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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만의 시민이 한국의 심장부에 모여 '대통령 하야' 목소리를 높인 이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지 검찰만 모르고 있다.
지난 6일 밤 우병우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이 가족 회사의 재산을 횡령한 것과 아들의 의무경찰 보직 특혜 의혹에 대해 조사받았다. 조사 상황에 대해 검찰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마치 공손한 자세로 있었다는 취지로 사진설명이 돼 있었는데, 사진 한 장에 나타난 제스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다. (중략) 사진 한 장으로 당시 수사 분위기가 완전히 단정지어지는, 그래서 비난받는 상황이 답답한 면이 있다."

특별대우가 아니라고?

11월 7일 <조선일보> 1면에 보도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11월 7일 <조선일보> 1면에 보도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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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 관계자가 7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한 얘기는 이날자 <조선일보> 1면에 나온 특종사진에 대한 해명이었다. 이를 종합하면, 사진이 촬영된 시점은 조사를 중지하고 쉬는 시간이 있은 뒤 수사 주임검사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 전 수석과 변호인이 먼저 조사실로 들어왔다. 이 때 변호인이 검사와 수사관을 향해 '고생많다'는 식으로 덕담을 했고, 이에 담소를 나누듯 대화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엄중한 상황이라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수사에 임했고, (우 전 수석이) 저녁식사도 못한 상태에서 계속 수사를 하던 중 주임검사인 김(석우) 부장검사가 수사팀장(윤갑근 대구고검장) 보고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언론에 보도된 사진이 촬영됐다."

'저녁식사까지 걸렀다'는 얘길 굳이 한 것은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했다는 얘길 하고 싶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잠시 뒤 '우 전 수석이 저녁식사를 아예 안 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특별수사팀 관계자는 "저녁식사를 안 한 걸로 안다. (우 전 수석이) 먹겠다는 의사표시를 안 했다"고 답했다.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로 인해 밥을 못 먹은 게 아니라 우 전 수석 자신이 먹기 싫어서 안 먹은 것이다.

이 관계자는 우 전 수석에 대한 특별대우는 없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는지 아래와 같은 말도 했다.

"(윤갑근 팀장과 면담하며) 차 마신 것 갖고도 '황제수사'라고들 하셨던데, 이석수 특감 때도 똑같은 절차를 거쳤다."

우 전 수석에 대한 감찰 내용을 누설한 혐의로 고발된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을 소환조사 할 때도 특별수사팀장이 차를 마시며 면담을 했으니 우 전 수석만 특별대우 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차관급 정도 됐던 양반들은 차를 마시는 경우가 상당히 있었던 걸로 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시민들은 검찰청사에 발만 들여놔도 움츠러드는데

직권남용과 횡령 등 각종 비위 의혹이 제기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 11월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가족회사 정강의 자금 유용 여부를 묻는 기자를 쏘아보고 있다.
▲ 쏘아보는 우병우 직권남용과 횡령 등 각종 비위 의혹이 제기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 11월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가족회사 정강의 자금 유용 여부를 묻는 기자를 쏘아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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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에 특별대우한 게 아니다'란 설명을 하다가 '검사장과 차 한잔 할 수 있는 자격기준'이 노출된 셈이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조사는 '차관급 이상'이라는 기준에 맞춰 진행된 것이다.

권력도 없고 재력도 없는 일반 시민들은 검찰청사에 들어서서 검사장은커녕 부장검사, 부부장검사, 그도 아닌 평검사와 차 한잔하기도 힘들다. 차 한 잔은커녕 죄를 추궁하는 검사와 수사관의 위세에 눌려 해야 할 말도 다 못하고, 검찰청사에 발을 들여놓는 것만으로 괜시리 몸이 움츠러들게 된다.

하지만 범죄 피의자라도 차관급 이상 되면,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수사를 지휘하는 책임자와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길 나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로선 감히 상상하기 힘든 '딴세상의 일'이다.

사실, 차를 마신다고 해서 처벌을 받을 사람이 '혐의 없음'이 되고, 차를 안 마신다고 '혐의 없음'을 기소하고 그럴 정도는 아니다. 검사가 피의자와 차 한 잔 마시는 게 법으로 금지돼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병우 정도 되면 수사 책임자와 차 한 잔 할 수 있다'는, '딴세상의 일'을 예로 든 검찰의 해명이 시민들에게 납득될 리 없다.

우 전 수석은 개인 비리혐의 말고도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눈감아준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을 틀어쥐고 최씨 일가와 친박세력에 대한 수사를 무력화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우 전 수석에 대한 조사는 최씨에 대한 조사 못지 않은 관심 대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검사장과 차 한 잔 한 게 대수냐'는 식으로 대응했다. 20만의 시민이 한국의 심장부에 모여 '대통령 하야' 목소리를 높인 이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지 검찰만 모르고 있다.


태그:#우병우, #최순실, #검찰, #검사장, #황제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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