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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 기사 한눈에

  • 선거연령 하향과 같은 현실적 과제도 과제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대목은 역시 10대들과 학생들의 여론 그 자체일 것이다.
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중고생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분노한 중고생 "박근혜 퇴진" 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중고생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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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중학생 (이 집회에) 나온 걸 보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만들어 놨는데, 왜 젊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나와서... 늙은 사람들은 하나도 한 게 없는데."

"할머니"를 연호하는 함성이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졌다. "최고다, 최고"라는 감탄사가 이어졌다.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를 점령한 20만 '박근혜 퇴진' 인파가 하나둘 도로를 떠나던 오후 10시께, 서울 송파구에서 왔다는 이른바 '송파 할머니'가 시민 자유발언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늙은이들이 박근혜를 세웠다"며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이 할머니의 카랑카랑하고 날 선 발언에 그 "젊은 사람들"과 중고등학생들은 격하게 호응했다.  

이에 앞서, 시민들이 빠져나가던 오후 9시 30분께, 교복을 입고 친구 둘과 광장에 나온 한 여학생은 큼직한 검은 봉투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떨어진 단풍잎을 제외하고, 쓰레기를 주워 담은 그 여학생이 든 봉투는 이내 가득 찼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도로 위를 부지런히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그 여학생의 뒷모습에 자연스레 '시민의식'과 '민주주의'란 단어가 아른거렸다.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

이날 을지로와 종로를 잇는 집회 참가들의 행진 와중에, '중고생 혁명지도부'란 명의로 플래카드를 내건 학생들이 외친 구호다. '혁명정권이라니... 그 패기와 결기도 가상하지만, 직접 플래카드까지 만들고 함께 할 친구들을 조직하고 결국 광장에 서기까지, 이 학생들은 얼마나 상처받고 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까.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

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중고생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분노한 중고생 "박근혜 퇴진" 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중고생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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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남녀노소 20만의 성난 시민들이 박근혜 정권에 분노를 표출한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 여타 대규모 집회와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이들 중고등 학생들의 존재감이었다. 집회에서 쉬이 볼 수 없는, 삼삼오오 짝을 지은 할머니들을 포함한 노인층도, 갓난아기까지 대동한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그러했다.

하지만 교복에 패딩까지 챙겨 입고,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피켓을 들고, 광화문 주변을 활보하는 이들 중고생이야말로 이날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었다. 박근혜도, 최순실도 싫다며 "내가 대통령을 해도 더 잘하겠다"고 외치지만, "최순실중심제"를 대놓고 비꼬지만, 또 하나 온갖 특혜의혹의 중심에서 이화여대와 체육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또래 정유라에 대한 심리적 박탈감이 큰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분노의 목소리는 이날 오후 고 백남기 농민의 영결식이 열리기 전, 광화문광장 옆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따로 열린 중고생들의 시국선언과 항의집회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행동 Vol. 2'  국반청2)와 중고생연대 등이 주도한 항의집회에는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는 어디 갔습니까'와 같은 손 팻말이나 '근혜사 교과서'와 같은 선전물이 등장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밀어붙인 국정교과서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학생들의 생생한 의견과 목소리가 전달됐던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 같은 또래의 친구들을 잃은 트라우마를 겪은 세대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이들은 함께 모여 세월호 추모 게시물 앞에서 '셀카'를 찍고, 팻말을 들고, 자유발언대에서 목소리를 이어갔다. 생애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했다는 고백(?)들이 이어지는 와중에 이들을 광장으로 이끈 일등 공신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점은 아이러니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문제는 그 어른들이다. '송파할머니'의 표현처럼, 박근혜를 세운 노인들과 기성세대인 어른들이 우리의 학생들을 거리로 내몬 꼴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어른들이 더 문제다. 아니, 너무 많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여고생을 때렸다는 혐의로 체포된 보수성향 단체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가 대표적이다.

이런 어른들이라서, 미안하다

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중고생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분노한 중고생 "박근혜 퇴진" 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중고생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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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부대에서 활동하는 어떤 분이 저희를 포함한 한 마디 하시는 사람들의 사진을 먼저 찍기 시작했고, 제가 그걸 보고 따라 찍었습니다. 그걸 보고 주옥순이 저한테 와서 "어머니 아버지 안 계시니?"라고 물었고, OO가 그걸 보고 화가 나서 '박근혜 힘내라'라고 쓰여 있는 종이를 뺏자 주옥순이 OO 오른쪽 뺨을 때린 겁니다. 지금 네이버에 뜨는 기사는 앞뒤 다 잘라먹고 제가 먼저 사진 찍어서 OO가 맞은 걸로 기사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기사들은 무시하시고 이 얘기를 믿어 주세요."


6일 오전 1시께 페이스북을 통해 널리 공유된 게시물 중 일부다. 주옥순씨에게 맞은 피해 당사자와 함께 있던 친구라고 밝힌 학생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들은 먼저 때린 적이 없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것이다. 경찰에 체포된 주옥순씨는 "자신도 학생들에게 맞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리적 폭력을 쓴 것도 문제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학생에게 "부모님과 함께 왔느냐"고 먼저 물었다는 것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 엄마부대가 그간 어버이연합과 함께 보수단체의 집회를 사실상 이끌었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까지 손찌검을 한 주옥순씨의 행태는 용서하기 힘들다.

"이런 어른들이라 미안하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사람들이 운집한 집회시위 공간에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인물이 '엄마부대'라는 해괴망측하고 모욕적인 이름의 단체를 이끌고 있다니. '송파할머니'가 언급한 그 노인들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어른들이 더 문제다. 만약 청소년의 정치참여가 일상화되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연령이 더 낮았다면, 그랬어도 이런 '사건'이 벌어지고 피해자가 발생했을까.

6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인하하고 투표시간을 오후 9시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취지가 포함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투표권 확대를 위해 선거권 및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고 투표시간을 현행 오후 6시에서 오후 9시까지 연장하자는 것이다.

지난 3일 국민의당 역시 수석부대표인 김관영 의원이 선거연령 하향 개정안이 담긴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한국 YMCA 역시 선거연령을 낮추는 참정권 운동을 벌여나가는 중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간 취지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정치적 이해와 득실에 따라 선거연령을 낮추는 것에 대해 반대에 부딪쳐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10대들의 분노와 목소리가 폭발한 이번 광화문광장 집회가 선거연령 인하에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그러나 선거연령 하향과 같은 현실적 과제도 과제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대목은 역시 10대들과 학생들의 여론 그 자체일 것이다. '나쁜 어른'이 강행한 국정교과서의 역사왜곡에 시달릴 당사자들이, 경쟁사회에 내몰리다 못해 정유라라는 금수저의 국가적 전횡에 신음해야 하는 또래들도, 그리하여 그 어른들이 망쳐 버린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자 광장으로 뛰쳐 나온 이들도 이들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제 광화문에서 못 해 준 말을 지면으로 대신하면 이 정도일 것 같다.

"이런 어른들이라서, 저런 대통령을 지금까지 그냥 놔둬서 정말 미안합니다. 함께 싸웁시다.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망가져 버린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을 정상화 시켜 보아요."


태그:#박근혜, #최순실, #하야, #집회, #중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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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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