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셋, 이제야 한창 꽃이 필 나이지만 연기적으로 이다윗은 이미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절반 이상을 배우로 지냈다. 그럼에도 '아역 배우 출신'이란 수식어를 그에게 붙이기는 조금 낯설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인 그의 연기의 폭이 넓어서이기 때문일까. 드라마에선 누군가의 아역을 여러 번 맡았지만 영화에선 그 자체로 단독자의 모습을 보인 그다.

저예산 독립영화 혹은 단막극에 꾸준히 출연한 비결이 아닐까 한다. 초능력자 소년이었던 <마이티 맨>(2005), <물결이 일다>(2004) 등에서 앳되지만 나름 진지한 이다윗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9일 개봉할 <스플릿>은 그간 이다윗의 행보와 또 다른 궤적이다. 도박 볼링을 소재로 한 코미디물이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지만 볼링 천재인 청년 영훈은 이다윗이 그간 영화에서 보인 진지한 모습과 다른 내면의 소유자였다. 남들에게 천대받고 학대받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캐릭터다. 상대의 어설픈 술수를 알면서도 애써 드러내지 않는 능청스러움 또한 있다.

캐릭터의 힘

 영화<스플릿>에서 영훈 역의 배우 이다윗이 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스플릿>에서 영훈 역의 배우 이다윗을 만났다. 앳된 모습을 어느새 벗고 성인 연기자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 이정민


자칫 영화 속 갈등을 위한 재료로 쓰일 법했을 캐릭터를 이다윗은 꽤 입체적으로 살렸다. "상당한 부담을 느껴서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가도 도전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여 생각을 바꿨다"고 대뜸 그가 말했다. 지적 장애 청년 연기야 그간 <말아톤>의 조승우도 있었고, <맨발의 기봉이> 속 신현준 등도 있다. 그만큼 부담을 느낄 여지가 컸다.

"영훈이라는 인물 자체가 다 마음에 걸렸어요. 행동과 대사, 지문 하나하나 전부요. 3개월 정도 준비하면서 영훈의 행동을 몸에 익히기 위해 친구들 만날 때도 영훈이처럼 하려고 했죠.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서요. 원래 작품을 준비할 때 그렇게 까진 안 하거든요. 오랜 친구가 집에 놀러왔는데 화장실에서 저도 모르게 대사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네가 지금 쫄리긴 쫄리는구나!' 이러더라고요.

전 연기하기 위해 지적 장애를 공부했는데 준비하면서 제 스스로 지적장애인 분들에 대한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우리나라 현실도 알게 됐고요. <스플릿>이 경쾌한 분위기지만 영훈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거의 없잖아요. 다 등쳐먹으려고 하고…. 그걸 알기에 촬영장에서 (상대 역인) 유지태 선배와 눈이 마주칠 때 울컥한 적도 많아요. 상대가 자신을 이용하려는 걸 알지만 영훈은 표현하지 않아요. 그 마음을 느끼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영화 <스플릿>의 한 장면.

영화 <스플릿>에서 영훈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거칠게 반응하는 정신지체 청년이다. 주위가 산만하지만 볼링 하나만큼은 천재적이다. ⓒ 오퍼스픽쳐스


그만큼 캐릭터에 가까이 다가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직 국가대표였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다리를 절며 도박볼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철종(유지태 분)과 그에게 일거리를 던져 주는 브로커 희진(이정현 분) 모두 우리 사회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캐릭터였다. 이다윗은 이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상상하며 접근해 갔고,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단 한 번의 방황... 지금은?

 영화<스플릿>에서 영훈 역의 배우 이다윗이 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아역 배우부터 경험한 이들이 성장하며 겪는 성장통이 있다. 자신의 진짜 꿈, 정체성에 대한 문제인데 많은 이들이 여기서 혼란스러워 하다가 종종 주춤하곤 한다. 그런데 이다윗은 오히려 그 부분에선 자유로워 보였다. 애초 연기를 시작한 것도 예쁜 아이 선발대회에 나간 여동생을 따라갔다가 우연히 관계자 눈에 들면서 부터다. 그 전까지 그는 장래희망에 경찰관과 소방관을 번갈아 적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남자 아이 단역이 필요하다고 해서 2주간 대사 연습하고 나가서 한 마디 했는데 제 부분만 편집됐더라고요(웃음). 가족들이 비디오 녹화하려고 했는데 테이프만 날려먹었죠. 그리고 이후 연락이 왔어요. 이번엔 편집 안 될 테니 또 오라고. 그게 반복되면서 연기를 이어갔어요. 그러다가 한 번 제대로 슬럼프가 온 게 이창동 감독님의 <시>였어요. 여태까진 재밌게 즐거워서 했다면 연기가 참 힘든 거란 걸 알게 된 거죠. 촬영장 가기 3일 전부터 긴장이 되더라고요. 겁나서.

