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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10월 28일이 첫 기일이었지만 합의하에 재판기일을 11월 11일로 변경한 바 있다.
▲ 공판변경 당초 10월 28일이 첫 기일이었지만 합의하에 재판기일을 11월 11일로 변경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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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 혹은 빼빼로데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제 생애 첫 재판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재판 기일을 앞두고 검은 정장을 한 벌 샀습니다. 아직은 20대라 장례식장 갈 일도 적어 정장은 굳이 필요 없었습니다. 짙은 청색 정장이나 다른 옷도 있지만, 공익의 대변자인 검찰이 본래 목적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이 시국에 조의라도 표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내가 정말 재판을 받는구나' 실감한 건 기소되고 며칠이 지나서였습니다. 병무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난 9월에 지원한 카투사 추첨 자격이 박탈되었답니다.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본청에 연락해봤더니 모집 업무 규정에 따라 선발 10일 전까지 재판이 끝나야 지원 가능하답니다. 홈페이지에 안내라도 있었다면 혼선이 없었을 텐데... 계획했던 군 복무 일정이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재판이 이제 시작된 걸 감안하면 지원병으로 가는 길도 막힌 듯합니다. 8월에 출석 요구서를 받고 학사 장교 지원도 포기했는데, 군에 지원할 수 없다니. 아직도 기분이 묘합니다. 재판 중에 현역으로 입대하면 관할권이 넘어가 군사재판을 받을 테니, 잘 마무리하고 오라는 배려라면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지원과 의무 부과는 별개라 랜덤으로 입영 영장이 나오면 입대를 해야 한다는군요. 기어코 저를 군사법원에 세우고 싶은 걸까요? 법관도 아닌 일반 장교가 재판장을 맡는, 사실상 '인치'가 판치는 현장에 말입니다.

재판 때문에 입대 계획까지 망쳤지만... 부끄럽지 않습니다

지난 10월 중순, 검찰의 기소 이후 재판관련 서류가 집으로 송달되었다. 공소장과 국민참여재판신청서, 피고인 의견서 양식 등이 담겨있었다.
▲ 서류봉투 지난 10월 중순, 검찰의 기소 이후 재판관련 서류가 집으로 송달되었다. 공소장과 국민참여재판신청서, 피고인 의견서 양식 등이 담겨있었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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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법을 공부하며 한때 검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가슴을 가진 법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공익은 뒷전이고 인사권자만 바라보는 직장인들, 출세욕에 눈이 먼 정치꾼들이 종종 보였습니다. 이들은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자신의 권한을 남용했습니다.

준사법기관으로서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해야 할 잣대는 신장개업 홍보 인형처럼 춤췄습니다.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여권 실세들에게는 한없이 인자했습니다. '여당 공천 개입 파문'의 주인공 최경환·윤상현 의원 등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까불면 안 된다니까", "이거 너무 심한 겁박을 하는 거 아니냐" 같이 녹취록을 통한 구체적 증거가 있어도 답은 이미 무혐의로 정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와 정반대로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단체와 야당, 심지어 시민들이 보낸 글을 편집했을 뿐인 오마이뉴스 편집기자에게는 과하고 엄격하게 법을 적용했습니다.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라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준 취지가 무색해졌습니다. 사실 권력자가 "물라면 무는" 검찰의 행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권력자의 충견으로 활약한 '흑역사'가 어마어마합니다. 안기부를 상전으로 모셨던 과거로 돌아가고픈 걸까요?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를 이틀 앞두고 시민단체 활동가 22명을 굴비 묶듯 엮어 재판에 넘겼습니다. 저도 그 '공동정범'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공소장은 총 58쪽이었는데 기소된 22명의 인적 사항을 12페이지에 걸쳐 나열했고, 나머지 46쪽 분량에는 검사의 주장이 담겨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공직선거법을 위반하며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는 겁니다. 마이크와 앰프를 이용해 기자회견을 빙자한 낙선 목적의 불법 집회를 벌였으며, 피켓과 현수막, 낙선증 등을 '게시'했고 발언 등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겁니다.

선거라는 축제의 주인공인 유권자들이 자신의 뜻을 전달한 게 무거운 처벌을 받을 일인가요? 비선 실세로 다양한 이권을 챙기며 나라를 쥐락펴락 한 분은 고작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사건을 축소해 주는 판국에, 총선넷 활동가들은 꼬투리 하나라도 일단 물고 늘어지겠다는 검찰의 이중 잣대를 보니 제가 이러려고 활동가 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선관위는 안내 공문을 통해 기자회견 형식의 반대후보 발표가 가능하다고 밝혔고, 총선넷은 이에 따라 낙선운동 기자회견을 했을 뿐입니다. 유사 시민단체들도(관변단체) 맹활약했지만, 유독 총선넷만 표적 수사에 무더기 기소까지 당했습니다.

월드피스자유연합과 4대개혁추진국민운동본부는 28명의 야당 후보를 대상으로 '확성장치'를 사용해 수차례 옥외기자회견을 했고, 시민유권자운동본부는 특정후보자의 유세장에 찾아가 '현수막'을 사용하며 수차례 '좋은 후보 인증패수여식'을 진행했지만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검찰의 공소장을 패러디하자면 내년 대선에서 여권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으로 시민단체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표적수사를 한 것 아닌가요.

'표적수사' 검찰, 시민을 이길 순 없습니다

총선넷 활동가들의 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검사의 주장을 나열하고 있다
▲ 공소장 내용1 총선넷 활동가들의 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검사의 주장을 나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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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넷 활동가들의 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검사의 주장을 나열하고 있다
▲ 공소장 내용2 총선넷 활동가들의 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검사의 주장을 나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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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생각납니다. '잡아 늘이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괴물은 두 종류의 침대를 준비해, 작은이는 큰 침대에 눕혀 늘려서 죽이고, 큰 손님은 작은 침대에 눕혀 튀어나오는 부분을 잘라 죽였다고 합니다. 헌법상 보장된 시민의 권리가 하위 법령들에 의해 지나치게 억압받는 현실을 보니, 우리 사회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위에 눕혀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헌법상 근로3권은 노동법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도로교통법과 집시법에 억눌리고,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와 참정권은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선거법 때문에 질식할 지경입니다. 국회를 '청와대 출장소' 정도로 여기던 현 정권이 들어서자 법이 헌법을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시행령이 헌법 위에 올라간 것 같습니다. 지금 개헌이 중요합니까? 시행령 독재를 바로잡고, 6공화국의 헌법 정신에 맞게 악법들 먼저 정상화하는 게 맞는 거 아닙니까?

우리의 싸움은 단순히 재판으로 끝나지 않고, 6공화국의 헌법 정신을 억압하는 악법들의 개정으로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헌법정신을 반대하는 권력은 유한하고 결코 시민을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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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넷 활동이 '불법'? 경찰서 다녀왔습니다


태그:#총선시민네트워크, #첫공판기일, #11월11일, #표적수사, #박근혜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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