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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촌, 마을 꼭대기에 절집이 있는 동네서 나고 자랐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귀로 들리는 절은 좋았습니다. 시간을 맞춰 울려주던 종소리도 듣기 좋았고,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던 목탁소리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눈으로 보는 절은 무서웠습니다. 너무 조용하고 무섭도록 알록달록했습니다. 아주 작은 절이라 여느 큰절처럼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천왕상들이 없었는데도 무서웠습니다.

어려서 보았던 것들 중 가장 화려했던 것은 죽은 사람을 싣고 나가던 상여였습니다. 절집이 죽은 사람을 싣고 나가던 상여만큼이나 알록달록하게 화려해서 무서웠을지도 모릅니다. 학교를 다니며 역사와 문화를 배우며 절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섭도록 조용했던 그 침묵은 수행공간이 갖는 암시적 분위기였고, 너무나 알록달록해 무섭기조차 했던 그 문양과 그림, 문양과 그림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선 하나의 색깔마다 상징과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았습니다. 절 그 자체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엄청난 보물이라는 것도 알았니다.

우리나라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 중 절에 있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절에 있는 법당 자체가 국보인 경우도 있고, 법당에 모셔진 불상, 절 마당에 세워진 탑, 야단법석 때 내걸리는 탱화는 물론 범종과 같은 불구가 문화재인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사진과 설명으로 듣는 <사찰불화 명작강의>

<사찰불화 명작강의> / 글쓴이 강소연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10월 20일 / 값 20,000원
 <사찰불화 명작강의> / 글쓴이 강소연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10월 20일 / 값 20,000원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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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불화 명작강의>(글쓴이 강소연, 펴낸곳 불광출판사)는 우리나라 크고 작은 절에 있는 불화 중 우리가 꼭 한번은 봐야 할 국보급 불화 11점을 사진을 곁들여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책에서 새길 수 있는 불화는 무위사 <아미타삼존도>와 <관세음보살도>, 해인사 <영산회상도>, 동화사 <극락구품도>, 용문사 <화장찰해도>, 쌍계사 <노사나불도>, 법주사 <팔상도>, 운흥사 <관세음보살도>, 갑사 <삼신불도>, 직지사 <삼불화도>, 안양암 <지장시왕도>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불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고 보면 그냥 알록달록한 그림에 불과하지만 배경으로 스며있는 이런 의미와 저런 상징까지를 알아가며 보면 새길 것과 익힐 것들이 엄청난 명작들입니다.

불교신자라면 불교적 의미까지를 곁들여 새기면 되고, 불교신자가 아니라면 역사와 문화에 깃들어 있는 의미만을 새기기에도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게 불화들입니다.

보고 있으면서도 정작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절엘 자주다니다보니 절엘 가면 꼭 봐야 할 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질문을 하는 의도에 따라 답은 달라집니다. 하지만 그 절에서 꼭 봐야할 경치나 풍경이 어디냐는 질문엔 '부처님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보라'고 대답합니다. 부처님이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난 문을 활짝 열고 보면 아마 그쪽 풍경이 그 절에 가장 잘 어울리거나 멋진 풍경일 거라는 덧말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불화에서 주의해 보아야 할 가장 핵심적인 표현은 '광명'입니다. 광명이란 무명과 번뇌를 비추는 지혜와 자비의 빛입니다. 이 지혜와 자비의 빛은 주생을 일깨우는 불성(佛性)입니다. 불성을 의인화한 부처님과 보살님의 몸에서는 항상 청정한 광명이 발산됩니다. 이 광명을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의 광배로 표현합니다.' - 55쪽

책에서 저자는 불화에서 꼭 챙겨봐야 할 핵심 포인트는 광명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화에 사용된 재료들 질감은 물론 세월의 더께까지 덕지덕지 느껴질 것 같은 사진, 트집을 잡듯 이어지는 세세한 설명은 불화에 담긴 의미와 상징, 역사적 배경과 구불구불한 전설까지를 두루두루 아우릅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쉰둥이

'화면을 보면 좌측 하단에 청기와 지붕의 궁궐이 보이고 화려한 비단 휘장 사이로 아름다운 마야부인이 편안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포착됩니다. 양측에서 보좌하는 시녀들도 같이 잠들어 있습니다. 마야부인의 머리끝에서 피어오르는 한줄기의 서기는 점점 굵게 소용돌이치더니 급기야 화면의 우측 상단을 가득 채웁니다.' - 164쪽

이 글은 법주사 팔상전에 있는 '팔상도'의 첫 장면인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에 대한 설명 중 일부입니다. 석가모니의 일대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여덟 장면으로 추려 여덟 폭의 그림으로 그린 그림을 '팔상도'라고 합니다. 그 '팔상도'가 있는 전각이 '팔상전'입니다. 팔상도 중 첫 번째 그림은 '도솔래의상'으로, '도솔래의상'은 석가모니부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태자가 될 석가모니부처를 잉태하는 태몽을 꾸는 장면입니다. 

석가모니부처는 아버지인 정반왕이 쉰 살이 넘은 나이에 태어났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석가모니는 쉰둥이입니다. 쉰이 넘은 나이에 아내인 마야부인이 꾼 태몽을 듣고 좋아했을 정반왕의 모습이 덤으로 그려집니다.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국보급 불화들이기에 직접 실문을 보며 감상하는 게 제일 좋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절을 찾아다닌다 해도 국보급을 소장 관리하는 데 따르는 제한적 무게가 있으니 이런 사정과 저런 까닭으로 아무때나 쉬 볼 수 있지는 않을 겁니다.  

설사 볼 수 있다고 해도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본다면 눈으로 보는 불화는 국보급이 분명하지만 감상으로 새기는 불화는 그저 알록달록한 그림에 불과할 것입니다. 불화나 명작 감상으로 일독하는 <사찰불화 명작강의>는 가만히 앉아서 국보급 불화 11점을 되새김질을 하듯 꼼꼼히 새기며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사찰불화 명작강의> / 글쓴이 강소연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10월 20일 / 값 20,000원



사찰불화 명작강의 - 우리가 꼭 한 번 봐야 할 국보급 베스트 10

강소연 지음, 불광출판사(2016)


태그:#사찰불화 명작강의, #강소연,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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