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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 김 사장님 안녕하세요? 지난 토요일 가게를 맡겨두고 서울 시내를 행진하고 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시민들 20만 명과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 퇴진을 목청껏 외치셨다지요. 최순실 때문에 화병이 나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스트레스가 좀 풀리셨다고요?

비정규직 단체에서 활동하는 저도 김 사장님처럼 10년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혁명정부 수립하자"는 고등학생들의 시위 대열부터 김 사장님처럼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 박근혜 정권 때문에 오랜만에 '국민 통합'이 이루어졌습니다. 광화문 광장은 모처럼 기쁨 넘치는 해방구가 되었습니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 결과 박근혜 지지율 5%(11월 첫째주 정례여론조사)였는데, 김 사장님 같은 4050의 지지율도 3%라는 조사는 꽤 놀라웠습니다. 콘크리트 지지율을 떠받치던 중장년들도 이제 박근혜를 탄핵한다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 지지했던 자영업자들

노동시장을 개혁하면 청년 일자리가 해결된다는 고용노동부의 공익광고.
 노동시장을 개혁하면 청년 일자리가 해결된다는 고용노동부의 공익광고.
ⓒ 고용노동부 TV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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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사장님, 달력을 되돌려봅니다. 박근혜 정부가 결사적으로 추진한 노동개혁을 기억하십니까? 새누리당이 "노동개혁, 우리 딸아들 좋은 일자리"라는 빨간 현수막을 전철역마다, 시골 터미널마다 내걸었던 걸 기억하시지요?

올 2월 박근혜 정부 지지율은 30% 안팎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가 추진하는 소위 '노동개혁'에 대한 지지도는 더 높았습니다. MBC 여론조사 결과 노동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의견이 46.1%,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47.1%로 팽팽했습니다.

김 사장님과 같은 자영업자들은 어땠을까요? <경향신문>과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 결과 이해당사자가 아닌 자영업 종사자는 43.7%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추진하는 노동개혁'이라고 답변했고, '노동환경을 악화시키는 개악'이라는 응답은 27.9%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표 노동개혁은 △ 해고를 쉽게 하고 △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며 △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연장하고 △ 파견을 확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민 세금을 쏟아 부어 '노동개혁'이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전국을 도배했습니다. 동시에 '귀족노조' 때문에 청년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고 화살을 노동조합에 돌렸지요. 물론 국민세금으로요.

당시 비정규직 단체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를 구성해 '노동개악을 중단하라'고 싸웠습니다.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달라고 했지, 비정규직 연장해달라고 했냐"며 항의했습니다.

네이버나 다음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젊은이들의 분노로 뒤덮였습니다. 박근혜 노동개혁은 우리 청년 평생 비정규직 만든다는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양대노총도 이를 반대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는 대규모 시위를 했고,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지만 박근혜씨는 60대 이상 노년층과 자영업자의 '콘크리트' 지지를 받으며 '노동개혁'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김사장님, 최근 언론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을 보셨지요?

2015년 7월 24일 박근혜씨는 대기업 총수 17명과 오찬을 했고, '박근혜-최순실 재단'(미르, K스포츠재단) 설립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틀 동안 삼성 이재용, 현대차 정몽구, 롯데 신동빈 등 재벌총수 7명과 독대를 했습니다. 그날부터 어버이연합 배후 의혹으로 명성을 날린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과 안종범 정책수석이 만나 '뒷일'을 처리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단 간담회'에서 대기업 총수 17명을 불러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검찰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수사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행사 당일과 이튿날 7명의 대기업 총수들을 따로 만나 미르·K스포츠 출연을 주문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당일 행사 모습.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단 간담회'에서 대기업 총수 17명을 불러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검찰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수사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행사 당일과 이튿날 7명의 대기업 총수들을 따로 만나 미르·K스포츠 출연을 주문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당일 행사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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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전경련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2014년 7월, 전경련은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2014 규제개혁 종합건의'를 접수합니다. △ 기간제 사용기간 규제 완화 △ 파견업종 및 기간 규제 완화 △ 업무성과 부진자에 대한 해고 요건 완화 △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 등 8가지 핵심 건의사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안종범 수석이 전경련의 규제 완화 요구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았다고 보도된 바 있습니다.

