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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일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 해도, 나는 지금 하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인가?"

애플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는 대학생 때부터 이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질문에 'yes'라고 대답을 못 했을 때 그는 지금 하는 일을 과감히 그만두었다. 잡스가 스무 살 때 리드칼리지에 입학 후, 학교 커리큘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자 자퇴한 일은 유명하다.

한국에도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무료상담을 해주는 행복키우미 임재영 상담가다. 정신과 전문의 일을 할 때 그의 연봉은 '억' 소리 날 정도로 높았다.

하지만 그는 정신과 전문의가 되고 3년 후 스티브 잡스처럼 전문의 자리를 떠났다. 15년간 시간과 땀을 들여 의사가 됐는데, 의사라는 직업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일까?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듣기 위해 11월 6일 계원예술 대학에서 그를 만났다.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고민상담을 해주고 있는 임재영씨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고민상담을 해주고 있는 임재영씨
ⓒ 강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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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년 동안 준비해서 힘들게 정신과 전문의라는 꿈을 이루었는데 어떻게 그만두게 되셨나요?
"대학교 원서를 넣을 때 성적에 맞춰서 과를 선택했어요. 그때 성적이 잘 나왔거든요. (웃음) 그리고 많은 돈을 벌고 싶었어요. 하지만 15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을 하면서 돈이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키가 아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레지던트를 수료하고 처음 정신과 전문의가 됐을 때 너무나 감격스러웠죠. 그리고 첫 달에 통장에 천만 원이 찍힌 것을 봤을 때 심장이 쿵쾅거렸어요. 하지만 이 감격도 오래 못 가더라고요. 두 달 정도 지나니깐 큰 돈인데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 나는 어떤 정신과 전문의가 될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정신과 전문의가 되는 것만 생각했지 정신과 전문의가 된 후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못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병원을 나오자고 결심했어요."

- 구체적으로 생각한 의사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인간미가 넘치는 의사예요. 흰 가운을 입고 뒷짐 지고 근엄한 모습을 한 의사가 아니라, 낮은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서 도와주고 그들과 친구가 되는 의사예요.

병원에 있으면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도 저에게 선생님 하시며 허리 숙여 인사를 하시는데, 제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교만함이죠. 그런데 행복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고 나니깐 이 기분이 저를 불편하게 하더라고요.

또 병원에 있으면 사람을 만나는 데 한계가 있어요.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은 만나기 힘들어요. 거의 불가능하죠. 당장 생존을 위한 돈도 없는데, 정신과 치료를 위해 쓸 돈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병원을 나가기로 했어요."

기자와 인터뷰중인 재영씨
 기자와 인터뷰중인 재영씨
ⓒ 임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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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일들은 병원을 나오지 않고도 하실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맞아요. 방금 말씀드린 일들은 병원을 나오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사실 제가 병원을 나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제 말과 행동의 불일치 때문이에요.

제가 환자들에게 늘 '살아가는 데 돈은 필요하지만,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다. 너무 돈을 좇느라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마세요'라는 조언을 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환자들이 '당신은 한 달에 천만 원씩 벌면서,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정말 그런 거예요.

'돈이 많은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하면 누가 듣겠어요? 그 생각을 하니깐 저 자신이 모순덩어리로 보이고 위선자로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부모님과 장인·장모님께 제 속 이야기를 다 말씀드렸어요. 아내에게도 모두 털어놨죠.

- 양가 어른들과 아내께서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나요?
"양가 어른들은 제 생각을 들으시고는 믿고 지지해 주셨어요. 아버지께서는 조금 걱정하시기는 했지만 제 생각을 존중해주셨고요. 아내는 제가 천천히 설득했어요. 설득이라기보다 제가 그동안 느꼈고 깨달은 것들을 솔직히 다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아내의 동의를 구했죠. 아내가 만약 반대했다면 저는 지금 하는 이 일을 못했을 거예요.

그러면 또 제가 모순적인 사람이 되거든요(웃음). 밖에서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 마음을 치료해준다면서 집에서는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게 되잖아요. 제일 행복해야 할 사람이 아내고 제 가족인데 만약 제가 하는 일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고 힘들어한다면 저는 그게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못 해요."

남는 시간에는 행복에 대한 강연도 진행한다
 남는 시간에는 행복에 대한 강연도 진행한다
ⓒ 임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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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이 전보다 확 줄었을 텐데 심리적인 부담은 없나요?
"아직은 없어요.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저는 돈에 크게 신경을 안 써요. 물질적인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이 돈에 대한 집요한 마음이 없어요. 강의를 가도 강의비를 주시면 받고 안 주시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강의를 요청해주셔서 제가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제가 감사한 거죠. 아내는 다를 거예요. 아무래도 가정을 운영해 나가려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들어가니깐요. 그래서 늘 아내에게 고맙고 또 한편으로 미안해요."

- 지금의 결정에 후회한 적이 있나요?
"후회라기보다 가끔 외로워요. 특히 막 시작했을 때는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하루에 한 명도 못 만난 적도 있었어요. 그때는 많이 막막했죠. 제가 처음 가졌던 기대와 아주 달랐거든요. 제가 찾아가는 고민 상담소 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면 많은 사람이 고민 상담을 요청해 올 줄 알았어요. 제 착각이었죠. 그런 생각도 저의 교만함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내 안에 아직 교만한 마음이 남아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녔어요. 명함을 만들어서 지하철역에서 뿌리기도 했고, SNS계정을 만들어서 홍보도 했죠. 그 과정에서 제 높은 마음이 참 많이 깎이고 다듬어졌어요. 병원 있으면 사람들이 먼저 찾아와서 인사하고 말을 걸어 줬는데 지금은 제가 먼저 다가가서 인사드려도 본 척도 안 하는 사람도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명함을 제 앞에서 버리기도 해요. 그런 모습 보면 가슴이 아파요."

고민 상담을 위해 직접 개조한 트럭
 고민 상담을 위해 직접 개조한 트럭
ⓒ 강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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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하실 건가요?
"계속해야죠. 제 삶의 이유이고 목적인데요. 제가 살아 있을 동안 한국의 자살률을 조금이라도 낮추고 싶어요. 저의 이 작은 노력으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10년 넘게 자살률 1위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게 많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겁기도 해요."

-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격려의 한마디 부탁드려요.
"누구나 힘들 때 '나 하나 없어진대도 슬퍼할 사람 없을 거야'라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저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슬퍼해요. 신문이나 뉴스에서 자살 소식을 들을 때마다 괜히 나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더 무거워요.

그리고 주변에 자신의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건 착각이에요. 주변에 없을지는 몰라도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왜냐면 저희 같은 사람들이 있거든요. 또 지역마다 정신 보건센터가 있어요. 사람들이 보건소는 알고 있는데 정신보건센터는 모르거든요.

게다가 상담비용도 무료예요. 그리고 진료기록도 안 남구요. 그러니깐 고민이나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 앓지 말고 꼭 주변 사람이나 아니면 지역 정신보건센터로 연락을 주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항상 기다리고 있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억대연봉, #행복, #의사, #억대연봉,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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