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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은 엄마가 회사에 가지 말고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어렵사리 속마음을 드러내는 아이를 보면서 등을 돌려 일하러 나가는 마음은 참 복잡합니다. 누가 시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아닌데, 둘 사이의 균형을 지키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일상이 참 버겁게 느껴질 때도 많죠.


일과 달리 육아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육아란 평생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한 사람이 온전히 남을 위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의 힘듦은 전업맘이나 워킹맘이나 매한가지이죠.


엄마가 일을 한다고 아이가 밤잠을 더 잘 자거나, 엄마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밥을 더 잘 먹는 것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워킹맘이 아이를 키우며 일까지 함께 하는 것은 아이만 키우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힘들다고 불평을 하곤 합니다.


지나고 나서야 그 시절의 아이가 얼마나 예뻤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 육아인지라 일을 병행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성장이 주는 즐거움이나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하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 외에도 아이의 성장을 온전히 지켜보고 싶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너무 좋아서 퇴사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것, 그 소중한 것을 내려놓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겁니다.


단순히 일이 적성에 맞거나 아이를 돌보는 일이 서툴기 때문에 더 능숙한 것 - 일을 한다는 이유 말고도 왜 워킹맘이 일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워킹맘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가치가 있더군요.


즉 워킹맘이기 때문에 혹은 워킹맘이라는 것 덕분에 누릴 수 있는 것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일하지 않았다면 누리지 못할 사치에 가까운 것들이었는데요.


무려 일곱 가지나 꼽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사치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입니다


늘 충분치는 않지만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자유는 일을 하는 가장 큰 목적 중에 하나가 아닐까요? 직장에서 맡은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보람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하지만 거대한 조직에서 늘 적성에 맞는 일을 하게 되기가 힘들기 때문에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합니다.


생계형 워킹맘으로 맞벌이를 반드시 해야 하는 저희 가족의 경우에도,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힘들지만 매월 정해진 날에 (비록 스쳐 지나갈 때도 많지만)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머니, money)를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육아 대신 일을 선택함으로써 얻는 돈(머니)으로 가족이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고, 원하는 공부를 가르쳐줄 수 있으며 가족의 편안한 생활과 노후 준비를 해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임에 분명합니다.

 

두 번째는 승진, 조직의 인정입니다


어떤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 그곳에서 내가 한 일을 인정받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요. 모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에서 인정받는 방법 중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금전적인 보상과 승진, 그리고 상사의 칭찬이라고 하는데요.


상사의 칭찬이 거듭되면 승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금전적인 보상과 더불어 승진은 직장을 다니는 가장 큰 목적 중에 하나가 되는 거죠.


워킹맘 혹은 여성의 경우 아직까지도 조직에서 유리천장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아 승진의 기회가 적기도 하고 승진이라는 보상은 여자가 아니더라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승진이라는 이벤트를 겪을 때마다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를 낳고 겨우 두 번에 불과했지만 저 역시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아직 직급의 위아래, 아니 직급이라는 단어의 개념도 없는 아이들에게 괜히 자랑을 하곤 했습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승진에 대한 욕심은 버린지 오래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하고 얻게 되는 보상은 즐겁기만 합니다.


반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가사와 육아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육아만 하는 경우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습니다. 남편이 가사 일을 분담하고 육아에 앞장서는 분위기가 조금씩 조성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도와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아이를 키워내는 일은 사회적 소명의식 없이는 할 수 없다는 인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세 번째는 소속감입니다

 

직장에서 선배들이 퇴직을 하며 가장 아쉬운 것을 월급 외 소속감으로 꼽았습니다.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둔 엄마들 역시 이 부분을 많이 아쉬워했는데요. 회사에서는 직책으로 불리다가 동네 커뮤니티에서는 누구 엄마, 누구 씨로 불리며 조직이 부여해준 이름을 상실하는 상황을 무척 어색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분명 저라는 개인은 조직원이기 전에 가족의 한 구성원이고 누군가의 딸, 엄마, 아내이기도 합니다만 사회활동을 통해 불리는 이름, 직책을 통해 소속감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을 그만두면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소득도 없어지죠. 마찬가지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딘가 갈 곳이 있고, 소속되어 있다는 것, 나를 불러주는 이름 - 직장에서는 직책 명 - 이 퇴직을 통해 상실된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때로는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고 한 번도 직장을 쉬어본 경험이 없는 저의 경우에는 소속이 없어진다는 사실에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출산 휴가조차 힘겹게 시간을 흘려 보냈습니다.


