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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돌림풀이'와 '겹말풀이'를 벗기는가?
글쓴이는 2016년 6월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라는 작은 한국말사전(국어사전)을 한 권 써냈습니다. 이 작은 한국말사전을 써내려고 다른 한국말사전을 살피는 동안, 한국에서 그동안 나온 사전은 하나같이 돌림풀이와 겹말풀이에 갇혀서 한국말을 제대로 밝히거나 알리는 구실을 거의 못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쓴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는 '한국말을 새롭게 손질한 뜻풀이'만 실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에서는 못 싣거나 못 다룬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내 보려 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고 하는 두 가지 사전(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하고 북녘에서 내놓은 한 가지 사전(조선말대사전)에 실린 뜻풀이를 살피면서, 앞으로 한국말이 새롭게 나아가거나 거듭나야 할 길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말을 익힐 적에는 사전을 곁에 놓습니다. 영어를 익힐 적에는 영어사전을 곁에 놓고, 일본말을 익힐 적에는 일본말사전을 곁에 놓습니다. 그러면 한국말을 익힐 적에는 어떻게 할까요? 마땅히 한국말사전을 곁에 놓을 텐데, 정작 한국사람 가운데 한국말사전을 곁에 놓고서 한국말을 익히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사전을 어떻게 찾는가를 가르칩니다만, 어린이가 중학교에 들고부터는 한국말사전을 살피는 일이 매우 드물다고 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입시에 얽매인 탓도 크지만, 학교나 사회에서 어린이와 푸름이가 한국말을 제대로 익히도록 북돋우려는 흐름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표준말하고 띄어쓰기에 지나치게 얽매이면서 막상 말을 말답게 살피고 익히도록 이끌지는 못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수확하다(收穫-) : 1. 익은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다
거두어들이다 : 1. 곡식이나 열매 따위를 한데 모으거나 수확하다
거두다 : 1. 곡식이나 열매 따위를 수확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수확하다(收穫-) : 익은 것을 거두어들이다
거두어들이다 : 한데 모으거나 수확하다
거두다 : 5. 수확하여 한곳에 모으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수확하다(收穫-) :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다
거두어들이다 : 2. 수확을 보다
거두다 : 2. (수확, 성과, 승리 등을) 얻다

나락이 익어 즐겁게 거두는 가을입니다. 이 가을에 시골에서는 나락을 베느라 부산합니다. 가을에 나락을 베는 일을 두고 '가을걷이'라 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은 '가을걷이 : = 추수(秋收)'로 다룹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가을걷이 =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들임'으로 다룹니다. 가을걷이는 으레 벼를 베는 일을 가리키고, 시골에서는 '벼베기'라는 낱말도 쓰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벼베기'라는 낱말이 안 실립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벼베기'를 올림말로 다루고 "다 익은 벼를 낫 따위로 베어 거두어들이는 일"로 풀이합니다.

농협이나 관청에서는 흔히 '수확'이라는 한자말을 써요. 남북녘 사전에서 한자말 '수확'을 찾아보면 모두 '거두어들이다'로 풀이합니다. 그래서 '거두어들이다'를 다시 찾아보면 '수확하다'나 '수확을 보다'로 풀이합니다. 돌림풀이에요. 비슷한말인 '거두다'도 '수확하다'로 풀이하는 사전들입니다.

이 같은 돌림풀이를 털어야겠어요. 먼저 '수확하다(收穫-) : → 거두어들이다'로 다루어 봅니다. 뜻이 같은 한자말하고 한국말이 있을 적에는 사람들이 한국말을 알맞게 살펴서 쓰도록 사전에 도와야지 싶습니다. 다음으로 '거두어들이다·거두다'에서는 '거두어들이다 = 거두다 + 들이다' 얼거리라는 대목을 살펴봅니다. '거두어들이다'에는 두 가지 몸짓이 깃든다고 여겨야 합니다. '거두다'는 곡식이나 열매를 베거나 따는 몸짓으로 얻는 모습을 나타낸다는 뜻을 밝히고, '거두어들이다'는 '거두다'를 한 몸짓에서 '들이다'를 하는 몸짓을 붙여 주면 됩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수확하다(收穫-) : → 거두어들이다
거두어들이다 : 1. 곡식이나 열매를 베거나 따서 얻으며 한곳에 모으다
거두다 : 1. 곡식이나 열매를 베거나 따서 얻다

가을걷이나 벼베기는 '시골일'입니다. 시골에서 하기에 시골일입니다. 이는 '시골살림'이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하는 일을 흔히 '농업·농사'라는 한자말로만 나타내지만, 시골에서는 '들일·논일·밭일'처럼 말합니다. 들일하고 논일하고 밭일을 아우르자면 '시골일'이라 할 만하고, 시골에서 삶을 짓는 모습은 '시골살림'이라는 낱말로 새롭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몇 가지 낱말을 살피면 뜻밖에 모두 깎아내리거나 얕보는 느낌이 깃든다고 합니다. '시골뜨기' 같은 말을 쓰기도 하는데, '-뜨기'를 붙일 적에는 얕잡는 느낌을 담을 테지요. 시골뜨기하고 맞물려 '서울뜨기' 같은 낱말도 써요. '서울뜨기'는 서울사람을 얕잡는 느낌을 담습니다. 그렇지만 '-내기'를 붙일 적에는 어느 고장에서 나고 자랐다는 뜻과 느낌만 밝혀야지 싶습니다. '시골내기·서울내기'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하고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 나타내는 낱말로 다루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시골'을 뜻하는 한자 '村'을 붙여 '촌스럽다'라 하면 어수룩하거나 엉성한 모습을 가리킨다고 사전에서 다룹니다. 한자 '촌'을 쓰지 않은 '시골스럽다'를 놓고도 시골다운 모습을 얕잡는 뜻을 붙이는 사전이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촌닭(村-) : 1. 시골의 닭 2. 촌스럽고 어릿어릿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촌스럽다(村-) :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
시골스럽다 : 보기에 시골의 분위기와 같은 데가 있다
시골내기 : 시골에서 나서 자란 사람을 이르는 말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촌닭(村-) : 1. 촌에서 키우는 닭 2.촌스럽고 어수룩하면서 생기가 없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촌스럽다(村-) : 세련된 맛이 없이 엉성하고 어색한 데가 있다
시골스럽다 : 세련되지 못하고 숫되고 어색한 데가 있다
시골내기 :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북녘 조선말대사전)
촌닭(村-) : 촌에서 기르는 닭
촌스럽다(村-) : 1. 촌맛이 나는데가 많다 2. 세련된 맛이 없고 어수룩해 보이는데가 있다
시골스럽다 : x
시골내기 :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말

