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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날,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비를 그었다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큰나무에 깃들면 비도 긋도 바람도 그을 만하다고 여길 수 있어요. 우람한 나무는 가지도 잎도 무척 많아요. 비바람을 긋기에는 참으로 좋다고 여길 만해요.

그런데 말이지요, 비가 억수로 쏟아부으면서 흙이 잔뜩 쓸리고, 바람이 모질게 불면서 큰나무가 우지끈 넘어졌대요. '큰나무에 깃들어 비바람을 그으려던 고양이'는 그만 나무를 붙잡고 물살에 휩쓸렸다고 합니다.

자, 이때에 우리가 고양이라면 어떤 마음이 될까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물살에 휩쓸린다면, 또 나무를 타고 하염없이 떠내려가야 한다면, 참말로 어떤 마음이 되려나요?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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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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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한쪽으로 기우뚱하더니 물속으로 풍덩 쓰러졌어요. 그러고는 둥둥 떠내려갔어요. "난데없이 여행하게 됐네. 괜찮아, 나한테는 커다란 나무 배가 있으니까." 고양이가 신나서 말했어요. (6쪽)

미라 로베 님이 글을 쓰고, 앙겔리카 카우프만 님이 그림을 그린 <이리 와!>(분홍고래,2016)라는 그림책은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이야기를 다룹니다. 나무를 타고 물살에 떠내려가야 하는 고양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 고양이는 처음에는 무서워하다가, 어느새 느긋해집니다. 나무가 쓰러질 적에는 걱정투성이였지만, 나무가 물살을 타고 흘러가니 '여행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요.

이야, 대단하지요. 이런 마음이 되기 쉽지 않을 텐데, 그림책에 나오는 고양이는 참 씩씩합니다. 아니, 어차피 물살에 떠내려가야 한다면 한숨만 폭폭 쉬기보다는 이 고양이처럼 마음을 싹 바꾸어 새롭고 즐겁게 바라보면 훨씬 낫겠지요.

속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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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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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벌써 세 마리가 됐네. 다음엔 누가 올까?" 돼지가 꿀꿀거렸어요. 다음에는 큰 냄비를 타고 암탉과 수탉이 떠내려왔어요. 냄비는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빙글빙글 돌았어요. 암탉이 무서워서 꼬꼬댁 울곡, 수탉이 불안해서 파닥파닥 날갯짓했어요. (10쪽)

그림책 <이리 와!>를 살피면, 고양이는 이웃 짐승을 하나둘 도와줍니다. 슬프거나 안타깝게 떠내려간다는 생각을 내려놓고서, 새로운 곳으로 나들이를 간다는 생각이 된 고양이인 터라, 물살에 휩쓸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힘들어하는 여러 짐승을 "이리 와!" 하고 불러요. 함께 나무를 타면서 쉬라고, 나무를 타고 쉬면서 몸을 말리라고, 함께 나무를 타고 어디론가 가면서 다른 동무(짐승)를 돕자고 이야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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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탈 자리도 없어!" 동물들이 팔다리를 넓게 벌리며 여우를 막아섰어요.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어요. "아무튼, 쟤는 안 돼!" "무슨 소리! 쟤도 타야 해." 고양이가 이렇게 말하며 여우를 물에서 건져 주었어요. (19쪽)

물살에 떠내려가는 나무에는 한동안 '여리고 작은' 짐승이 올라탑니다. 이러다가 여우를 만나요. 여우를 만난 여리고 작은 짐승들은 하나같이 "쟤는 안 돼!" 하고 외쳐요. 여우는 보기 싫대요. 이때, 고양이가 다른 여리고 작은 짐승들을 말려요. "쟤도 타야 해!" 하고 말이지요.

우리가 고양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여러 '여리고 작은' 짐승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우리가 여우라면, 우리가 다른 여리고 작은 짐승을 잡아먹던 여우라면, 이 같은 자리에서 어떤 마음이 될까요? 다른 여리고 작은 이웃을 괴롭히며 지내다가 '여리고 작은 이웃한테서 도움을 받는 우리'가 된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거듭날 만할까요? 그동안 우리를 괴롭힌 몹쓸 녀석은 수렁에 빠지거나 벼랑에 미끄러져도 본 체 만 체를 해도 될까요? 여리고 작은 이웃만 도우면 되고, 모질거나 몹쓸 이웃은 안 도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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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이리 와!>는 책이름처럼 "이리 오라"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누구나 이리 오라고 하는 마음을 다룹니다. 서로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대목을 헤아리면서 아끼자고 하는 마음을 다루어요.

어쩌면 어른들은 '책에서만 착한 마음을 엿볼'는지 모르나, 아이들은 책에서뿐 아니라 삶에서도 늘 착한 마음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배고플 적에는 누구나 배고프기 마련이고, 고단할 적에는 누구나 고단하기 마련이에요. 서로 돕고 이웃을 아끼는 살림을 겪고 나서는, 착한 이나 안 착한 이나 따로 없이 어깨동무를 할 수 있기를 마음입니다.

여느 때 여느 자리부터 서로 아낄 줄 알고 보듬을 줄 아는 마음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쟤는 안 돼!"를 내려놓을 수 있기를, "쟤도 함께!"를 외칠 수 있기를, 너랑 내가 서로 사랑스러운 우리로 손 잡을 수 있기를 빌어요.

덧붙이는 글 | <이리 와!>(미라 로베 글 / 앙겔리카 카우프만 그림 / 김시형 옮김 / 분홍고래 펴냄 / 2016.9.9. / 12000원)



이리 와!

미라 로베 글, 앙겔리카 카우프만 그림, 김시형 옮김, 분홍고래(2016)


태그:#이리 와, #미라 로베, #앙겔리카 카우프만, #그림책, #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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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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