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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멸신호는 신호등 불빛이 깜빡이는 신호를 말한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차량용 신호등의 황색점멸과 적색점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6조 2항, 별표 2
황색 등화의 점멸: 차마는 다른 교통 또는 안전표지의 표시에 주의하면서 진행할 수 있다.
적색 등화의 점멸: 차마는 정지선이나 횡단보도가 있을 때에는 그 직전이나 교차로의 직전에 일시정지한 후 다른 교통에 주의하면서 진행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황색점멸은 서행으로 통과, 적색점멸은 일시정지 후 통과다. 법상 '일시정지'란 차의 운전자가 그 차의 바퀴를 일시적으로 완전히 정지시키는 것을 말하며, '서행'(徐行)이란 운전자가 차를 즉시 정지시킬 수 있는 정도의 느린 속도로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서행은 특별히 속도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점멸신호는 교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심야나 휴일같이 교통량이 크게 줄어드는 시간대에도 고정 주기의 신호등을 운영해왔다. 이 때문에 심야에 횡단보도나 교차로에서 보행자나 다른 차들이 없는데도 오랫동안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많은 운전자들이 쉽게 신호를 위반하는 신호위반 풍조가 만연해있다. 이 같은 풍조는 전반적인 법질서 경시 풍조로 확대되어 사회적 신뢰를 흔들고, 법치주의 확립까지 어렵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황색점멸신호와 적색점멸신호의 의미
 황색점멸신호와 적색점멸신호의 의미
ⓒ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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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교통운영체계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전국 교차로와 횡단보도 곳곳에 점멸신호를 많이 도입했다. 그런데 문제는 점멸신호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다는 것. 점멸신호가 서행이나 일시정지를 지시한다는 것을 모르고 단순 경고용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으며, 심지어 신호등이 고장 난 것으로 아는 사람조차 있다.

점멸신호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도 점멸신호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 실제로 황색점멸신호를 서행으로 통과하는 차량은 많지 않고, 적색점멸신호에서 일시정지 후 재출발하는 차량은 더더욱 적다.

이렇게 사회적 약속인 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교통약자가 입게 된다. 보행자는 심야에 황색점멸이 들어오는 횡단보도를, 쌩쌩 달리는 차들 때문에 제대로 지나갈 수가 없고 교통사고에도 노출된다.

또한 차량들끼리도 위험해진다. 점멸신호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 있는데, 교차로에서는 황색점멸쪽이 주(主)도로, 적색점멸쪽이 부(副)도로로서 통행우선순위를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교통신호기 설치관리 매뉴얼(경찰청) 제3장 제3절 제6조).

점멸신호와 주도로, 부도로의 개념: 
주도로에 있는 1번 차량이 부도로에 있는 2번 차량보다 우선순위가 높다
 점멸신호와 주도로, 부도로의 개념: 주도로에 있는 1번 차량이 부도로에 있는 2번 차량보다 우선순위가 높다
ⓒ 서울시,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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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적색점멸 쪽 차량은 일시정지해야 하고 황색점멸 쪽 차량을 먼저 보내줘야 하며, 황색점멸 쪽은 서행으로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하지만, 양쪽 모두 신호를 안 지키니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점멸신호를 안 지키면 사고처리도 힘들어진다. 적색 점멸신호는 부도로로서 통행우선순위가 낮으므로 사고를 내면 과실비율 산정에서 불리해진다. 또한 적색점멸에서 일시정지를 안 지킨 차량은 신호위반을 한 것이다. 자신이 피해자인줄 알았는데 적색점멸 신호를 안 지켰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바뀌는 경우가 흔하다. 더구나 신호위반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11개 중과실에 해당돼 형사처벌까지 받게 된다.

점멸신호는 운전자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차량이 적은 교차로와 시간대에 불필요한 대기시간을 줄여주어 운전자의 편의를 돕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도입된 신호를 무시하고 보행자나 타 운전자를 위협하는 운전자들은 이러한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

운전자들이 기존의 색등식 신호와 마찬가지로 점멸신호도 공식적인 신호라는 인식을 갖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신호대기 없이 편리하게 교차로와 횡단보도를 통과하는 권리를 누린 만큼 운전자들은 점멸신호등 준수라는 의무도 함께 지켰으면 한다.

혜택을 받았으니 그만큼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신호대기없는 점멸신호니까 마음대로 달려도 된다는 게 아니라, 점멸신호인만큼 보행자와 다른 차량을 더욱 주의해서 달려야 한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운전자들이 이러한 배려를 받고도 의무를 계속 지키지 않는다면 제재를 할 수밖에 없다. 편리한 교통을 위해 도입된 점멸신호가 오히려 규칙을 지키는 운전자와 보행자들을 위협하고 있다면, 점멸신호를 무시하는 운전자는 단속해야 마땅하다.

점멸신호를 지키지 않는 것은 도로교통법에 따라 범칙금과 벌점이 부과되는 신호위반 행위다. 요즘은 무인카메라 잘 되어 있어서 단속은 어렵지 않다. 적색점멸신호 앞에서 완전히 정지한 후 재출발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는 차량을 촬영해 단속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단속 만능주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가장 좋은 것은 운전자가 스스로가 점멸신호를 잘 지키는 것이다.

운전자는 점멸신호가 켜진 횡단보도를 통과할 때 색등식 신호등보다 한층 더 주의하여 통과해야 한다. 적색점멸일 경우 일시정지도 필수다
 운전자는 점멸신호가 켜진 횡단보도를 통과할 때 색등식 신호등보다 한층 더 주의하여 통과해야 한다. 적색점멸일 경우 일시정지도 필수다
ⓒ 천안동남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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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차라리 고정식 신호등으로 돌려달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정식이든 점멸식이든 신호등인 건 마찬가지다. 신호등은 약속이다. 약속을 지키면 어떤 신호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자율적으로 통과할 수 있는 점멸신호등을 반납하고 타율에 의한 비효율적 고정신호등을 달라는 것은 '노예근성'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선진국은 점멸신호등에서 안전하게 통과하고 있는데, 우리만 '민도'가 낮다며 안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엽전의식'의 발로이다.

점멸신호는 약속을 잘 지키기만 한다면 장점이 많다. 경찰청에 따르면 교통소통이 개선되고 불필요한 신호대기시간이 감소하며, 공회전이 줄어들어 연료가 절약되고,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든다. 선입견과는 달리 신호가 잘 지켜지는 점멸신호에서는 사고도 줄어든다고 한다. 과속을 못하고 서로 간에 조심운전을 하기 때문이다.

일반신호에서 점멸신호로 바뀌면 사고가 늘어난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애초에 점멸신호는 교통량이 적은 곳, 교차로 크기가 작은 곳, 가로등 및 가드레일 시설이 잘 정비돼 있는 곳, 야간 보행자 통행이 적은 곳에 우선적으로 설치된다(경찰청 교통신호기 설치관리 매뉴얼에 의거). 그래서 운전자가 신호만 잘 지키면 점멸신호로 바꿨다고 사고가 늘지 않으며, 오히려 점멸신호의 장점이 잘 발휘된다.

선진국이란 다른 게 아니다. 사회적인 신뢰가 자본으로 쌓여 여기서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사회다. 그런 점에서 서로간의 약속과 배려를 기반으로 하는 점멸신호는 그 가치가 크다. 우리가 스스로 규칙을 지킬 때에 한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한우진님은 공공교통애호인, 교통평론가입니다



태그:#점멸신호, #교통신호, #교통안전, #신호등, #도로교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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