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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 참여자의 피켓으로 활용된 이 그림은 네덜란드 유학생이 작년 과제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자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 유학생은 그림을 들고 얼구을 반쯤 가린 채 집회 내내 침울한 모습이었다.
 집회 참여자의 피켓으로 활용된 이 그림은 네덜란드 유학생이 작년 과제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자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 유학생은 그림을 들고 얼구을 반쯤 가린 채 집회 내내 침울한 모습이었다.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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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2일 대한민국의 도심 광장이 촛불 바다가 되어 출렁였다. 같은 날, 네덜란드 광장에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암스테르담 뮤지엄 광장의 아이암스테르담(Iamsterdam : 붉은색의 사인보드로 암스테르담 홍보를 위해 만들어 국립박물관 앞에 놓아둔 것) 글자판 꼭대기에 한국인 남매가 피켓을 들고 앉아 있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한인 200여명은 소리 높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시국 선언이 이어졌고 참석한 사람들 각자의 시국에 대한 생각을 쏟아냈다. 네덜란드에서 한인들이 집회를 통해 한국 정부에 쓴 소리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네덜란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6년 1월 1일 현재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3017명이다. 지난해까지 법적으로 투자 이민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민자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전 세계 재외동포들이 조국의 촛불 행진에 힘을 보태고 있는 요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 거주민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일까. 네덜란드 거주 한인들이 거리로 나와 조국의 상황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안이 주는 심각성을 네덜란드 한인들도 인식한 걸까. 슬프고 아프지만 조국의 국민들과 연대하여 뜻을 밝혀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시차는 8시간. 그 덕에 서울 도심 광장에 100만 명이 모여 촛불 바다를 이뤘다는 소식을 접한 뒤에야 네덜란드 한인들은 촛불집회를 예정한 곳에 모였다.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과 반 고흐 박물관 등 다양한 박물관의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뮤지엄 광장에 두 단체가 집회를 신고해 놓았다. 하나는 한국인들의 시국선언 집회, 다른 하나는 터키인들의 비상계엄령 해제 요구와 시국 관련 집회였다. 암스테르담은 그야말로 인종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펼치질 수 있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네덜란드의 시국 선언 모임은 페이스북을 통해 의견을 나누며 준비 모임을 결성했다. 한 준비 위원은 이후 민주적 참여와 효율적 추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나가는 것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다고 밝혔다. 온라인 안에서 편하게 대화를 나누다, 실질적 모임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그 오프라인 모임에 대한 걱정이 컸다고 한다.

특별한 인맥이나 조직이 동원돼 결성된 것이 아니라, 시국을 걱정하며 혼자 분을 삭이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든 준비 모임이라 '각자의 생각과 이념들을 하나로 이끌어 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준비위원 모두가 했단다. 또한 네덜란드에서는 처음 열리는 한국 정부 대상 항의 집회이기에, 그동안 정부 정책에 열심히 부흥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걱정은 무척 컸다고 한다.

네덜란드 광장에 모인, 200여 명의 네덜란드 한인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네덜란드 한인들이 진행한 '박근혜 퇴진' 집회 모습.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네덜란드 한인들이 진행한 '박근혜 퇴진' 집회 모습.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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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에 나와 있는 국정원 직원이 우리를 사찰하는 것 아닙니까?"

준비 위원회에 직접적으로 이런 말을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 질문이 우려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집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게 큰 부담이었다고 한다. 집회 날짜를 결정하고 세부 사항을 준비하기 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행사 홍보에서 부터 그날 콘셉트까지. 집회 전문가들이 아니기에 더욱 노력하고 집중하여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소수의 의견이 존중받는 나라에 사는 사람답게 각자의 개성 넘치는 표현을 존중하기로 했다. 단일 피켓 사용을 지양하고 각자 개성에 맞는 피켓 사용 시위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재능 기부를 받아 다양한 시위를 위한 피켓을 디자인해 페이스북을 통해 배포했다. 그와 동시에 참가자 각자가 원하는 피켓 만들어 마음껏 펼쳐 보이기로 결정했다.

네덜란드의 문화와 환경, 그리고 자유를 동경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네덜란드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악의 요소는 다양한 부분에서 존재한다. 불법과 탈세, 그리고 정치 속에 기생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우울한 세력들. 네덜란드가 그래도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라 평가받은 것은 문제가 생기면 숨기기보다는 모두에게 밝혀서 문제를 극복하려는 성숙된 사회기 때문이리라.

네덜란드에선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가 공존하며 성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남의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의 광장을 빌려 자신의 나라를 비판하고 시위 집회를 하는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드물다.

시위가 있기 하루 전날, 기자는 한 지인으로 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시위 참여를 못하는 이유는 첫째, 지난 대선에 박근혜를 지지했기에 부끄러워 못 가겠다. 둘째, 네덜란드에서 한국의 치부를 드러내어 시위를 하는 모습이 우습게 비칠 것 같아 두렵다는 내용이었다.

네덜란드에 사는 몇 안 되는 동포들 역시 각자의 생각이 천양지차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네덜란드도 천국을 아니기에 모든 것을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리라.

