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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선암사 단풍입니다.
 조계산 선암사 단풍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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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조계산 선암사 승선교입니다. 승선교가 물에 비치니 원으로 보입니다. 석공의 예술 감각에 탄복합니다.
 전남 순천 조계산 선암사 승선교입니다. 승선교가 물에 비치니 원으로 보입니다. 석공의 예술 감각에 탄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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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승선교 옆, 강선루 앞 길, 내려가는 사람은 지고 올라오는 사람은 떠오르는 해돋이와 해넘이 이치가 담겼습니다.
 선암사 승선교 옆, 강선루 앞 길, 내려가는 사람은 지고 올라오는 사람은 떠오르는 해돋이와 해넘이 이치가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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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물인 단풍과 함께 가을도 마무리 중입니다. 동시에 겨울의 시작점입니다. 그래서 고민입니다. 계절이 겹쳐 맞물려 돌아가는 이때 어디서 무엇을 해야 알차게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을지. 물론 욕심입니다. 한 해 동안 한 게 없는데 알찬 마무리를 바란다는 건. 그렇더라도 욕심내고픈 게 또 인생이지요. 욕심 잔뜩 가지고 순천 조계산 선암사로 향했습니다.

스님과 동행했습니다. 선암사에 계시는 동안 선암사의 매력을 몸소 체험했을 그를 따라 나서면 욕심이 버려질 거 같아서. 선암사, 알고 보니 위압적이지 않고 편안한,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인간 친화적인 이유가 곳곳에 숨어 있더군요. 이에 선암사의 진면목을 더불어 공유한다는 명분으로,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는 것을 끄집어내려 합니다.

"스님, 우리 걸어요. 선암사는 차로 쓱 지나가는 자체가 선암사에 대한 모욕 같아요."
"그렇지요. 저는 여기 행자 시절에 밖에 나갈 때면 걸어 다녔어요. 사람들이 태워준다 해도 마다했어요. 자연이 좋고, 걷는 게 좋아서요."

스님과 만나면 걸림이 없습니다. 의견 조율이 필요치 않습니다. 스스럼없이 하나 됩니다. 그냥 편합니다. 아마 전생에 궁합이 좋았나 봅니다. 흙과 자갈, 낙엽, 단풍, 개울 물소리가 엉켰습니다. 그래 더 행복합니다.

"이 산내음 좀 맡아 봐요. 낙엽 바스락 거리는 소리 들리세요?"

스님께서 묻기 전, 이미 코와 귀가 반응한 뒤였습니다. 이런 걸 느끼기 위해 걷는 게지요. 그는 나에게 있어 삶의 안내자이자, 해설사입니다.

# 1. 돌아앉은 선암사 부도와 상월 새봉 스님 전설

덕해 스님, 선암사 부도전 앞에서 예를 갖춥니다.
 덕해 스님, 선암사 부도전 앞에서 예를 갖춥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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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부도전 가는 길에 단풍이 마지막 인사 중입니다.
 선암사 부도전 가는 길에 단풍이 마지막 인사 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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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부도전에 돌아앉은 상월 새봉 스님 부도입니다.
 선암사 부도전에 돌아앉은 상월 새봉 스님 부도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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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부도에 재밌는 일화가 전해옵니다."

스님에 따르면 "탑(塔)은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여덟 나라 왕이 부처님의 사리 여덟 섬 네 말을 여덟 등분으로 나눠 각기 탑을 세우고 봉안했다는 기록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탑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보존하는 곳입니다. 부도(浮屠)는 "고승의 사리를 모신 묘탑"입니다. 탑은 주로 법당 앞에 세우고, 부도는 사찰 외곽에 자리합니다.

"어, 부도전 문이 열렸네. 여기 부도 중 특이점을 찾아보세요."

다른 부도들은 앞을 보고 있는데 반해 중간에 있는 하나가 옆으로 돌아앉았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듯합니다. 그가 "어느 스님께서 입적하신 후 장례식과 관련된 전설이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다"고 알려줍니다. 선암사 승범 스님께서 "조선시대 최고 승직인 선·교종 도총섭에 오른 상월 새봉 큰스님(1687~1767)과 관련한 두 가지 전설을 소개합니다.

"첫째, 조선시대 상월 큰스님께서 선암사 대승암에서 지내셨다. 어느 날 선암사 대승암에 상여 나갈 때 쓰는 만장이 떨어졌다. 알고 보니 상월 큰스님의 입적을 알리는 만장이었다. 그 길로 묘향산 보현사까지 문상을 갔다. 그 후 비를 각각 선암사와 보현사 쪽을 향해 세웠다는 설이다. 둘째, 영조 임금은 흠모하던 상월 큰스님이 입적하자 어명을 내려 선암사 대승암과 보현사에 비를 세우고 조정을 향하도록 했다는 설이다."

서산대사, 사명당 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조선시대 큰 스님들의 기이한 행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마, 상월 스님께서도 큰스님은 큰스님이셨나 봅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 출가한 스님들도 다른 절을 그리워하나요?
"출가해 행자 교육받던 곳이나, 오랫동안 정진 수행하던 곳은 기억에 많이 남지요."

- 부도를 세우는 자격 기준이 따로 있나요?
"없습니다. 열반 후 사리가 나오느냐 아니냐에 따라 갈립니다. 깨달음을 얻은 큰스님들은 대부분 사리가 나와 부도가 있는 겁니다. 사리가 나오면 절이나 신도들이 부도를 세우는데 큰 스님이더라도 형편이 안 되면 못 세웁니다."

- 요즘 속세에서 죽기 전에 가묘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스님들도 그러나요?
"속가처럼 죽기 전에 미리 부도를 만들어 두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비 후 사리가 나와야 모시는 부도를 미리 만들어 두는 건 모순입니다."