2014년 전경련의 '노동개혁' 건의

박근혜씨와 7대 재벌 회장의 비밀회동이 있은 지 정확히 두 달 뒤인 9월 16일 정부와 새누리당은 '노동개혁 5법'을 전격 발의합니다. 한국노총의 팔을 비틀어 조인한 '노사정 합의'에도 들어있지 않은 △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 고령자·고소득 전문직·뿌리산업 파견 전면 허용 △ 사내하청을 합법화해주는 파견도급 구분기준 조항 △ 실업급여 지급요건 강화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최근 <한겨레>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로부터 한 달 후 박근혜씨는 안종범에게 재단의 출연금 규모를 600억에서 1000억 원으로 늘리고, 기업들도 10대 그룹에서 30대 그룹으로 넓히라고 지시했습니다. 10월 26일 재벌들은 미르재단에 입금을 완료했습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인 10월 27일 박근혜씨는 국회에서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면서 첫째 경제 활성화법 처리(서비스 산업 발전 기본법, 관광진흥법, 의료법, 국제 의료 지원법), 둘째 5대 노동 개혁법, 셋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FTA 비준을 촉구했습니다.

미르재단에 입금을 완료한 대기업들은 2015년 12월 24일부터 올해 1월 12일까지 K스포츠재단에 뭉칫돈을 입금합니다. 입금이 완료된 다음날인 1월 13일 박근혜씨는 대국회 담화문을 통해 △ 노동개혁법 처리 △ 경제 활성화를 위한 서비스발전법 및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 특별법) 처리를 요구합니다.

야당의 반대로 노동개혁법에 대한 입법이 어려워지자, 박근혜씨는 정면 돌파를 시도합니다. 1월 13일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이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국민운동추진본부'를 결성하자, 1월 18일 박근혜씨는 예정에 없이 판교역 행사장을 찾아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영접을 받으며 서명지에 사인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1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판교역 광장에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서명운동본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는 서명을 하고 나서 박용후 성남상공회의소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1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판교역 광장에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서명운동본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는 서명을 하고 나서 박용후 성남상공회의소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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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무위원들이 서명운동에 나섰습니다. 1월 22일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쉬운 해고, 취업규칙 변경 완화 등 2대 지침을 전격 발표합니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국민의당과 함께 경제 활성화를 위한 서비스발전법 및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 특별법)을 통과시킵니다.

이재용, 정몽구 등 재벌 회장들이 박근혜-최순실 재단에 거액을 갖다 바친 직후, 재벌들의 요구사항이 하나씩 관철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액 갖다 바치자 원샷법, 쉬운 해고 통과

삼성은 정부로부터 노조 문제 협력과 연구비 등 지원을 약속받은 대가로 최순실에게 28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방송 보도가 나왔습니다. 삼성은 이미 35억을 줬고, 매달 10억 원을 독일로 보냈다는, 최씨가 설립한 독일회사에서 근무한 전직 직원의 증언입니다.

재벌들이 박근혜-최순실 재단에 건넨 돈은 누구 돈입니까? 국민들이 대기업 물건을 구입해 남은 이익이고, 그 기업 노동자들이 땀 흘려 일한 돈입니다. 박근혜씨가 재벌들을 위해 쓴 정부 예산은 바로 김 사장님과 서민들이 낸 세금입니다.

아마 이 사건이 폭로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박근혜씨는 공공의료나 철도를 비롯한 공공기관을 민영화해 재벌 3~4세 손자들에게 갖다 주지 않았을까요? 동네슈퍼, 빵집, 커피숍에 이어 미용실, 분식점 같은 동네 골목상권도 모두 재벌들에게 넘겨주지 않았을까요?

정부는 '노동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해고를 더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더 많이 쓰게 했을 겁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경제활동인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나라입니다.

김사장님, 대한민국에는 치킨집이 3만6천 개라고 합니다. 맥도날드보다 많아 '월급쟁이들의 무덤'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박근혜 노동개혁'이 통과됐다면 정리 해고된 노동자들이 퇴직금을 받고 치킨집이나 편의점을 차렸을 겁니다. 지금도 3년이 지나면 절반이 망한다는 치킨집, 노동개혁이 통과되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왜 박근혜가 "우리 딸아들 좋은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자영업자와 장년, 노년층에게 '노동개혁'을 간절히 원했는지 이해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김 사장님, 아직도 새누리당 지지율이 20%나 된다고 합니다. 김 사장님은 아직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계신가요?

저는 이번 주말에 광화문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을 목이 터져라 외치려고 합니다. 하나 더, 박근혜에게 뇌물을 갖다 바친 이재용, 정몽구를 뇌물죄와 횡령죄로 구속하라고 요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통과시킨 나쁜 정책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라고, 청와대가 조선일보를 지칭한 바로 그 '부패기득권 세력'들의 나라를 노동자 서민들의 나라로 만들자고 외치려고 합니다.

김사장님, 함께해 주실 거죠?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입니다. 이 글은 법무법인 여는(민주노총 법률원)이 낸 '박근혜-재벌 간 노동개악 일지'를 참고했습니다.



태그:#비정규직, #박근혜, #대기업, #노동개혁, #원샷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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