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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6년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월입니다. 아이들은 더디 크는 것 같은데 제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연말 송년회를 잡자는 연락이 하나 둘씩 도착하고 있습니다. 보통 12월에 하던 송년회가 회사 일 등과 겹쳐서 약속 잡기 어려워지자,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포함된 개인적인 모임들은 11월로 당겨지는 분위기가 몇 년 전부터 감지되었습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일 같이 공적인 관계나 매일 부딪치는 가족에서 한 발짝 물러나 속내를 이야기하며 맥주 한잔 기울이고 싶은 때가 생기게 마련인데요. 꼭 송년회가 아니라도 삼삼오오 모여 오늘은 맥주 한 잔 어떠냐며 번개 제안을 하는 동료들에게 워킹맘은 그렇게 인기 있는 친구가 못됩니다. 늘 바쁜 일상을 쪼개야 하니까 회사가 끝나자마자 눈썹이 휘날리게 집으로 가기 바쁘기 때문입니다.
 
결혼 전에는 무지개라는 이름으로 매월 혹은 분기별로 모임을 하던 고등학교 친구들, 열 명의 구성원 모두가 서로 다른 달에 태어나 매월 생일 축하 모임을 하던 대학교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모임의 모습이 바뀌었어요.

오래된 친구들이 나이가 들고 각자의 사는 모습이 달라지면서 '싱글+노키즈+전업주부+워킹맘' 이런 식으로 섞인 거죠. 일을 하고 있지만 가장 큰 관심사는 육아인 워킹맘은 서로 처해진 상황이 너무 다르니 관심사도 달라지고, 가끔은 대화가 겉돌아 서로 말 실수를 하지 않을까 조심하게 되네요.

친구와 맥주 한 잔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기, 워킹맘에겐 왜 어려울까요?
 친구와 맥주 한 잔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기, 워킹맘에겐 왜 어려울까요?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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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부터 관계가 지속되던 가장 친한 친구는 싱글인 데다, 최근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멀리 이사를 가서 그나마 하던 연락이 더 뜸해졌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는 친구가 있는 모임은 그 친구가 한국에 들어오는 때가 모두 모이는 날짜가 되기도 합니다.
또 원래의 저로 인해 만든 그룹이 아닌 아이로 인해 만들어진 동네 커뮤니티는 '전업+워킹'의 구도로 나뉘고 아이의 학업 성취도에 따라 대화의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그런데 남편의 친구 모임에 대해 물어보니 만나면 아이들 얘기를 거의 안 한다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아이들 이야기를 안 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얘기하다 보면 그렇게 된대요. 남편의 경우 개인 사업을 하든 회사를 다니든 일하지 않는 친구가 없어서 친구들의 구성이 '노키즈+워킹'으로 무척 단촐 했습니다. 특이하게도 저에게는 40대인데 미혼인 여자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 반면 남편은 미혼인 남자친구가 하나도 없기도 하네요.

어쨌든 여유 시간을 맞추고 대화 내용을 조절하다 보니 가장 편한 친구가 직장 동료 혹은 남편 밖에 안 남더라고요. 결국 지금 제 옆에 있고, 매일 얼굴 보는 사람이 편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철없이 어린 시절에는 공과 사를 구분한다며 회사에서는 친구를 사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오래된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니, 자연스레 가까이 있는 사람들 중에 친구를 찾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직장에서도 마음에 맞는 동료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배운 것은 무척 큰 소득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막상 맘에 맞는 동료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어린 자녀가 있어 퇴근을 서두르는 제게 맥주 한 잔 하고 가자며 붙잡는 이는 흔치 않습니다. 또 같은 워킹맘인 동료들끼리는 매일 늦게 퇴근하고, 야근하는 중에 수화기 넘어 '엄마'를 찾는 모습을 늘 안쓰럽게 바라보는 터라 퇴근 후까지 약속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점심시간을 쪼개 서로의 처지를 공감해주고 위로하는 것이 전부죠. 가끔은 퇴근하고 혹은 주말에 누군가를 편하게 만나서 맥주 한 잔 하며 아이들 이야기를 뺀 세상사를 주고받고 싶은데 참 어려운 현실입니다.   

사람이란 사회적 동물인지라 저도 어떻게든 회식에 참여하거나, 동네 엄마 커뮤니티에 껴보려고 애써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리해서 참석한 자리의 대화는 직장 동료간의 권력 다툼, 상사의 뒷담화거나 자식 자랑, 특정 엄마 혹은 아이의 비하에 그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때보다 더 많더군요. 모임의 참여가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 아닌 소모시키는 경우가 되었을 때의 허무함을 몇 번인가 경험해본 뒤로는 굳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애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지만 그래도 외로운 마음을 어쩔수 없을 때 인터넷 맘 카페, 블로그 등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살고 있는 모습, 현재의 고민을 공유하며 위로를 받곤하죠.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제가 필요할 때마다 접속하고 바쁠 땐 (때로) 매정하지만 쉽게 단절이 가능한 곳이니까요.
 
한참 아이를 키우고 회사에서 허리 역할을 하며 일하는 때에 친구들과 속내를 나누며 맥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걸 꿈꾸는 것은 사치일까요? 언제 어른이 되냐며 미래를 동경하던 시절이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대화의 주제가 '나로 시작해서 우리'의 이야기로 끝나던 시절이 조금은 그립기도 하네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워킹맘, #회식,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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