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저녁 광화문 씨네큐브에게 개막한 14회 아사아나국제단편영화제 개막식

3일 저녁 광화문 씨네큐브에게 개막한 14회 아사아나국제단편영화제 개막식 ⓒ 성하훈


25분의 단편영화 상영이 끝나자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합창단 교사의 부당한 처사에 문제의식을 가진 아이들이 연대하고 단결해 이를 극복해 내는 과정은 관객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영화 속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는 듯했다.  

3일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1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가 개막했다. 121개국에서 5327편이 출품될 만큼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졌고, 세계단편영화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영화제인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전폭적인 후원 속에 치러지는 국내 대표 단편영화제다. 안성기 손숙 이사장의 개막선언과 축하공연, 심사위원 소개가 끝난 후 개막작 <싱> 상영이 이어졌다.

올해 개막작은 어느 때보다 단연 눈길을 끌었다. 외국 단편에서 요즘 최순실 게이트로 복잡한 정국 현실이 겹쳐진 덕분이다. 헝가리 영화 <싱>은 교내 합창단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에 대해 아이들이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짧은 영화 한 편이었지만 관객들이 느끼는 공감지수가 상당히 높았던 듯, 상영이 끝난 후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배우 박중훈은 기립박수로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영화 <싱> 스틸컷

영화 <싱> 스틸컷 ⓒ 크리스토프 데아크


기립박수 보낸 박중훈

헝가리 단편 <싱>은 전학생 조피가 대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교내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휘 교사는 상당히 좋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이들에게 잔인한 사람이다. 연습을 마친 후 합창단 지휘 교사는 조피를 따로 불러 노래 실력이 안 좋으니 소리 내지 말고 입모양만 따라서 하라고 말한다. 노래를 하고 싶었던 조피에게는 충격이었지만 노래 실력이 없는 게 알려지면 창피할 테니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 말하는 데야 따를 수밖에 없다.  

합창대회를 앞두고 연습에 몰두하는 가운데 노래 실력이 좋은 조피의 친구는 조피가 소리를 내지 않은 것에 의아스러움을 갖게 된다, 친구의 물음에 조피는 비밀을 지켜달라고 말하며 지휘 교사의 지시임을 털어놓고는 서러움에 눈물짓는다. 그런데 조피처럼 입모양으로만 노래하는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닌 것을 확인한 친구는 연습 도중 항의하고, 지휘 교사는 결국 자신이 여러 아이들에게 그런 지시를 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여러 합창대회서 수상하고 좋은 평가를 받아야 노래 못하는 다른 친구들도 합창단으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지휘 교사의 논리였다. 자신의 결정이 부득이 하다고 변명하면서 그대로 밀어붙인다.  

그러나 조피와 조피의 친구는 이 부조리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결국 행동에 나선다. 대회가 열리기 전 조피아 친구는 모든 합창단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자신들의 생각을 전달한다. 이윽고 합창대회날 무대에 올라간 아이들은 반주가 나오자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벙긋한다. 순간 당황한 지휘교사가 소리를 내라고 거듭 다그치지만 아이들은 요지부동이다. 결국 화가 난 지휘자가 어쩔 줄 몰라 하다 무대에서 사라지자 그때서야 아이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으면서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변명만 하고 자기 식대로 밀어붙이던 지휘 교사가 퇴장하는 순간은, 아이들의 정의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몇몇 학생에게만 의지해 많은 합창단 아이들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대중을 속이며 외형적으로만 좋게 보이게 합창단을 이끌던 지휘 교사는 아이들에 의해 밀려난다. 최근 우리 정치 현실을 은유적으로 빗댄 것으로 보여질 만큼 상징적인 영화였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통령의 선택지를 알려주는 듯했다.

이준익 감독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3일 저녁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 1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개막작 <싱>의 크리스토프 데아크 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옆은 지세연 프로그래머

3일 저녁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 1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개막작 <싱>의 크리스토프 데아크 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옆은 지세연 프로그래머 ⓒ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싱>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지세연 프로그래머는 작품을 소개하며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현실이 반영돼 있음을 넌지시 언급했다. 영화를 연출한 크리스토프 데아크 감독은 "아이들에게 정의를 가르치기 보다는 아이들의 정의를 지켜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준익 감독은 "청와대에 추천하고 싶은 영화"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감독은 "25분밖에 안 되니까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꼭 좀 보고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며 "'아이들의 정의를 지켜주는 게 중요하다'는 감독의 말 또한 상당히 멋있다"고 말했다.

권위와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복잡한 시국에 영화로 입장표명을 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프로그래머의 선택은 절묘했다. 3일 개막한 1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오는 8일까지 6일간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개최된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손숙 안성기 금호아시아나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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