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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님

질러서 가는 길을 '지름길'이라 합니다. 남새나 나무에 나온 겉싹을 자르는 일도 '지르다'라 하고, 말이나 몸짓을 미리 끊는 일을 '지르다'라 해요. 이 '지르다'는 '앞지르다'처럼 쓰기도 해요. 공을 힘차게 차거나 옆구리를 힘껏 건드리는 일도 '지르다'이고, 냄새가 코를 '지른다'고도 하는데, 이때에는 '지르다·찌르다' 꼴로 써요.

그리고 돈이나 물건을 거는 일을 '지르다·찌르다'로 나타내는데, 이러한 쓰임새를 살펴서 요즈음 '지름신'이라는 새말이 태어납니다. 어떤 것을 보고는 꼭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돈이나 품이나 물건을 들이기에 '지름신'이 온다고 할 만하지요.

여기에서 하나 더 헤아린다면 '지름님'이라는 낱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님을 '하느님'이라 하듯이, 무엇을 장만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 적에 '지름님'이 온다고 할 만해요. 그러면 갑자기 할 말이 생긴다고 할 적에는 '말님'이나 '얘기님'이 온다고 할 만할까요? 갑자기 쓸 글이 생기면 '글님'이 온다고 하면 어떨까요?

칠칠하다

"나무나 풀이나 머리카락이 잘 자라서 알차고 길다"고 할 적에 '칠칠하다'라는 낱말을 써요. '칠칠맞다'는 '칠칠하다'를 힘주어서 가리키는 낱말이에요. 그러니 "너는 참 칠칠하구나" 하고 말한다면, 너는 머리카락이 잘 자라서 보기에 좋다는 뜻이 돼요. 텃밭에 심은 남새가 잘 자랐다고 할 적에도 '칠칠하다'를 쓸 만해요.

이러한 뜻을 바탕으로 삼아서 "깨끗하거나 말끔한 차림새"를 가리키는 자리라든지 "일을 반듯하고 야무지게 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자리에도 '칠칠하다·칠칠맞다'를 쓸 만해요. 그런데 말이지요, 우리는 흔히 '칠칠하지 못하다'라든지 '칠칠맞지 못하다' 꼴로만 쓰곤 해요.

보기에 안 좋거나 깔끔하지 못하거나 반듯하지 못하거나 야무지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칠칠하지 못한 놈!"이라든지 "칠칠맞지 못한 녀석!" 하고 말하지요. 칠칠하지 못하다면 '칠칠한' 모습으로 거듭날 노릇이고, 칠칠맞지 못하다면 '칠칠맞은' 의젓하고 야무진 모습으로 달라질 노릇이에요.

손낯

"손 좀 씻으렴" 하고 말할 적에 손만 씻는 사람이 있고, 손이랑 낯을 함께 씻는 사람이 있어요. "낯을 씻으렴" 하고 말할 적에 낯만 씻는 사람이 있으며, 낯이랑 손을 나란히 씻는 사람이 있어요. "손 씻고 밥을 먹자" 하고 말할 적에는 손만 씻자는 뜻일 수 있지만, 손하고 낯을 깨끗이 씻자는 뜻일 수 있어요.

'손씻기'나 '낯씻기'는 손이나 낯을 씻는 일이나 손낯을 씻는 일을 가리켜요. '발씻기'라면 따로 발을 씻는 일을 가리키기도 하고, '몸씻기'라면 몸을 씻는 일을 나타내기도 해요. '손낯씻기'처럼 '손낯'이라는 낱말을 지어 본다면, 이때에는 손하고 낯을 모두 씻자고 하는 뜻을 또렷하게 드러낼 테지요. 이 얼거리처럼 '손발씻기'처럼 말할 수 있을 테고요.

소꿉밭

어린이는 어른이 짓는 살림을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면서 소꿉놀이를 합니다. 어른은 살림살이를 장만해서 살림을 짓고, 어린이는 소꿉을 갖추어 소꿉놀이를 해요. 자그마한 그릇이나 조개껍데기나 돌이나 작대기는 모두 소꿉이 됩니다.

그런데 어른 가운데에는 아직 야무지지 못한 몸짓으로 살림을 짓는 사람이 있어요. 어설프거나 엉성한 모습으로 살림을 짓는다고 할까요. 어린이가 소꿉놀이를 하듯 살림을 다스리는 어른이 있다면 이때에는 '소꿉살림' 같다고 할 만해요.

어린이는 놀이를 하니까 '소꿉놀이'일 텐데, 어른은 일을 '소꿉일'처럼 한다고 할 테지요. 밭이나 논을 일구기는 하는데 작게 일구는 밭이나 논이라면 '소꿉밭·소꿉논'이라 할 수 있어요. 흙일이 익숙하지 않다든지 땅뙈기가 얼마 없는 텃밭살림이라면 이때에도 '소꿉밭'을 일군다고 할 테고요.

앞으로는 야무지거나 알찬 살림을 꿈꾸면서 '소꿉꿈'을 꿉니다. 어설프거나 엉성한 손짓이지만 앞으로는 슬기롭고 알뜰하게 지을 사랑을 마음에 담으면서 '소꿉사랑'을 키웁니다.

길죽음

찻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에요. 찻길은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길이기도 하고, 들짐승이나 숲짐승이 오갈 수 없는 길이기도 해요. 이러다 보니 찻길에서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많고, 들짐승이나 숲짐승도 그만 찻길에서 다치거나 죽어요.

찻길을 건너야 하는 사람을 찬찬히 살피면서 자동차를 천천히 몰거나 멈추는 이가 있지만, 사람이나 짐승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빠르게 내달리는 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길에서 죽는 짐승을 두고 영어로는 'road kill'이라고 해요.

이 영어를 한국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 한글로 '로드 킬'이라 하기도 하는데,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길에서 죽다"를 줄여서 "길 + 죽음" 얼거리로 '길죽음'처럼 새 낱말을 지을 만해요. 먼 길을 가는 사람을 두고 '길손'이라 해요. 먼 길을 함께 가는 사람을 가리켜 '길동무'라 하지요. 한꺼번에 죽기에 '떼죽음'이고, 갑자기 죽기에 '갑작죽음'이에요.

그러니 '길 + 죽음'으로 짓는 말마디는 잘 어울려요. 다만 길에서 죽는 짐승이 더 늘지 않기를 바라요. '길죽음'이 아닌 '길살이'나 '길살림'을 살피기를 바라고, '길놀이'를 넉넉히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학자가 아니어도 우리말을 넉넉히 살릴 수 있고, 새로운 말도 곱게 지을 수 있다는 뜻을 이 글 하나로 즐겁게 나누고 싶습니다.



태그:#우리말, #한국말, #우리말 살려쓰기, #말넋, #삶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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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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