네덜란드 역시 성숙한 시민 사회의 기저로 광장문화가 발달한 나라이다. 암스테르담 뮤지엄 광장은 네덜란드에 있는 광장 가운데 가장 큰 곳이기도 하다. 광장에 들어서면서 하나 둘 눈에 띄는 한국인들은 열 명 정도였다. 과연 몇 명이나 함께 하게 될까.

암스테르담 시청에 집회 신고서에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집회를 한다고 신청했다. 오후 2시 부터 다양한 피켓을 준비한 한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집회가 시작하는 오후 3시에는 거의 100명이 넘는 한인들이 모였고 정해진 식순을 진행하고 마지막 애국가를 함께 부른 한국인은 200여명 정도였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진행된 네덜란드 한인 주최 '박근혜 탄핵' 집회 모습.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진행된 네덜란드 한인 주최 '박근혜 탄핵' 집회 모습.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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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인 문정희씨는 "한국 사람들은 건강하고 지적인 사람들이다. 한국의 정치가들은 올바른 정책 제시는 물론 책임을 가지고 정책 실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속고 살았다. 무늬만 대통령은 필요 없다. 지금 당장 퇴진하라.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한국에서 집회가 멈출 때까지 시위에 동참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유학생인 최한별씨는 "한국의 촛불이 꺼질 때까지 해외에서 계속적인 지원을 해나갈 것이다"라며 "세대 간의 분열도, 이념의 분열도 없이 함께 믿으며 각자의 다른 생각도 큰 틀에서 아우르며 멋지게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한국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격려했다. 

회사원인 이유경씨는 "한국에서 전해지는 뉴스를 보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라며 "다행히 시국선언 준비위원회를 알게 되었고 자발적으로 지원했다. 집회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일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이어 "네덜란드 교민 숫자도 적은데 정말 놀랐다. 고국에서 나라를 바로 잡아달라는 국민들이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싶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가슴 속 깊이 늘 자랑스러웠고 뿌듯했던 내 나라를 욕되게 하지 말아 달라. 제발 그만 두기를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이 이뤄질 때가지 계속 이 모임을 도울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회사원인 디아나 위첸도르프는 "남편이 한국인이라 한국의 정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오늘 아침, 이곳 집회에 참석하기 전에 광화문을 비롯한 서울 전역에 100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는 현장을 영상을 통해 봤다"면서 "그 곳에는 단지 좌파 사람들만 모인 것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거부하고 있다. 다시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상황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을 잘못 사용했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며 "게다가 독재자의 딸인 그녀가 대통령이 된 것을 부끄러워했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나 역시 대통령에서 그녀가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루트 반 할은 "대통령이 샤머니즘에 빠져 샤먼을 주도하는 인물에게 권력을 주었다는 사실에 분노한 국민들이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네덜란드도 여왕이 자신의 자녀를 구해준 주술사에게 빠져 많은 권한과 이익을 주었던 과거가 있다"면서 "어떻게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오늘 시위 현장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참 건강한 시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한국인들의 집회는 상당히 창의적이고 밝고 건강하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원하는 바람이 이뤄졌으면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피력했다. 

50대부터 어린아이까지, 한 목소리로 외친 '박근혜 퇴진'

 11월 12일 애국가가 울린 암스테르담 광장의 모습
 11월 12일 애국가가 울린 암스테르담 광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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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광장에 처음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졌고 슬픈 조국의 운명 앞에서도 희망을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시국선언 시위가 있기 하루 전 온라인을 통해 배포된 시국선언에 서명한 한인은 총 217명이라 발표되었다.

행사를 위해 '레 미제라블'을 한국어로 개사하여 불렀고 준비위원들이 밤잠을 설치며 만든 시국 선언문은 참여한 사람들이 한 문장씩 나누어 읽었다. 그리고 각자의 생각을 발표하는 시간에는 87년의 6월 항쟁을 이야기 하는 50대, 강남에서 나고 자라서 세상은 쉽게 잘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속고 사는 줄 몰랐다고 커밍아웃한 40대, 내가 더 행복한 길을 찾기 위해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찾았지만 결국 내 조국의 고통 때문에 내가 행복할 수 없다는 푸념을 하는 30대, 그리고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더 이상 당신에게 속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으니 제발 그만 두라고 외치는 20대, 그리고 부모의 영향이겠지만 영원히 퇴근하라, 박근혜 아웃의 피켓으로 가슴을 멍하게 한 어린아이까지... 다양한 세대의 외침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뮤지엄 광장에 울렸다.

준비위에서는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언제든 해외 교포들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또 집회를 열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인과 결혼하여 정착하고 있는 한 준비위원은 "시작할 때는 꼭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주인 허락 받고 간신히 집회를 하는 기분이 들어 조심스러웠다"면서 "1차 집회를 통해 이 한 생각이 기우였으며 네덜란드 지인들에게도 현재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그들과의 정보 공유를 통한 연대를 이루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집회가 끝난 11월 13일 페이스북를 통해 시국 선언에 동참한 인원은 집회 시작 전보다 약 100명이 많은 312명으로 늘었다. 네덜란드의 박근혜 퇴진을 위한 행동 준비위원회는 대한민국 광장의 촛불이 꺼질 때까지 네덜란드의 광장을 빌려 조국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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