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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면, 특히나 이렇게 추운 날이면, 그때 그녀는 잘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겨울이 오면, 특히나 이렇게 추운 날이면, 그때 그녀는 잘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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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제법 찾아드는 사무실 창문 너머로 나뭇가지들이 심하게 흔들린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한파라서 그런지 가스난로, 전기 히터를 틀어놓은 사무실에 앉아있는데도 발이 시리다. 성서산업단지역을 내려 공장까지 걸어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도 두꺼운 옷과 목도리, 장갑, 마스크까지 보온장비를 챙겼지만 추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겨울이 오면, 특히나 이렇게 추운 날이면, 그때 그녀는 잘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그때도 지금처럼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오십도 훨씬 넘어 보이는 노동자 한 분이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다.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옷차림도 그러했고 부스스한 머리 모양도 한몫했다.

성서주공아파트에서 성서공단 2차 단지 회사까지 걸어서 출퇴근하는 데 꼬박 1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 회사는 성서 관내 아파트의 재활용 비닐을 수거해서 가져오면 그것을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분리하고 쓸 수 있는 것들을 기계에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 반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그녀는 거기서 하루 9시간 일하고 한 달 8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제야 그녀의 허름한 옷차림과 부스스한 머리모양이 이해가 되었다.

80만 원이라니, 최저임금에도 턱없이 모자란 돈이 아닌가. 더구나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지천명의 나이에 80만 원으로 살 수는 있을까. 혼자 사는 그녀에게 80만 원은 어떤 돈일까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를 따라 회사도 가보고 아파트에도 가보았다. 회사는 흡사 쓰레기 매립장 같은 곳이었다. 손 씻을 곳도 마땅치 않았고 수세식 변기가 놓여있는 화장실은 더더욱이나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폐비닐들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이런 공장이라면 그녀와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이 아니면 누구도 일하지 않을 곳임을 직감했고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집은, 절망스러웠다. 지역난방을 사용하는 성서주공아파트는 가스요금이 제법 나온다고 소문난 곳이다. 그래서일까, 한겨울임에도 난방을 하지 않아 너무도 차가운 방바닥, 서 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가스레인지는 언제 쓰고 안 쓴 것인지 먼지가 하얗게 앉아있고 냉장고는 아예 보이지가 않았다. 컵라면 몇 개와 낯선 나무뿌리들이 쌓여있는 부엌 싱크대를 제외하면 살림이라고 할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바닥에 앉히기 미안했던지 이불을 끌어당겨 앉으라 하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커피나 녹차도 없을 것 같은데 무엇을 주시려나 궁금한 차에 커피포트에선 낯선 냄새가 흘러나왔다. "뭐예요?"하는 질문에 "와룡산에서 캐서 온 칡뿌리예요"한다. 할 말이 없어졌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겨우내 커피포트의 뜨거운 물을 마시며 지낸다 한다. 배가 고프면 컵라면을 먹고, 또 배가 고프면 칡뿌리를 우린 물을 마신다고 한다. 와룡산이 가까이 있어 가죽나물, 냉이, 고들빼기, 칡뿌리를 캐고 산딸기를 따서 배를 채우고 고사리를 따고 도토리를 주워 팔아서 살림에 보탠다고 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80만 원이면 그렇게 살 정도는 아니지 않으냐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사고를 쳐서 거기에 수입의 상당 부분이 들어간다고 했다. 가까운 친척이라도 있으면 기대기라도 할 텐데 그럴 수 있는 처지도 아니라 했다.

숨가쁜 삶, 그 틈을 비집고 전해준 주황색 타올

오마이뉴스 제공, 2016.7.18. 민주노총 서울본부 최저임금 관련 기자회견 모습
 오마이뉴스 제공, 2016.7.18. 민주노총 서울본부 최저임금 관련 기자회견 모습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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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노동환경과 굶주림의 연속인 삶을 그래도 이어가는 그 노동자가, 그런 노동자들이 성서공단에 얼마나 있을 것인가 가늠할 수도 없다. 정주노동자들이 이러할진대 이주노동자들의 드러나지 않는 삶들은 또 어떠하겠는가. 전국에서 제일 낮은 임금수준, 그러니 더 길게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 새벽 찬바람에 출근하고 북두칠성 또렷한 밤에 퇴근하는 노동자들.

그들에게 있어 나의 인생, 나의 여가생활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기나 할까. 다만 굶지 않는다면, 일하다가 죽지만 않는다면 다행이라고 그리 여기는 것은 아닐까.

얼마 후 당연히 받아야 할 최저임금 차액을 노동청 진정을 거쳐 지급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법을 어긴 사업주는 돈을 지급함과 동시에 처벌에서 면제됐다. 실제로 2012~2014년 최저임금법 위반 1만6777건 중 사법처리는 34건, 과태료 부과는 14건에 불과하다(고용노동부 발표). 전체의 겨우 0.28%만 처벌한 것이다. 삐까뻔쩍한 최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않거나 최저임금만 지급하면 된다는 사업주가 많은 이유이다.

대기업들은 한해 수조 원의 영업이익을 남긴다. 그들에 기대온 정치권력은 모든 노동자들을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만들려고 한다. 경제위기를 언급하고, 노동자대표를 구속시키고, IS 가담 이주노동자 체포라는 거짓 진실들을 만들어내면서. 그전보다 더 많은 불법파견노동자가, 계약직 노동자가, 4·5차 하청업체노동자가, 마찌꼬바(시내에 있는 작은 공장) 소사장이, 촉탁직 노동자가 그리고 정규직이면서도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성서공단에 넘쳐난다.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해고의 위협에 숨조차 쉬지 못하는 억울한 노동자들이.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녀가 살포시 사무실에 들어선다. 대구시 주최 걷기대회에 참가했다며 주황색 스포츠 타올을 수줍게 내민다. 참가자에게 하나씩 지급되는 스포츠 타올을 여러 장 받기 위해 줄을 몇 번이나 섰다고 하면서, 드릴 것이 없어서 이거라도 꼭 드리고 싶었다며.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고맙다고 받았다. 그 마음을 온전히 받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의 가난을 누추하고 피하고 싶은 그 무엇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싶었기에.

이번 주말에 추위가 최고 절정에 달한다고 한다. 그녀는 그 아파트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김희정님은 성서공단노동조합 상담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동자 인권, #최저임금, #노동권, #생존권, #생활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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