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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9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자 뉴욕타임스는 이제 독일이 "서구 자유세계의 마지막 수호자"라고 진단했다. 처음이 아니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작년 아랍 지역 대량 난민 발생 위기 때와 지난 여름 브렉시트 때도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을 "자유세계의 지도자"로 거듭 극찬했다.

메르켈 총리만이 아랍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독일이야말로 유럽연합의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답했다. 그는 11월 9일 공식 회견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인권과 소수자 존중 등의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며 서구 세계의 협력 기반을 무너뜨리지 않기를 희망(요구!)했다. 뉴욕타임스의 말대로, 이제 미국과 영국이 아니라 독일과 독일 총리가 '서구 자유세계'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서구 자유세계의 마지막 보루가 된 독일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과 세계의 많은 민주국가들이 경제 위기와 포퓰리즘(populism) 성세를 맞아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주요 국가들 중 독일만이 '정상' 국가를 유지하는 형세다. 20세기 독일이 일으켜 유럽과 세계가 겪은 전쟁과 학살과 대결과 적대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는 뭔가 기괴하고 아스라하다.

오랫동안 독일은 '문제'였다. '독일문제'는 항상 독일이 비정상적인 역사적 발전을 이끌며 주변국의 골칫거리이자 모든 '악의 근원'이었음을 함축했다. 그런데 이제 독일은 유일하게 자유세계의 '정상'적인 길을―물론, 그런 것이 있다면―따르는 희망의 전사이자 '선의 발원'으로 간주되고 있다.

독일이 '문제'였던 비극적 유럽 현대사와 '독일문제'를 극복한 전후 정치사에 대해서는 학자들이나 정치가들 외에 언론이나 대중도 큰 관심을 보였다. 제바스티안 하프너(Sebastian Haffner)의 저술은 그 모든 관심에 제대로 조응한 드문 경우였다.

하프너는 1907년 베를린 출신이었지만 1938년 나치의 폭정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해 언론인으로 성장했다. 영국에서 '옵서버' 지의 정기기고자 그리고 편집장을 역임하다가 1954년 다시 독일로 건너와 '옵서버' 지와 독일 언론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며 많은 저술들을 남겼다.

독일인의 치밀한 분석력과 영국인의 섬세한 필치가 결합된 그의 글은 단연 발군이었다. 비판적 분석과 독창적인 통찰에 더해 탁월한 비유와 함축적인 수사를 구사한 그는 20세기 후반 유럽 교양지식인들의 낭중지추였다. 영국에 조지 오웰이 있고, 독일에 루돌프 아욱슈타인('슈피겔'지 발행인이자 편집장)이 있다면 영국과 독일 사이엔 하프너가 있었다.

하프너는 전후 수차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바꾸면서 독특한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냉전 옹호자였지만 1950년대 중반부터 동서간 화해와 평화정책의 열렬한 지지자로 변신했다. 1960년대 급진 청년 봉기의 동조자였던 그는 점차 사민당을 좇다 급기야 인생 말기에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규정했다.

그렇지만 그의 글은 정당이나 세대의 경계를 넘어 누구에게나 즐겨 읽혔다. '하프너-열풍'이 일었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하프너는 역사에세이 저술에 집중했다. 그의 역사 저술은 어떤 역사가들도 무시할 수 없었고, 정치가들이 가장 즐겨 인용하는 글이었으며, 언론에서 가장 주목하는 역사분석이었다. 수십 년 동안 독일에서 인문학 분야 베스트셀러의 상위 목록에서 떠나지 않았다.

문제의 독일,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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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돌베개, 2016)는 그의 역사 교양서 중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가장 흥미로운 책이다. 독일 현대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독일이 왜 그렇게 계속 '문제'를 안고 있었는지에 대해 독창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하프너는 비스마르크의 독일제국의 몰락과 히틀러 '제3제국'의 파국을 직접 연결시켜 그것의 연관관계를 규명했다.

