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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 안개에 젖어있는 왕릉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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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에 누가 묻혀 있나요?"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대략난감하다. 분명, 서오릉에는 왕이 묻혀 있다. 그런데 누구냐고 묻는 것이다.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려면 말이 길어지고 짧게 하려면 의사소통에 애를 먹는다.

서오릉에는 5기의 능과 2기의 원, 그리고 1기의 묘가 있는 왕릉권역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능(陵)은 뭐고 원(園)은 뭐며 묘(墓)는 뭐냐고 묻는다.

조선 왕실에는 42기의 능과 13기의 원 그리고 64기의 묘가 있다. 능은 왕과 왕비를 모신 곳이고 원은 왕이 보장된 세자였으나 등극하지 못한 사람, 또는 세자빈을 모신 곳이며 왕을 낳았으되 왕비가 되지 못한 사람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소현세자가 잠들어 있는 소경원, 소현세자빈이 잠들어 있는 영회원. 영조의 생모 숙빈최씨가 잠들어 있는 소령원이 이에 해당한다. 묘는 등극했으나 폐주가 되어 쫓겨난 연산군 묘와 광해군 묘, 그리고 왕의 총애를 받았던 후궁들의 묘가 이에 해당된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조선 왕실은 고종까지 26대밖에 안되는데 왕릉이 42기나 되느냐?'는 의문이 뒤따른다. 틀린 말이 아니다. 일제에 의해 떠밀려 올라간 순종까지 해도 27대밖에 안되니까 27기밖에 없어야 하는데 조선 왕릉은 42기다.

즉위하진 못했지만 왕처럼 묻힌 사람들

동구릉 권역에 있는 24대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를 모신 삼연릉. 세분을 모셨으나 능호는 경릉(景陵)하나다.
▲ 삼연릉 동구릉 권역에 있는 24대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를 모신 삼연릉. 세분을 모셨으나 능호는 경릉(景陵)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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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에는 단릉(端陵)과 합장릉(合葬陵)이 있다. 즉, 왕 혼자 누워있는 곳이 있고 왕비와 함께 묻혀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왕과 왕비가 따로따로 묻혀 있어도 별도의 능호가 주어진다.

여기에서 잠간, 알아보고 가자. 임금에겐 불러야 할 호칭도 많다. 시호, 존호, 묘호, 능호가 그것이다. 세종대왕을 예로 들어보자. 세종의 이름은 이도(李祹), 자는 원정(元正)이다. 시호는 장헌(莊憲). 능호는 영릉(英陵). 묘호는 세종(世宗). 우리가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으로 외웠던 것은 묘호(廟號)다. 종묘사직이라고 하는 종묘(宗廟)에 모실 때 올리는 호다.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를 아울러서 서오릉 명릉이라 부른다. 하지만 고개 넘어 익릉에는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혼자 누워있다. 그러고 보니 서오릉에는 장희빈을 포함해 숙종이 품었던 여성 4명이 있다. 죽어서도 복이 많은 임금이다.

또 하나. 본인은 등극하지 못했지만 아들이 등극하여 왕으로 추존된 왕이 있다. 성종의 아버지 의경세자가 묻혀 있는 경릉,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잠들어 있는 장릉,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혀 있는 융릉이 그것이다.

소혜왕후의 능이 웅장한 이유

왼쪽이 인수대비가 잠들어 있는 곳. 오른쪽은 의경세자가 잠들어 있는 곳
▲ 경릉 왼쪽이 인수대비가 잠들어 있는 곳. 오른쪽은 의경세자가 잠들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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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릉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이야기 하고 넘어갈 것이 있다. 장희빈이 누워있는 대빈묘를 비켜 세우며 양지바른 언덕바지에 우람하게 조성된 묘역이 있다. 경릉이다. 헌데, 능의 주인공 덕종의 능은 빈약한데 그의 비 소혜왕후의 능은 웅장하다. 조선 왕릉 중에서 가장 도드라진, 여성 상위가 그대로 표출된 왕릉이다.

왜 그럴까? 역사를 더듬어 보면 알 수 있다. 조카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은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일찍이 도원군을 세자를 책봉했다. 의경세자다. 아버지의 쿠데타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던 의경세자가 시름시름 앓더니만 세상을 떠났다. 세상의 민심은 원한에 사무친 단종의 어머니가 데려갔다는 흉흉한 소문이 횡횡했다.

수양대군은 서둘러 둘째 아들 해양대군을 세자에 앉혔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해양대군(예종)마저 즉위 13개월 만에 죽었다. 왕비 자리를 손아래 동서에게 내주고 칼을 갈고 있던 인수대비가 한명회와 손잡고 그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을 왕위에 밀어 올렸다. 성종이다. 이때부터 조선은 청주 한씨 세상이 됐다.

