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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과 대치중인 중고생혁명 회원들
 26일 열린 '박근혜 퇴진 제5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중고생혁명' 청소년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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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집에 들어서자마자 체육 수업시간이나 방과 후 축구 시합 때 몇 골 넣었다며 호들갑을 떨었을 아이가, 요즘엔 '박근혜와 최순실'을 입에 달고 산다. 반 친구들끼리 걸 그룹 중 누가 더 인기가 많은가보다 둘 중 누가 더 나쁜지를 논쟁하고, 쉬는 시간 스마트폰으로 듣는 노래도 최신 가요에서 '박근혜 하야가'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 걸 그룹의 브로마이드를 떼어내고 대신 선글라스 낀 '최순실 대통령'의 사진을 게시판에 붙인 교실도 있단다.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걸 그룹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중학교 교실에서 박근혜와 최순실은 아이들의 '로망'을 밀어내고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이들 관련 뉴스를 모르고서는 친구들끼리 대화에 끼지 못하고 '왕따'가 된단다. 하긴 인터넷과 TV 뉴스를 통째로 삼켜버린 지 이미 오래고, 특히 아이들이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조차 이들을 소재로 한 꼭지가 유행인 마당이니 수긍이 간다.

"대통령이 특권에 기대어 끝까지 버티겠다면, 국민들이 감질나게 촛불만 들 게 아니라 청와대를 찾아가 끌어내야하지 않을까요?"

아이는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는데도 단 한 건의 불상사도 없이 평화롭게 집회가 마무리됐다는 찬사 일색의 보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 칭찬을 듣기 위해 모인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손 팻말과 구호에서 보듯 사람들이 촛불을 든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의 퇴진인데, 대놓고 물러나지 않겠다고 밝혔으니 '실패한' 집회라는 것이다. '평화시위'라는 찬사가 오히려 분노하는 시민들의 행동을 위축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아이는 이번 일을 겪으며 추상 같은 법도 대상에 따라 무기력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했다. 검찰의 요구를 단박에 조롱하며 무질러버리는 대통령을 보며, 법이 만인에 대해 평등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잘라 말했다. 우편함에서 경찰이 보낸 벌금 고지서만 봐도 '쪼는' 아빠 같은 사람도 있지 않느냐며 웃기도 했다. '악법도 법이다'거나 '법대로 하자'는 말의 '저의'를 깨닫게 됐다며, 친구들 중에 이를 모르는 경우는 없다고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의 교실에서 얼마 전 '준법'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단다. 법적 절차 운운하며 해볼 테면 해보라는 대통령에 맞서, 국민들이 언제까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어야하는지를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단다. 한 아이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주말마다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어도 법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거라면, 그런 법이 다 무슨 소용이냐며 말문을 열었다고 한다. 법이 소수 강자의 편인 마당에, 다수 약자의 무기가 고작 촛불이냐며 안타까워했단다.

오로지 청와대를 방어하기 위해 차벽을 치고 온몸으로 시민들과 대치하고 있는 경찰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그들도 한마음일 텐데, 조직 내에 반발하거나 저항하는 이가 왜 없는지 의아하게 여기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번 일로 아이들의 장래희망 순위도 순식간에 뒤집혔단다. 경찰관이 늘 순위표의 앞이었는데, 경찰이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의 호위무사 노릇을 하는 걸 보며 뒤로 밀린 거다. 요즘 아이들은 경찰을 '대통령의 꼬붕'이라고 정의한단다.

말하자면, 권위도, 능력도, 도덕성도 모두 잃고 사실상 100%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은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과연 국민의 공복으로서 옳은 일이냐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양파 껍질처럼 의혹이 쏟아지고 범죄 행위가 잇따라 밝혀지는 마당에, 공직자들 중에 'Not my President'를 외치는 이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중2 아이의 입에서조차 '지금 대한민국은 조선시대 때만도 못한 나라'라는 조롱이 서슴없이 튀어 나오고 있다.

중학교 교실이 때 아닌 '준법' 논쟁 중이라면,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에선 거침없이 '혁명'과 '퇴진 이후'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중이다. 고등학생들에게 '박근혜 퇴진'은 이미 '상수'가 됐다. 그저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또, 퇴진은 시작일 뿐,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더불어 이번 일로 수능에 거의 출제되지 않은 탓에 외면 받았던 현대사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었다. 예상치 못했던 긍정적 효과다.