그때까지 해온 게 제대로 된 연기가 아니었다면 앞으론 영영 연기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시>를 찍으면서 중간에 고민하고 생각하는 걸 멈췄다면 정말 그 작품을 끝으로 연기를 그만뒀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죠. 감독님은 현장에서 끝까지 배우가 생각하도록 이끄세요. 그러다 집 안에서 찍는 장면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너 왜 그랬어!' 야단치는 장면에서 제가 고민하다가 어떤 행동을 했는데 그날 처음으로 감독님에게 칭찬을 들었어요. '아, 이게 연기인가?' 싶었는데 촬영이 끝나더라고요. 그게 마지막 촬영이었거든요."

윤정희 선생과 함께 했던 <시>에서의 경험을 전하며 이다윗은 진짜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한계를 깨는 느낌을 그 이후로 궁금해 하다가 지금까지 이러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정답을 찾은 건 아니다. 다만 "너무 고민에 빠져있다가 이도저도 안 될 거 같아 지금은 내려놓은 상태"라며 이다윗은 "고민하면서 느낀 점이 있으니 끝까지 연기하는 동안 풀어가 보고 싶다"고 의지를 보였다.

인간 이다윗 찾기

 영화<스플릿>에서 영훈 역의 배우 이다윗이 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왜 연기하는지 인터뷰 말미에 물었다. 고민을 거듭하다 그가 내뱉은 말은 "정말 재밌어서"다.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며 "그런 질문에 답할 때마다 그래서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말 연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 이정민


기자 입장에선 이다윗의 진가를 엿 본 작품으로 <시>를 꼽곤 했는데 그에겐 일대의 위기였다니 묘했다. 그만큼 치열했다는 증거다. 당시 4차 오디션까지 보며 이다윗은 "연기 배운 적이 없는 일반인을 쓴다고 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친구들과 방학숙제 하러 가는 도중 전화를 받았다"며 오디션 합격의 순간을 전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고민의 시간을 겪은 것이다.

당시 이다윗의 대본엔 단 두 마디가 적혀있었다. "지금까지 안 버리고 가지고 있다"며 그가 그 문장을 복기했다. '1. 자연스럽게', '2, 힘 빼고'. 이창동 감독이 이다윗에게 주문한 모든 것이었다.

고민과 내려놓음, 그리고 또 다시 고민하는 과정 안에 그가 있었다. 누가 보면 지난해 보이지만 스스로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며 그 에너지를 승화시키고 있었다. 대학 학과를 연기과가 아닌 연출과로 택한 것도 그 일환이고, 친구들과 힙합 음악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그것의 연속이다. 남에게 공개할 수 없는 그들만의 자작곡이 몇 개 있다는 사실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상황이 지금 안 되긴 하지만 단편영화도 기회가 되면 찍어보고 싶어요. 음, 글은 제가 좀 못 쓰는 거 같고요. 그건 알겠어요(웃음). 별다른 고민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 고민인데 제가 연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직업적인 면이 있잖아요. 작년부터 작품을 많이 했는데 그 시간을 빼니 인간 이다윗이 한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뭔가 시간을 너무 허비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제 20대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요! 내년엔 듬성듬성 시간이 나더라도 인간 이다윗으로 뭔가를 하려고요!"

이럴 때면 영락없는 또래의 밝은 청년 같다. 호기심 많은 이 이십대 초반의 청년은 그렇게 치열하게 자신과 세상을 주시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이다윗, 충무로의 라이징 스타 영화<스플릿>에서 영훈 역의 배우 이다윗이 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배우로서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또래의 청년마냥 밝게 살고 있다. 그 조화가, 그를 더 큰 배우로 만들 것이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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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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