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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여름이라 일이 없을 때 휴가를 갔다 오지 않으면, 나중에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며 휴가를 부추겼다.
 사장은 여름이라 일이 없을 때 휴가를 갔다 오지 않으면, 나중에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며 휴가를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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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7일 오후 4시 11분]

지난 9월 1일부터 직영점, 대리점, 판매점 등 모든 이동통신 유통점에 신분증 스캐너가 도입돼 운영되고 있다. 이용자 개인정보보호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는 모든 이동통신 유통점에 신분증 스캐너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이동통신 업계에서는 신분증 스캐너의 도입으로 유통점에서 그간 업무편의를 위해 관행으로 이루어져 왔던 신분증 무단 복사, 일부 유통점의 개인정보 도용 등이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심심치 않게 당하고 있다.

지난 10월, 허리 통증으로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에 휴가를 갔다 온 후부터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유슈프는 요즘 골치 아픈 일이 한둘이 아니다. 군인 출신으로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던 그가 처음 허리 통증을 느낀 건 지난여름이었다.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부품 박스를 드는 일을 반복하던 중에 살짝 어긋났다는 느낌을 받은 이후부터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악화되기 전에 일하면서 물리치료라도 받으려고 했지만, 사장은 움직여야 낫는다며 계속 일을 시켰다. 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점점 심해졌다. 결국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 지경이 됐을 때, 사장은 우즈베키스탄에 휴가를 갔다 오라고 했다. 한국에서 치료받으며 일을 하기 원했던 유슈프에게 휴가는 원치 않던 일이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지 1년 반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왕복 항공료를 들여가면서 휴가를 갔다 온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장은 여름이라 일이 없을 때 휴가를 갔다 오지 않으면, 나중에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며 휴가를 부추겼다.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두 달간의 휴가를 갔다 온 첫날, 유슈프는 기숙사 문이 잠겨 있는 가운데 자신의 모든 짐들이 기숙사 밖에 방치된 이유를 몰랐다. 그날 밤, 사장은 연락이 되지 않았고 공장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유슈프는 이주노동자쉼터에서 생활하며 몇 번에 걸쳐 사장을 찾아간 뒤에야 어렵사리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사장은 사업이 어려워서 공장 문을 닫을 거라고 했고, 기계들을 처분 중에 있다고 했다. 원치 않던 휴가를 다녀온 까닭에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유슈프는 황당했지만, 회사를 옮기기로 했다. 구직 활동을 하며 쉼터에서 생활해야만 했던 유슈프는 고용센터에서 몇 번의 구직 알선을 받고 회사를 구했다. 역시 자동차 부품 회사였지만, 부품은 지게차로 옮기는 곳이라 아직도 아픈 허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우즈베키스탄 동료가 두 명이나 있어서 회사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줬다.

동료들은 한국어도 잘했고, 지역 사정에도 밝았다. 입사한 첫 주 일요일에 동료들은 글로벌 페스티벌이 있다며 함께 놀러가자고 했다. 용인시청에서 주관하는 행사였다. 그곳에서 유슈프의 머리를 쥐어뜯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즐거웠던 축제, 공짜 선물인 줄 알았는데

유슈프 일행에게 다가온 수상한 사람들. 그들은 "축제 참가자들에게 선물로 핸드폰 유심카드와 무선이어폰을 주고 있다. 수요일에 택배를 발송하면 금요일에 받아볼 수 있다"며 신분증을 요구했다.
 유슈프 일행에게 다가온 수상한 사람들. 그들은 "축제 참가자들에게 선물로 핸드폰 유심카드와 무선이어폰을 주고 있다. 수요일에 택배를 발송하면 금요일에 받아볼 수 있다"며 신분증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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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광장 잔디밭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기웃거리던 세 사람에게 다가온 한국인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축제 참가자들에게 선물로 핸드폰 유심카드와 무선이어폰을 주고 있다. 수요일에 택배를 발송하면 금요일에 받아볼 수 있다"며 신분증을 요구했다. 셋은 행사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선물일 것으로 생각하고 의심 없이 신분증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건넨 서류에 서명까지 하면서도 아무런 연락처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약속한 금요일이 되었지만 택배는 도착하지 않았다. 그렇게 2주가 지나면서 불안감이 커진 유슈프는 이주노동자쉼터에 상담을 신청했다.

"거긴 다 한국 사람들이었어요. 시청에서 하는 행사라고 했잖아요. 유심카드, 무선 이어폰 약속했어요. 그런데 안 줘요. 이상해요."

유슈프는 신분증을 요구했던 한국인들이 시청 건물에서 외국인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했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믿었다고 했다. 쉼터에서는 핸드폰을 개설할 때 판매점에 신분증 사본을 돌려받거나 폐기 처분을 요구하지 않아 이주노동자들이 낭패를 당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일부 판매점에서 외국인등록증을 복사해 뒀다가 임의로 핸드폰을 개설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휴대폰 할부금이나 통신요금 체납으로 재산 가압류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어요. 이주노동자들이그런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핸드폰 말고도 외국인등록증은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확실히 알아 봐야 합니다."

결국 유슈프는 이주노동자쉼터를 통해 경찰 수사를 부탁했다. 다행히 경찰은 행사 당일 외국인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던 사람들을 금세 찾아냈다. 경찰에 의하면 그들은 알뜰폰 판매를 하는 통신 사업체 직원들이었다. 그들의 변명은 궁색했다.

"행사 당일 핸드폰 개설을 목적으로 신분증을 복사했다. 유슈프를 비롯한 세 명은 이미 알뜰폰을 사용하고 있어서 안 보내 주는 것이다. 사용자가 아니었다면 핸드폰 개통을 조건으로 선물을 보내줬을 것이다. 경찰 연락을 받고 우즈베키스탄 통역을 통해 설명했다."

그들은 신분증 사본을 폐기 처분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다만 '신분증을 악용할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로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유슈프는 "친구들에게 공짜라고 신청하자고 했어요. 이거 어떤 일 일어날지 몰라요"하면서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자책했다. 유슈프는 경찰이 연락했으니 설마 자신의 신분증을 함부로 도용하겠나 하면서도 불안감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다고 한다.

"허리 아파요. 회사 어떻게 될지 몰라요. 외국인등록증 또 몰라요. 머리 아파요. 외국인등록증이라고 함부로 복사해도 되나요?"


태그:#외국인등록증, #글로벌 축제, #용인시청,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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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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