인수대비 친정아버지 한확의 묘역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각.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다. 능내리라는 지명도 왕릉급으로 조성된 한확의 묘에서 유래한다
▲ 한확 인수대비 친정아버지 한확의 묘역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각.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다. 능내리라는 지명도 왕릉급으로 조성된 한확의 묘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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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말이 없다. 묘역을 웅장하게 조영하는 것은 후세 사람들의 몫이다. 권세를 부리던 청주 한씨들은 인수대비의 아버지 한확의 묘를 왕릉 못지 않게 웅장하게 조성했으며 권세를 안겨준 인수대비 묘를 조선 최대의 묘역으로 조영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파평윤씨에게 권세를 안겨준 문정왕후 묘역 태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소윤과 대윤으로 갈려 피 터지게 싸웠지만 세도를 누리던 파평 윤씨는 문정왕후 묘역을 조선 최대의 묘역으로 조영했다. 청주 한씨들이 가지고 있던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문정왕후가 잠들어 있는 태릉. 세조 이후 사라졌던 병풍석이 등장했고 문인석과 무인석을 비롯한 석마, 석호, 석양, 혼유석 등 석물이 크고 웅장하다.
▲ 태릉 문정왕후가 잠들어 있는 태릉. 세조 이후 사라졌던 병풍석이 등장했고 문인석과 무인석을 비롯한 석마, 석호, 석양, 혼유석 등 석물이 크고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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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은 드라마틱하다

서오릉 권역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왕릉은 홍릉(弘陵)이다. 조선왕실에는 홍릉이 2기 있다. 영조의 원비를 모신 홍릉(弘陵)과 명성황후를 모신 홍릉(洪陵)이다. 서오릉 권역의 홍릉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를 모셨다.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난 영조는 장희빈 등쌀에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삶을 살았다. 얼마나 가슴 졸이며 살았는지 훗날 영조는 사가에서 살 때 문풍지만 흔들려도 가슴이 떨렸다고 술회했다.

서종제의 딸로 태어난 정성왕후는 12세 때 연잉군과 혼인했다. 이때 그의 아버지는 진사였다. 정실 몸에서 태어난 세자나 왕자라면 권문세가 집안의 규수를 간택했겠지만 별 볼일 없는 무수리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천한 집 규수를 맞은 것이다.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일찍 승하하자 연잉군이 즉위하고 그녀가 왕비가 됐다. 그녀의 시어머니 숙빈 최씨는 조선 최고의 '신데렐라'였지만 그녀 역시 그에 못지않은 행운이 따랐다. 하지만 행운도 여기까지였다.

조용히 내명부를 지키던 왕후는 65세를 일기로 경희궁에서 승하했다. 어려울 때 같이했던 왕비가 죽자 영조가 직접 자리 찾기에 나섰다. 그가 고른 곳이 지금의 홍릉자리다. 거하게 국장을 치른 영조는 바로 옆자리에 사후지지를 마련하고 내가 죽거든 여기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다.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가 등극했다.

서오릉 권역에 있는 홍릉. 영조가 들어갈 자리가 비어있다
▲ 홍릉 서오릉 권역에 있는 홍릉. 영조가 들어갈 자리가 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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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등극 일성을 터뜨린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가 원했던 정성왕후 옆자리를 외면하고 동구릉 권역에 있는 자리에 묻어버렸다. 오늘날의 원릉(元陵)이다.

영조와 정순왕후 김씨가 묻혀있는 원릉 자리는 물이 고인다고 효종을 여주로 천장하고 버려둔 흉지(凶地)였다. 영조의 염원은 희망사항일 뿐 결정권은 정조에게 있었던 것이다. 죽은 자는 선택권이 없다. 묻어주는 데로 묻혀야 한다.

조선 왕릉은 묻힌 자의 위용인 것 같지만 묻은 자의 권력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도 고향 함흥에 묻히기를 원했지만 동구릉에 묻혀 있고 아버지 곁에 묻히기를 소망하며 살아생전 대모산 아래를 의망한 세종도 여주에 묻혀있다.

시절이 하수상한 이 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이 가슴에 와닿는다. '박정희 신화를 무너뜨리는데 일등공신은 박근혜다'는 역설이 구체화 되어가는 요즈음, 권력에 방점을 찍어놓고 생각해보면 궁금해진다. 100년 후, 박정희와 박근혜의 묘가 어떠한 모습일지.


태그:#서오릉, #인수대비, #의경세자, #영조, #장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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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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