하프너가 보기에 독일제국의 몰락은 불가피했다. 비스마르크가 독일제국을 건설했을 때부터 독일은 몰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즉, 하프너는 비스마르크의 독일제국이 처음부터 파괴를 내장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독일제국은 자신이 만들어낸 외부 세계의 적들로 인해 초기부터 계속 위협과 대결 및 적대와 파괴의 상호작용을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하프너가 보기에, 독일제국의 모순은 유럽 대륙의 한가운데에서 열강이 되고자 했다는 점에 있다. 독일제국은 유럽의 한 열강으로 만족하기에는 너무 컸고 세계열강이 되기에는 너무 작았다. 즉, 독일제국은 외부의 위협과 적대에 항상 휘둘리지는 않을 만큼 크긴 했지만 그 위협과 적대에 충분히 맞서지는 못할 만큼 작았다. 독일제국의 어정쩡한 규모와 모호한 지위가 애초부터 몰락의 씨앗을 배태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독일제국은 스스로 위협을 느끼면서 동시에 위협적인 국가가 되었다. 비스마르크는 그 구조적 모순을 중재와 조정 외교를 통해 해결하려 용을 썼지만 성공할 수가 없었다. 특히 그나마 조정 외교에 매달렸던 비스마르크가 실각한 뒤인 1890년대부터 독일제국은 '세계정책'이라는 이름의 팽창과 세계경제에서의 실질적인 부상으로 그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독일제국은 태생적으로 열강으로서의 권력 욕구와 팽창 의지를 억제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것을 제대로 관철할 수도 없는 지정학적 모순 속에서 불안 요소가 되었다. 세계제국이냐 몰락이냐의 기로에서 독일인이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몰락하지 않으려면 제국의 위용을 되찾고 다시 팽창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프너에게는 바이마르공화국 시기 독일 정치가들과 히틀러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없었다. 다만, 1930년대 외적 조건이 달라지면서 히틀러는 세계제국으로의 팽창 기회를 알아차리고 민족주의 선전을 통해 내적 응집력을 다진 뒤에 패권 전쟁을 추진했다.

일반적인 역사 해석과는 달리 하프너는 일차대전으로 독일이 오히려 더 유리한 국제적 지위를 가졌다고 보았다. 일차대전의 결과 유럽에는 독일에 맞설 열강이 더 이상 남지 않았고 더구나 주변국들이 연합해 독일에 맞설 국제적 조건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1930년대가 되면 프랑스도 영국도 소련도 독일제국의 재결집과 세계제국으로의 지위 확대를 억누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히틀러는 그런 권력 확대의 기회를 맘껏 향유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렇기에 하프너의 결론, 즉 히틀러가 아니었어도 누군가 그의 역할을 대신해 총통국가를 건설했을 것이고 이차대전도 발생했을 것이라는 결론은 매우 자극적이다.

물론, 이 분석이 히틀러의 전쟁범죄에 대한 상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프너는 유대인 탄압과 학살이 히틀러와 나치즘의 특수한 강령과 고유한 정책에서 기인했음을 분명히 밝혔고 그 범죄에 제대로 대면하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프너의 핵심 주장은 독일 현대사의 인습적인 해석을 뒤집는다. 비스마르크의 독일제국과 히틀러의 '제3제국' 사이의 연속성을 통해 독일 현대사의 비극을 설명하는 흔한 방식은 독일의 '특수한 길' 테제였다.

독일의 비판적 사회사가들이 문제 삼은 것은 독일 근대화의 내적 한계, 즉 '비정상적'인 발전 과정이었다. 독일제국의 권위주의적 사회질서와 반민주주의적 정치문화가 히틀러의 권력 장악과 홀로코스트의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연속성 테제가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들이 보기에, 독일 제국주의는 사회 내적 모순을 외부로 돌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며 나치의 '제3제국'은 근대화 발전의 지체와 왜곡에서 기인했다. 하프너는 그런 사회사가들의 견해에 맞선다. 그들과는 달리 하프너는 독일제국은 내정, 즉 사회경제적 요인이나 정치문화의 한계 때문에 비극의 길을 걸어간 것이 아니라 외적 지위와 외교정책 때문에 몰락했다고 주장했다.

근대성의 결핍에서 비극과 파국의 원인을 찾는 '특수성-테제'는 최근 물러섰다. 독일도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 영국이나 프랑스 못지않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지향의 시민사회가 발전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나라도 근대화의 '정상'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다는 인식이 수용되었다.