# 2. 계곡 물에 비춘 승선교 타원형으로 거듭나다

순천 선암사 승선교입니다.
 순천 선암사 승선교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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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선암사 승선교에 만들어진 동그라미. 원 안에 들어 있는 물, 강선루, 덕해 스님이 깨달음을 주는 듯합니다.
 조계산 선암사 승선교에 만들어진 동그라미. 원 안에 들어 있는 물, 강선루, 덕해 스님이 깨달음을 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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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해 스님, 선암사 승선교와 혼연일체였던 동그라미를 깨트립니다. 그래선지, 해맑습니다.
 덕해 스님, 선암사 승선교와 혼연일체였던 동그라미를 깨트립니다. 그래선지, 해맑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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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 청아합니다. 보물 제400호로 화강암 아치형 석교인 승선교 아래 계곡에는 여전히 사진 찍는 분들이 자리합니다. 승선교 안내판에 따르면 "조선 숙종 39년(1713)에 호암 대사가 완공한 승선교는 밑 부분이 자연 암반이어서 급류에 휩쓸릴 염려가 없으며, 가운데 부분에 용머리 조각이 있다"합니다. 그런데 한 번도 찍지 못한 사진이 있습니다.

"승선교는 계곡의 폭이 넓어 아치 또한 유달리 큰 편이다. 아랫부분에서부터 곡선을 그려 전체의 모양에 완전한 반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물이 비쳐진 모습과 어우러져 완벽한 하나의 원을 이룬다."

하나의 원을 이루는 승선교. 이런 사진 찍고 싶은 마음 굴뚝입니다. 하지만 욕심이려니 하고 말았습니다. 포인트를 알아야죠. 스님과 동행하니 모든 게 한방에 풀렸습니다. 스님께서 직접 계곡으로 내려가시더니 물을 건너 큰 바위에 올랐습니다. 그를 뒤따랐습니다. 승선교가 물에 비추었습니다.

"지금껏 이걸 몰랐어요? 그렇담 선암사의 매력을 전혀 모른 건데."

물 아래에 서니, 타원형이 보였습니다. 게다가 타원형 원 안에는 승선교 뒤로 자리한 강선루까지 들어왔습니다. 이런 그림이 나오다니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이건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자연을 이용한 석공의 예술적 감각에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거기에 모델까지 되어 주시니 손 안대고 코 푼 격입니다. 그야말로 횡재였습니다. 사진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 3. 둥글둥글 우주 이치가 선암사 길에서 재현되다

새벽 해돋이를 기다리는 것처럼 길 위에 아무 것도 자리하지 않습니다. 조금 지나면 나타납니다.
 새벽 해돋이를 기다리는 것처럼 길 위에 아무 것도 자리하지 않습니다. 조금 지나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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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던 길에 사람이 해처럼 나타났습니다. 원이 만들어 낸 자연의 이치입니다.
 아무도 없던 길에 사람이 해처럼 나타났습니다. 원이 만들어 낸 자연의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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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이 길에 서면 원근법이 제대로 나옵니다.
 선암사, 이 길에 서면 원근법이 제대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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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해 스님, 거의 다 차고 올라왔습니다. 이렇듯 뜨고 지는 이치가 삶 자체입니다.
 덕해 스님, 거의 다 차고 올라왔습니다. 이렇듯 뜨고 지는 이치가 삶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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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나 해넘이 자주 보시지요?"
"집 안방 침대에 누워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를 지겹게 봅니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세요. 재밌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스님 얼굴에 핀 염화미소를 통해 진짜 재밌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승선교 옆이자 강선루 앞 길 위. 말을 마친 스님, 홀로 팽팽히 걸어갑니다. 어쩌자는 겐지. 기다리라니 기다려야죠. 스님, 도술을 부린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나타났습니다.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오던 스님, '눈치 챘지요!'라는 듯, 한 마디 건넵니다.

"보셨지요?"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통 알 수 없습니다.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차이만큼이나 큰 거리감이었습니다. '뭘 봤다는 거죠?'란 표정으로 멀뚱멀뚱 있었습니다. 그제야 "아직 모르시는구나!"라며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 길은 저곳이 배가 불룩 나온 것처럼 튀어 나왔어요. 그래 사람이 오르고 내릴 때 해가 뜨거나 지는 것처럼 사람 모습이 천천히 떠오르고 지는 것처럼 보여요. 우주의 이치가 이 길에 재현되어 있는 셈이지요."

스님,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다시 직접 눈으로 보라는 거죠. 사라진 스님, 민둥머리부터 천천히 떠오릅니다. 절묘한 타이밍입니다. 반대쪽에선 연인이 걸어갑니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사람이 동시에 보는 듯합니다. 선암사가 그냥 편안한 절집이 아니었음을 실감합니다. 도처에 우주의 이치와 우주 과학을 숨겨두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덕해 스님, 법문이 떠나질 않습니다.

"스님들은 땀 흘린 노력의 대가로 없는 게 자랑이고, 속인은 땀 흘린 노력의 대가로 있는 게 자랑입니다."

덕해 스님, 머리를 내밀더니 어느 틈에 크게 떠올랐습니다. 해돋이 과정을 연상케 합니다.
 덕해 스님, 머리를 내밀더니 어느 틈에 크게 떠올랐습니다. 해돋이 과정을 연상케 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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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선암사 일주문입니다.
 어느 새 선암사 일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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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강선루입니다.
 선암사 강선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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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조계산 선암사, #승선교, #돌아앉은 상월 스님 부도, #덕해스님, #선문답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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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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