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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도울 능력이 있거든, 네가 선을 베풀어야 할 자들에게 선을 베풀기를 주저하지 마라." -잠언 3: 27

아빠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똑깍인형의 아빠는 본인 입으로 '훌륭한 자녀교육 방법' 알기를 바라신다고 했다. 그동안 똑깍인형이 아파하고, 말이 없어지고, 아빠를 무서워했지만 무릎을 꿇렸던 훈육 방법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인정했다. 하지만 똑깍인형에게 사과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나 "물론, 아버님께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버님은 상대에게 실수를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일이 거의 없으셨을 것 같아요. 그러니 어린 딸에게라도 사과하는 것이 주저스러울 수 있습니다."

옆에 있던 똑깍인형의 엄마가 대답한다.

엄마 "아빠는 지금까지 사과할 만큼 잘못하는 일이 없으셨어요."

남편은 놀란 듯 아내를 바라보았다. 이 부부는 평소 일상생활에서 말이 거의 없다보니 서로에 대한 칭찬이나 격려를 하지 않는다. 이런 아내의 모습에 남편은 적잖이 놀랐다.

나 "대단하시네요. 얼마나 책임감 있게 살아오셨으면 아내분이 이렇게 확신있게 말씀하실까요. 제가 볼 때 아내분은 남편에 대해 인정을 넘어 존경스러움을 지니신 것 같아요."

나의 말을 인정이라도 하듯 아내가 덧붙인다.

엄마 "사실 남편(남편을 바라보며)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아내는 남편에 대한 칭찬을 하나씩 구체적으로(NVC의 4요소 중 첫 번째인 관찰-사실을 근거-을 시작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사실은 아내와 나는 아빠를 뵙기 전에 사전에 연습을 했다. 평소에 말을 아끼던 아내였기에 왜 대화를 통해 남편을 인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표현해주는 것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충분히 말씀드렸다. 아내는 기꺼이 해보기로 약속을 했다. 지금 똑깍인형의 엄마가 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다.

아내는 지금까지 말 없이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지만 '가족 간에 대화가 없는 것이 똑깍인형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 적이 몇 번 있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남편이 워낙 말없는 여자를 좋아하다 보니 입을 다물었고, 그런 남편이 딱히 잘못한 것이 없으니 그대로 따르고 살아온 것이다.  

나 "남편 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이 드물다는 건?"

엄마 "결혼해서 지금까지 쉬는 날에도 아침 5시 30분이면 일어났어요. 밤11시까지 규칙적으로 침실에 들어가셨고요. 한번도 흐트러짐이 없으셨어요."

나 "그렇군요. 정말 쉽지 않을 수 있는데 계속 그 생활 패턴을 유지 하시는 건가요?"

남편을 바라보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도 된 듯 머뭇머뭇하시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똑깍인형의 아빠는 지금까지(3회기) 나를 쭉 지켜보면서 '이 사람이 성실한가, 진실한가, 능력이 있는가, 믿을만 한가'를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쩌면 그와는 반대로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말하고 있었다.

나 "한편으로 그렇게 사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기도 해요. 이런 말씀 드리기 부끄럽지만 저는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게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나는 말과 표정으로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다'는 메시지를 담아 아빠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는 시선을 피했다.

나 "사실 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은데. 훌륭하세요."

아빠 "뭐~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요."

왠지 모를 쑥스러움과 어색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완전 어린아이의 표정 같았다. 웬만해서는 감정을 노출하지 않는 남편의 아이같은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의 눈에 살짝 눈물이 비친다.

그 둘을 바라보는 내 심정도 훈훈해졌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그동안 둘은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가장 쉽고, 가장 효과있는 방법. 즉, 사실을 근거해서 서로를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것만으로도 싸늘하고 단단한 가슴에 온기가 올라온다. 이제 두 분의 따뜻한 가슴에 '헤아림과 연민의 싹'이 다시 돋아나길 바란다. 

차돌같이 매끄럽고 단단해보이던 아빠가 두 손을 펴지 않고 오므리고 있었지만 아내의 진정 어린 인정에 자신도 모르게 그 주먹을 풀었다. 또 힘을 주어 곧게 세우고 있던 양어깨를 약간 내리면서 힘을 뺐다. 마치 푸른잎을 단단하게 세우고 있던 배추잎이 서리를 맞고 한 순간에 '폭' 가라앉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작은 아이가 되고 있었다.

아마도 똑깍인형의 아빠는 어린시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아빠는 초등학생보다 더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나 "제가 두 분에게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아내분은 평소에 남편에 대하여 지니고 계셨던 좋은 점을 말씀해주시고 남편분은 요즘 아내를 통해 겨우 6주만에 변화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여주시고. 딸을 위해 기꺼이 해보려는 마음이 훌륭해요."

아빠 "사실은 선생님이 저에게 숙제를 두 번 내주신 것(한 가지는 똑깍인형이 잠들기전에 "잘 자라"와 아침에 "잘 잤니?"라고 말해주는 것, 두 번째는 퇴근 후 저녁에 아이를 보면 "오늘 잘 지냈니?" 물어보는 것)을 처음에는 낯설어서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아이 엄마와 함께 연습하고 시작했습니다."

나 "아~ 그러셨어요? 잘 하셨네요."

아빠 "그러다 보니 몇 번은 어색했지만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똑깍인형이 어린아이임에 틀림 없구나."

나 "똑깍인형이 어린아이임을 다시 확인하신 건가요?"

아빠 "그렇지요~ 이렇게 작은 아이한테 제가 어른들조차 하기 힘든 훈련을 계속했구나 싶긴 했어요."

나 "네~"

똑깍인형의 아빠가 또 다른 말을 해주길 기다렸다. 거의 2분정도 지났을까.

아빠 "그렇지만 제가 애한테 '미얀하다'고 사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시 처음의 빈틈없고, 예리하며 논리적인 면모로 돌아갔다.

나 "'미안하다'라고 사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기시는 건가요?"

아빠 "아빠가 아이에게 가정교육을 한 것이니까요."

나 "만약에 아빠께서 똑깍인형에게 하지 말았어야 했거나 불편하게 했던 것에 대하여 정중하게 사과를 하신다면 똑깍인형이 아빠의 뜻을 따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아빠 "그게 무슨말씀이세요?"

나 "앞으로 똑깍인형도 유치원이나 학교, 그리고 친구관계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잘못한 것 같을 때에 정중히 사과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겁니다. 더군다나 똑깍인형에게 아빠의 중요도가 높습니다. 아빠의 영향이 크게 미치고 있고 아빠의 말과 태도를 본받고 있습니다."

아빠 "애 엄마가 아니고 제 말과 태도를 본 받고 있다고요?"

아빠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며 얼굴에 두려움, 불안이 가득하다.

나 "왜 그러시나요? 똑깍인형이 아빠의 말과 태도를 본받지 않길 바라시나요?"

아빠 "안 돼지요."

눈에 힘을 주며 강한 어조로 말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왜~ 안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빠 "어쨌든 안 됩니다. 애 엄마를 닮아야지"



태그:#말, #태도, #부모, #자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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