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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기사 수정 : 11일 오후 6시 3분]

청와대 관저 마당 왼쪽에는 뒷산으로 연결되는 작은 언덕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를 이 언덕에 만든 데크에서 지켜봤다.

"이(데크) 쉼터에 올라가면 세종문화회관까지 불빛이 보인다. 그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무어라고 소리치는지는 알 수 없다. 함성이 아련히 들릴 뿐이다. 관저 안에서는 유리가 두꺼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저 사람들이 밤마다 촛불을 들고 와서 나를 탄핵에서 구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내게 무엇을 요구할까?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촛불 시민들의 함성에 실려 왔다."(<운명이다>-노무현 자서전 240쪽)

2004년 3월 20일. 서울시청앞 플라자호텔에서 내려다본 탄핵 반대 촛불문화제 전경. 광화문-서울시의회-서울시청-덕수궁 대한문앞까지 촛불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2004년 3월 20일. 서울시청앞 플라자호텔에서 내려다본 탄핵 반대 촛불문화제 전경. 광화문-서울시의회-서울시청-덕수궁 대한문앞까지 촛불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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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8년 6월 10일 주최 측 추산 70만 명(경찰 추산 8만 명)이 모인 '광우병 사태 촛불 집회'를 청와대에서 지켜봤다.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날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이라는 노랫소리도 들려 왔습니다. 캄캄한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저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2008년 6월 18일 기자회견)

이번에는 박근혜 차례다. 노무현에 대한 촛불이 '구출'이었고, 이명박에 대한 촛불이 '질타'였다면, 박근혜 대한 촛불은 '거부와 퇴진'이라 할 만하다.

지난달 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보도 이후 현재까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대체적인 내용이 드러났다. 그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하는' 현직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최순실씨 등의 측근들과 함께 벌써 구속됐을 것이라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미국에서 트럼프의 당선으로 "모든 게 불확실해졌다는 것 하나만 확실하다"고 할 정도로 대외적인 불안정성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자에게 축전을 보내고 전화통화하는 것 이외에 다른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23년만에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이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불참한다. 정부는 "북한의 5차 핵실험 등으로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핑계라는 것은 우리 국민들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다 안다. 숨만 쉬고 있는 박근혜 정부를 대체하는 정치 리더십을 조속하게 복원해야 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 권력은 유지... 헌법에 있는 총리 권한만 주겠다는 것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과 만나기위해 국회로 들어서며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정세균 의장에게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 준다면 총리로 임명해 내각을 통할하겠다”고 밝혔다.
▲ 정진석과 악수하는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과 만나기위해 국회로 들어서며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정세균 의장에게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 준다면 총리로 임명해 내각을 통할하겠다”고 밝혔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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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그는 지난 8일 국회에 "여야 합의로 추천하는 분을 총리로 임명해서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내각 통할'의 의미도 불명확했다. 그다음 날 청와대는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권한인 내각 통할권, 각료 임명제청권, 해임건의권 모두를 앞으로 총리가 강력하게 행사하는 것을 대통령이 확실히 보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약하면, '여야 합의 총리에게 헌법에 있는 그만큼의 권한만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상 총리의 권한은 모두 대통령의 명에 좌우된다. 각료를 제청해도 거부하면 되고, 현재 상황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힘이 회복되면 총리를 바꿀 수도 있다. 최종 서명권을 가진 사람의 권한은 막강하다. 지난 4월 총선 때 새누리당 '옥새파동'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가 국민의 분노를 수용하는 시늉이라도 내려 한다면, 최소한 새누리당 탈당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들의 대응도 혼란스럽다. 주장하는 바가 제각각이다. 목표가 '박근혜 사임'인지 '거국중립내각'인지 불분명하다. 각 당마다 다르고, 같은 당 안에서도 대선 후보와 당 지도부의 의견이 다르다. '전략적 모호성'이나 '역할 분담'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질서 속에서 배치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할지, 그 이후 정부를 어떻게 할지 이제는 가르마를 타야 할 때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으로 하여금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게 하고, 야당들이 대오를 정비하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이승만 정권을 몰아낸 4.19혁명도, 전두환 정권의 항복을 받아낸 6월 항쟁도 시민이 앞장서면서 정치를 견인한 결과물이었다.

12일 '100만 촛불'이 중요한 이유다. 박근혜 청와대의 두꺼운 유리창을 뚫고 들어갈, 밝은 촛불과 높은 함성이 필요한 이유다. 청와대 관저에서는 세종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 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에 참여한 10여만명의 시민, 학생, 노동자, 농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10여만명이 외치는 "박근혜 퇴진" 지난 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에 참여한 10여만명의 시민, 학생, 노동자, 농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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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근혜, #청와대, #촛불집회, #야당,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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