그런 점에서 하프너가 지적한 또 다른 연관관계, 즉 독일제국의 지정학적 모순에 주목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당시까지 비스마르크부터 히틀러 시대까지 독일제국의 모순적 열강의 지위와 외교정책을 그렇게 체계적으로 밝힌 분석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이 독일에서 1987년에 발간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비스마르크 시기부터 이차대전까지 독일의 외교적 지위와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새로운 연구가 줄을 잇는다. 그 연구들에 따르면, 비스마르크 시기 독일제국과 바이마르공화국과 나치제국의 국제적 지위와 조건을 지정학적 문제로 볼 수만은 없다.

지도적 정치가들이 취할 수 있는 행위와 결정의 선택 폭도 다양했다. 독일의 국제정치적 선택과 결정을 독일제국의 태생적 조건에서 기인하는 제국의 팽창이냐 몰락이냐의 양자택일의 문제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특히 비스마르크의 조정 외교 정치를 히틀러의 팽창정책과 연결시키는 것은 여전히 무리다. 아울러 바이마르공화국 시기 독일 정치가들 사이에는 다양한 외교적 노선이 경합했고 각 국면마다 외교정책은 차이가 없지 않았다. 하프너의 분석은 이런 모든 문제를 단순하게 취급했다. 물론, 그는 각 시기별 독일 권력자들의 행위에도 주목했다.

하지만 그는 주로 사후적 관점에서 행위의 결과를 해석하는 데 매달렸지 대안적 행위 고려나 선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그 외에도 지난 30년간 독일 현대사에 대한 무수한 연구들은 이 책의 여러 주장과 분석을 뒤집는다. 그렇기에 이 책을 사실들의 확인으로 읽으면 오류의 늪에 빠진다. 다만 이 책은 현대사에 대한 비판적 분석 관점과 새로운 인식 지평의 자극으로 의미 있게 읽힐 수 있다.

뒤집힌 분석과 주장, 그럼에도 유의미한 저작

이 책의 애초 발간 연도가 1987년임을 기억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전후 독일 분단의 질서를 수용하고 그것의 긍정적 의미를 부각했음에 유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1987년경 서독 사회의 대다수 지식인들과 정당들은 재통일을 통한 새로운 국민국가 독일의 탄생을 거부하고 당시 분단 상황을 '궁극적인 평화 질서'로 받아들였다.

하프너는 그런 지적 분위기와 '정치적 이성'에 조응했다. 하프너가 보기에, 독일 분단을 통해 이루어진 이국(二國) 체제와 서독의 서방 편입과 동독의 소련 체제 종속은 적어도 오래 독일제국의 근본적 모순을 해결한 의미 있는 발전이었다.

독일의 분열과 축소는 독일제국의 오랜 권력정치가 지닌 딜레마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과정이었다. 하프너에게 그것은 주변국뿐만 아니라 독일인에게도 긍정적인 역사적 전환이었다. 그렇기에 하프너에게 독일통일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원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듯이, 역사는 무승부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대중들은 새로운 독일에 대한 욕구를 멈추지 않았고, 하프너는 1990년 후기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0년 독일통일을 예측하지 못한 것을 두고 하프너를 탓할 수는 없다. 역사가도 그렇거니와 언론인이 꼭 예언자여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독일이 빠져나온 '비정상'과 '정상'으로의 험난한 길을 분석하는 데 이 책은 유용한 성찰을 제공한다. 이 책은 권력국가의 지위와 패권지향의 정치가 정치공동체에 어떤 파괴적 구속과 유인을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일 현대사의 이해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새로운 '비정상'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권력 국가와 패권정치를 비판적으로 관찰하는 데도 좋은 자극이 된다. 세계제국이냐 몰락이냐의 기로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20세기 독일의 과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팽창 지향의 권력국가를 지향하는 한 그 국가는 외정도 내정도 모두 파괴와 종말을 내장한다.

낡은 책이지만 좋은 책이 번역되어 기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언론인의 역사 교양서가 어떤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충분히 맛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동기는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입니다.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돌베개(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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