"북한 김정은은 질풍노도의 중학생들이 무서워 못 쳐들어온다지만, 박근혜는 거기에다 지성까지 겸비한 고등학생들이 두려워서 청와대 밖으로 못 나오는 거예요. 수능이 끝나기가 무섭게 광장으로 모여든 고3들의 저력을 보세요. 이제 박근혜는 끝났어요. 만약 그래도 안 나오면, 아예 청와대를 감옥으로 만들어버리면 되죠."

아이들은 '탄핵'에 대해서 하나같이 부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설령 인용이 된다고 해도, 그것은 백만 촛불로 승화시킨 국민의 염원과 저항이 아니라, 단지 '법'의 승리로 기억될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기는' 형국이 될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역사에 '2016년 촛불 항쟁'으로 당당히 기록될 수 있도록, 탄핵 이전에 국민의 손으로 직접 퇴진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일이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것만으로 마무리된다면, 진정한 혁명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4.19 혁명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 자신들이 '촛불 항쟁'을 통해 범죄자를 권좌에서 몰아낸 혁명을 이뤄냈다고 자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역사 교과서 속 학습요소로 가르쳐온, 여전히 입 밖에 내기 두렵기까지 한 혁명이라는 단어를 아이들은 그렇듯 스스럼없이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월호 7시간'을 끝까지 밝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았다. 정부의 이간질과 무관심 속에 잊혀가던 세월호 참사가 이번 일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되면서, 당시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정부의 무능이 어디에서 비롯됐는가가 시나브로 밝혀지고 있다. 이미 그때부터 꼭두각시 대통령이 운전대를 잡은 대한민국호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아이들은 '이게 나라냐'는 한탄 속에 2년 전 세월호 참사를 이번 혁명의 발화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어처구니없이 수장 당한 또래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슷한 세대로서 혁명을 완수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는 옹골찬 다짐인 셈이다. 곧, '박근혜 퇴진'은 '세월호 세대'가 병든 국가 시스템에 의한 희생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긍심이 묻어나는 '4.19 세대'라는 말처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혁명 세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있다.

'준법'을 조롱하고 감히 '혁명'을 말하는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고도 참담했다. 고작 이런 나라를 물려주게 된 것에 대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고, 기성세대로서 석고대죄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저들이 매일 광장에 나와 외치는 '박근혜 퇴진'은 어쩌면 우리 기성세대 전체를 향한 준엄한 질타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주눅이 든 어른들은 몰라도, 아이들은 지난 대선 결과를 절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일베를 능가하는' 댓글 사건도 보았고, TV 토론 때 대통령으로서 깜냥이 안 되는 사람임을 분명히 알았으면서도 버젓이 그에게 투표하는 어른들이 모두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단다. 나아가 세월호 참사에도 콘크리트 지지율을 기록하는 상황을 보며, 그땐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비정상'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 아이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를 찍은 손모가지를 잘라 버리고 싶다'며 반성하는 어른들을 용서할 순 있다고 했다.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요즘 들어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씀 하신다는데, 박근혜가 아니라 '박통'을 보고 투표한 것이라고 고백하셨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호시절'로 기억하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그렇게 했을 거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고 했다.

'박근혜는 껍데기일 뿐이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맹신과 환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그들이 꿈꾸는 혁명이 완성된다는 뜻이다. 매주 주말의 광장은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정치와 현대사 수업이 벌어지는 교실이 되고 있다. 이젠 광장의 뜨거움이 교실로 옮겨 불붙고 있다. 둑이 터져버린 마당에 학교에서 교칙과 징계 운운하며 교사들이 막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들의 주장과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말고는 달리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만시지탄이지만, 아이들을 어엿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과 학생이라는 껍질을 깨고, 당당한 시민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됐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그것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음이 매주 광장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나.

교사인 나부터 깊이 반성한다. 올바른 정치적 판단력을 갖추기에는 아직 미숙하다고 반대의 입장에 섰던 주장을 오늘부로 철회한다. 곧, 이것이 '2016 촛불 항쟁'의 종착지가 되어서는 안 될 테지만, 아이들이 꿈꾸는 혁명의 과정으로서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광장 곳곳에서 울려 퍼진 '어른들보다 백 번 낫다'는 스스로의 외침에 대한 모범답안이다. 당장 투표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고, 특히 교육감 선거 때는 아이들 모두가 직,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꺼이 아이들 편에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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