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8일 인천 중구 선린동에 있는 카페 '낙타사막'에 갔다.

1883년 인천항이 열리고 선진 열강들은 경쟁하듯 인천에 정착했다. 개항지인 인천 중구는 개항의 흔적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중구청을 등지고 서해 바다를 바라본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개항 당시 청나라와 일본 조계지가 있던 곳이 나온다. 두 나라 조계지의 경계에는 돌계단이 있다. 돌계단으로 조계지 영역을 구분했으며, 지금도 돌계단 양쪽에는 일본과 청나라의 석등이 다른 모양으로 서 있다.

이 돌계단은 2002년 인천시 기념물 51호로 지정됐다. 계단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청나라와 일본의 전통 건축양식이 들어서 있다. 두 나라의 건축양식 차이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평범한 계단인 것 같지만 이 돌계단은 130여년의 역사를 품되 입을 다물고 있다.

돌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중국 청도에서 기증한 공자상이 나온다. 이 공자상을 바라보고 중국 조계지가 있던 왼쪽을 보면 유심히 봐야 보이는, 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카페가 있다. 바로 '낙타사막'이다. 그곳에서 카페 주인 박미나(43)씨를 만났다.

자유인, 박미나

카페 ‘낙타사막’의 자칭 홍보대사인 백승기 감독(왼쪽)과 박미나 ‘낙타사막’ 사장(오른쪽).
 카페 ‘낙타사막’의 자칭 홍보대사인 백승기 감독(왼쪽)과 박미나 ‘낙타사막’ 사장(오른쪽).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그리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글귀)

박미나씨와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고, 말은 툭툭 끊겼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서로 이른바 '분량'을 걱정하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답 대신 주변에 '더 좋은 카페가 있다'는 소개와 인천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다른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대느라 분주했다. 참 묘했다. 부끄러워했지만 평화롭고 자유로워 보였다.

박씨는 '낙타사막'만큼이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살아온 듯했다. 그러나 그녀와 대화할수록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려는 게 아니라, 그다지 타인을 신경쓰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것이 아닌, 자유인 같은 포스였다. 그런 박씨를 보면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떠올랐다.

'낙타사막'을 다녀온 블로거들이 이곳을 '카페 겸 공방'이라고 소개한 글이 꽤 많았다.

"내가 만든 것들을 카페에 놓아두니까 '카페 겸 공방인가 봐'라고 손님들끼리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렇게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나 봐요. 내가 말한 적은 없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제가 뭘 어쩌겠어요.(웃음)"

작은 공간이지만 단골손님들이 계속 와서, 인터뷰가 수시로 중단됐다. 게 중에는 예술인이 많았다. 옆 자리에 앉은 백승기 영화감독이 "이곳은 기자들이 선정한, 인천에서 인터뷰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소문났다"고 거들었다. 사실인지 묻자, 박 사장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백 감독이 이 카페 단골이고, 백 감독이 인터뷰할 때마다 기자들과 이곳에서 약속을 잡아서 그렇단다.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작가들이나 사진작가도 들렀다. "오늘 왜 이래. 무슨 날이야?" 박 사장은 남 얘기하듯 했다. 이곳은 참새방앗간임이 분명한 것 같았다.

인터뷰 약속을 잡으려는데 오전에는 들를 곳이 있다고 해, 어디냐고 물으니, 길냥이(길고양이) 중성화수술을 예약해뒀단다. 잘 다녀왔냐고 물으니, 못 갔다고 했다.

"수술하려면 10시간 전부터 금식 시켜야 하는데 깜빡 잊었어요. 다른 날로 예약을 변경했어요."

박씨는 카페에서 고양이 네 마리를 키우고 있다. 키우려고 키운 게 아니란다.

"처음엔 밖에다 그릇을 내놓고 밥만 줬어요. 그런데 어느 날 수컷인 노란 고양이가 카페 안으로 들어오더니 안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안에서 길러요. 그러더니 암컷인 검정고양이가 또 들어오는 거예요. 얼마 후 새끼를 뱄어요. 혹시 몰라서 책상 밑에 박스를 뒀더니 두 달 전에 거기에 새끼를 낳더라고요. 오늘 암놈을 중성화시키려고 했던 건데…. 분양이요? 글쎄요. 키우려는 사람이 있으면 주고 싶어요. 없으면 그냥 제가 키워야죠."

박 사장의 말에 옆에 있던 예술가들이 반발한다. 적극적으로 분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두 달된 새끼 고양이들의 재롱에 한동안 인터뷰를 중단하고 넋 놓고 바라봤다.

공간도 나이를 먹는다

‘낙타사막’에는 고양이 네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낙타사막’에는 고양이 네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낙타사막은 공동 사장이 운영한다. 박씨네 부부다. 미술을 전공한 부부는 지인들과 공동 작업을 할 공간을 찾다가 이곳과 인연이 닿았다.