'촌닭·촌스럽다' 같은 낱말은 화살표를 써서 '시골닭·시골스럽다'를 찾아보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시골닭' 뜻풀이에서는 사람들이 '시골스러움'을 함부로 얕잡는 말투가 알맞지 않다는 대목을 밝혀 볼 수 있습니다. '촌맛·촌티' 같은 낱말도 화살표를 써서 '시골맛·시골티'를 찾아보도록 이끌고, '시골맛·시골티'에 시골을 얕잡거나 깎아내리려는 뜻은 털어내고, "시골스러운 맛"하고 "시골스러운 티"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풀이를 붙여야지 싶어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촌닭(村-) : → 시골닭
촌스럽다(村-) : → 시골스럽다
시골닭 : 1. 시골에서 키우거나 시골에서 사는 닭 2. 도시스럽지 못한 사람을 보며 어수룩하다고 놀리려는 마음으로 도시사람이 쓰는 말이나, 이는 이웃을 깎아내리려는 얄궂은 쓰임새이다
시골스럽다 : 시골다운 느낌이나 맛이 있다
시골내기 : 시골에서 나서 자란 사람

사전은 모든 낱말을 담아내려는 광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낱말을 담아내려고 하는 뜻이 나쁘지는 않으나, 더 많은 낱말을 사전에 담으려 하기 앞서, 말뜻하고 말결하고 말넋을 찬찬히 살피는 구실을 먼저 해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말을 익히도록 북돋우고, 사람들이 말을 사랑하면서 손수 가꾸도록 이끄는 구실을 슬기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손수'라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남북녘 모두 '손수'를 풀이하면서 '직접'이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직접'을 풀이할 적에 '개재'라는 한자말을 쓰는데, 다시 사전을 살피면 '개재'는 고쳐쓸 낱말로 다룹니다. 그렇다면 '개재'라는 한자말로 '직접'을 풀이한 모습은 잘못이 될 테지요.

(표준국어대사전)
손수 : 남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 제 손으로 직접
직접(直接) : 중간에 아무것도 개재시키지 아니하고 바로
개재(介在) : 어떤 것들 사이에 끼여 있음. '끼어듦', '끼여 있음'으로 순화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손수 : 직접 자기 손으로
직접(直接) : 중간에 아무것도 끼거나 거치지 않고 바로
개재(介在) : 어떤 일이나 사실에 어떠한 요소가 사이에 끼여 있음

(북녘 조선말대사전)
손수 : 1. '자신의 손으로 직접'의 뜻으로 높이어 부르는 말 2. 제 손으로 직접
직접(直接) : 중간에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개재(介在) : 어떤 관계를 가진 둘사이에 제삼자가 끼여있는것

예전에는 누구나 그냥 글씨를 쓰고 빨래를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따로 '손글씨'나 '손빨래'라는 낱말을 씁니다. '손글씨'는 아직 사전에 못 오르지만 '손빨래'는 어느새 사전에 오릅니다. 곧 '손글씨'도 사전에 오르리라 봅니다. 이뿐 아니라 '손-'도 따로 앞가지로 다루어서 "손수 하는 일"을 가리키는 자리에 붙여서 쓰도록 이끌 만해요.

이러한 쓰임새를 헤아린다면 '손수' 말풀이는 퍽 쉽게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한자말 '직접'도 뜻풀이를 손질해서 '손수'나 '바로' 같은 한국말을 찬찬히 생각해서 쓰도록 이끌 수 있어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손수 : 다른 힘을 빌리지 않고 제 손으로
직접(直接) : 사이에 아무것도 끼거나 거치지 않고. '바로·곧바로·손수' 같은 뜻으로 쓴다
개재·개재하다(介在-) : → 끼어들다·끼다

한국은 한국말사전을 한국사람 손으로 지은 지 얼마 안 됩니다. 게다가 한국말사전을 지은 사람들은 몇 없기도 합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다듬거나 가꾸는 일을 하는 사람이나 모임은 무척 가난하거나 힘든 길을 걷기까지 합니다.

부피가 커다랗거나 번듯한 '큰 사전'은 앞으로 백 해나 이백 해나 삼백 해쯤 지나서 하도록 뒷사람한테 맡겨야지 싶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살피고 사랑하고 가꾸고 돌보고 어루만지고 손질하는 데에 조금 더 힘을 쓴다면 한결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바탕이 서지 못한 채 올림말 숫자만 많은 사전이라면 오늘날에도 앞날에도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느껴요. 오늘 우리는 '더 큰 사전'보다는 '바탕이 제대로 선 작은 사전'부터 제대로 엮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누리집(http://www.gyeoremal.or.kr)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국어사전, #한국말사전, #한국말, #돌림풀이,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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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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