의료를 받아. 최고의 의료진들이 있지."

그 말을 할 때 비쳤던 자긍심은 생각지 못한 에너지를 뿜었다.

올드카를 타고 돌아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올드카로 안내하던 가이드는 옆으로 지나가는 아파트들을 자랑스럽게 가르켰다.

"이 많은 집들, 다 자기 집이야. 이 나라에서는 누구나 자기 집을 가질 수 있어."

처음 듣는 말이었다. 치솟는 전세 때문에 점점 더 좁은 집으로 이사가야 했던 내 처지가 떠올랐다. 아침마다 사람들이 모이는 무료 배급소, 노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까지.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복지와 혁명의 이미지가 넘쳤다.

혁명의 이미지가 넘치는 쿠바, 그럼에도

 하바나에서 나오는 신문.
 하바나에서 나오는 신문.
ⓒ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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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피델 카스트로의 타계 소식에 마냥 슬플 순 없었다.

방파제인 말레꼰을 따라 걷다가 귀퉁이에 욕이 적혀있는 걸 봤었다. 'Fuck you fidel'.('엿먹어 피델') 피델에 대한 찬가만 보다가 조그맣게 휘갈겨진 낙서를 보니 기묘했다. 까사(숙소) 관리를 해줬던 엔젤(22) 또한 "앞으로 쿠바가 변한다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도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겨우 6면 발행되는 신문의 8할은 카스트로 정권이 무엇을 해냈는지에 대한 내용만 적혀있었다.

또한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중화폐 제도로 인해 이미 있었던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다. 재정이 관광업으로 치우치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아직 정돈되지 못한 도보와 치우지 않은 쓰레기, 날아다니는 파리로 도시는 복잡했다. 내가 얘기했던 사람들마다 배급품의 질이 낮다며 차라리 시장에 가서 산다고 불평했다. 공식적으로 직업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 보니 돈을 더 벌고 싶어도 위험부담이 크다는 푸념도 들었다.

 센트럴파크에서 느닷없이 벌어진 무도회. 지나가던 할머니도 흥겹게 춤추고 있다.
 센트럴파크에서 느닷없이 벌어진 무도회. 지나가던 할머니도 흥겹게 춤추고 있다.
ⓒ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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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모순적인 쿠바의 현장을 보며 이곳은 내게 기이한 풍경으로 남았다. 시청광장에서 갑자기 춤판이 벌어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능수능란하게 춤을 추는 곳, 지나가던 남자들이 꾸준히 추파를 던지지만 싫다고 거절하면 깔끔하게 물러나는 곳(경찰이 곳곳에 많다), 예술가들이 의사만큼 넉넉히 사는 곳, 결국 사람이 일을 하는 거라며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곳. 쿠바의 사람들은 가난하면서도 넉넉하고, 불만투성이면서도 삶을 즐길 줄 알았다.

무엇보다 인력거꾼들과 나눴던 대화가 인상 깊었다. 윌의 뒷좌석에 탄 채 까피똘 옆을 지나가다가 다른 인력거꾼이 아는 척을 했다. 내가 남한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대뜸 반가워했다. "너 자본주의자(Capitalist)구나!" 매우 당황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지만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도, 내가 자본주의자라는 정체성도 희미했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인지하는 만큼 나를 알고 있었다.

"뭐든지 장단점이 있어. 자본주의가 그렇듯. 사회주의가 그렇듯."

자신들의 이념이 장단점을 가진다는 것, 쿠바 혁명에 대해 더 배워야 하지만 정권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아는 것. 쿠바노들은 오히려 정치에 밝았다. 더불어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있었다. 쿠바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모두 소상히 대답하면서도 느리지만 이 사회를 바꿔나갈 것이란 믿음으로 마무리했다. '우리는 혁명을 지켜냈다'는 역사의 기억 탓일까 싶다.

쿠바와 한국을 이어주는 하나의 메시지

 지나가다가 찍은 혁명구호. '끊임없이 혁명을 지켜내자'.
 지나가다가 찍은 혁명구호. '끊임없이 혁명을 지켜내자'.
ⓒ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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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inuamos Defendienso La Revolucion.' (끊임없이 혁명을 지켜내자)

하바나 벽면에서 마주한 혁명 구호 중 가장 뇌리에 남는다. 피델 카스트로가 역사에 기록된 쿠바노에게 혁명은 '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 하는 것', 즉 이미 해낸 것이었다. 하지만 혁명이란 사건은 한 번 해낸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켜내야 하는, 머물지 않는 강물과 같다. 쿠바노들은 분명 그걸 아는 듯했고 자신들이 해냈던 것처럼 앞으로도 혁명을 일궈가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투지가 있었다.

190만 개의 촛불이 타올랐던 한국이 비록 쿠바와 먼 것 같지만, 피델 카스트로의 타계로 떠올린 쿠바의 기억은 이 시국이라 더 의미있다. 사회를 바꾸는 노력은 결코 단기간에 이룰 수 없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는 걸 쿠바를 통해 알 수 있다. 혁명가이자 독재자로 스러진 20세기의 거물을 기억하며 우리가 광장에 모여서 "이 자리에서 사회를 바꾸자"고 외쳤던 날들을 곱씹는다.

쿠바에 다녀와서 오히려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도, 환상도 사라졌다. 그래서 더욱이 대한민국이 해내야 하는 '혁명'은 무엇일까 고민한다. 우리는 혁명을 '해내는 것'에서 '지켜내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박근혜 게이트 그 후에 우린 어떤 민주주의를 빚어나가야 할까.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우리 또한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바나의 더운 열기 속에서 마주했던 피델 카스트로의 명복을 빈다. 쿠바가 진정으로 지키고자 했던 '자유'가 다시금 쿠바의 것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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