"우리가 예술계통에 있다 보니 예술가들과 인맥이 많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일반 찻집 같지 않고 '뭔가 하는 곳' 같다는 입소문도 난 거 같고요."

2011년 문을 연 낙타사막은 뭔가를 계속 시도했다.

지난 7월 2일에 신포동 일대에서는 '2016 인천펜타포트음악축제'이자 '사운드바운드 in 신포'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중구 신포동 인근에 있는 아트플랫폼 A와 C동, 음악클럽 글래스톤베리, 재즈카페 버텀라인과 낙타사막에서 진행했다. 다른 곳은 밴드 공연이 있었지만, 낙타사막에선 '지음 음감회'가 열렸다.

"이 행사도 인맥으로 했어요. 남편한테 연락이 왔는데 한다고 했죠. 음악감상실 같은 행사였어요. 디제이(DJ)가 자기 사연을 말하면서 음악을 틀어주고 관객들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죠."

'영화모임'을 6개월간 한 적도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상영했는데 꾸준히 10여 명이 모였단다. 이 모임도 주인장이 주도한 건 아니다. 손님으로 왔다가 친해진 사람이 제안하길래 그냥 하게 됐다고 무심히 말했다.

"이 공간도 같이 나이 먹는 거 같아요. 친하게 지낸 20대 손님도 나이를 먹으면서 30대가 되면서 바빠지고, 나도 나이를 먹으니까 공간에서 하는 일도 바뀌는 거 같고요. 내가 나서지는 않지만 손님이 한다고 하면 공간을 제공합니다. 그들이 뭘 한다고 하지 않는 이상 내가 뭘 하지는 않아요.(웃음)"

문을 연 초기에는 독립출판 책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일도 했다. 하지만 책을 팔려면 책을 읽어야 하는데 바빠서 읽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하는데 역량 부족을 느껴 그만뒀다. 다소 수동적인 것 같은 박 사장이 제안해 진행하고 있는 모임이 있다. 인천 녹색당 소모임인 '손맛 나는 모임'이다.

격주로 진행하는 모임인데, 회원들이 재료를 가지고 와 서로 나누며 바느질을 한다. 손재주가 많은 박 사장은 컵 받침대를 만들어 카페에 전시했다. 원하는 사람들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저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길 원해요. 사업을 펼치거나 공간을 키울 생각도 없어요. 하지만 작고 알찬 프로그램이 있으면 함께할 수도 있고요."

술 창고였던 곳,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다

2층 마룻바닥에 앉은뱅이 탁자를 뒀다. 창밖으로는 바다가 훤히 보인다. 벽면에는 영상 스크린이 설치돼있다.
 2층 마룻바닥에 앉은뱅이 탁자를 뒀다. 창밖으로는 바다가 훤히 보인다. 벽면에는 영상 스크린이 설치돼있다.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박 사장 부부는 8년 전 이 집을 샀다. 당시는 내부를 수리할 돈이 없어서 그냥 뒀다가 몇 년 지나고 인테리어를 해 2011년 카페로 오픈했다.

"꽤 오래 비어있었다고 해요. 바다가 보이고 경치가 좋아서 처음에는 살 집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너무 허름해서 고칠 엄두가 안 났어요. 100년은 넘은 건물 같아요. 예전에 빨간 벽돌로 지은 건물인데 벽돌이 아주 오래된 거예요. 이종복(터진개문화마당 대표) 선생님이 예전에 술집 창고였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들은 복층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나무로 지어진 집이라 의자와 탁자를 놓으면 시끄러울 것 같아 2층은 앉은뱅이 책상을 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마룻바닥에서 창문으로 바다를 바라보면 운치가 꽤 있다. 그러나 나이든 손님들은 오래 앉아있지 못하니까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마룻바닥인 2층에서 스크린을 내려 영화를 상영했다.

구도심에 들어가 살면서 눈에 띄는 게 싫었던 이들은 안에만 고치고 밖에는 고치지 말자고 합의해, 카페 밖은 거의 손을 안 댔단다. 오히려 손님들이 가게가 너무 눈에 안 띄니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제안하지만, 주인장들은 별 의지가 없어 보인다.

"사람이 많은 게 싫어요. 사람이 많으면 힘들어요. 둘 다 장사를 잘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에요. 수완도 없고요. 어떨 땐 돈을 벌려고 하는데 장사가 안 되고, 어쩌다 사람이 많으면 돈 버는 게 힘들어 그만 두고 싶기도 하고요. 생각이 왔다 갔다 해요. 아직은 별 생각이 없지만, 그림을 좋아하니까 나중엔 그림과 관련한 책을 판매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요."

카페 '낙타사막'은 정오에 문을 열고 오후 9시에 문을 닫는다. 월요일은 휴무다.
카페 1층에는 박미나 사장이 손으로 만든 바느질 작품들을 걸어 두었다.
 카페 1층에는 박미나 사장이 손으로 만든 바느질 작품들을 걸어 두었다.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낙타사막, #박미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