긴 휴직 기간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을 때 더욱 열심히 일한 것은 일에서 얼른 포지셔닝을 해야 한다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되찾은 소속감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네 번째는 휴가입니다


돌아갈 곳이 있는 휴가는 아쉽지만 달콤합니다. 이번 여름에는 아이들과 처음으로 해외 유명 휴가지에 다녀왔는데요. 여행이란 늘 즐겁지만 며칠 지나니까 번잡스러운 휴가지보다 고요한 우리 집 생각이 나더군요.


혹은 아이들과 지속적인 부딪침에서 벗어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분명 계속 놀거나 쉬지 못해 아쉬운 점도 있지만 경제활동을 통해 다음 여행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이 계속 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집에서 육아만 하다 보면 일과 육아의 경계가 모호해져 일해도 일하는 것이 아니고,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닌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가사와 육아가 지닌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사의 일은 가치를 인정받을 뿐더러 일과 육아의 경계를 휴가라는 이름으로 분명히 구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휴가를 통해 누리는 시간적 자유가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다섯 번째는 어른 사람과의 어울림입니다


일을 하지 않으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고, 때로는 일거수 일투족 수발해주어야 하는 아이를 24시간 돌보는 일을 하다 보면 나 자신을 상실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워킹맘은 잠시 아이와 떨어진 시간에 어른 사람과 함께 합니다. 어떤 경우든 일을 하려면 어른 사람과의 접촉은 불가피하거든요. 불통인 상사나 귀머거리 부하, 갑질하는 고객이 드물게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상식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때로는 일이 잘 풀렸을 때 성취감을 공유할 수 있는 어른 사람과의 어울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힘든 하루를 겪은 때에는 고갈된 에너지로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어른 사람과의 어울림을 통해 장시간 아이와 떨어져 있었더라도 다시 아이와 만났을 때 재생산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는 엄마들의 경우에도 반드시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해서 정신적인 에너지를 회복한 뒤 아이를 대하라고 충고해주는 처방이 많다고 합니다. 혼자 일하거나, 혼자 육아하는 것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좀 더 짧은 시간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다양한 대화 주제입니다


17년간의 직장생활 중 출산으로 15개월, 가족 병간호를 위해 9개월, 총 2년의 휴직 기간을 거친 경험이 있는데요. 분명 직장생활을 해왔고, 꾸준히 독서나 문화센터 등을 통해 자기계발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있는 기간 동안 남편과 나눈 대화의 9할은 아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부부가 일을 함으로써 대화의 주제가 아이의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됩니다. 조직 혹은 업무에 대한 이야기, 회사에서 못한 직장 상사나 후배에 대한 이야기, 다양한 사회경제 이슈, 특히 (저도 소득이 있기 때문에) 돈에 대해 이야기를 나룰 수 있었습니다.


똑같은 육아에 관한 이야기지만 직급이 올라가 후배들을 접하면서 달라진 성장환경, 조직관리에 대해 생각해보고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남편과 얘기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하루 종일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들 육아가 더 쉬워지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 상황에서 한발 물러서서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면 좀 더 나은 효과를 얻기도 하더군요.


일곱 번째는 사회적 성장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는 점점 더 어른이 됩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만을 위해 살았던 한 사람이 아이를 낳고 난 다음에는 더 큰 배려와 대가 없는 희생의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모든 엄마가 겪는 성장,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는 이런 성장을 일하는 엄마는 사회생활을 통해 타인과 나눌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아이가 있는 사람은 생각의 깊이가 다른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일을 잘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에게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일은 훨씬 더 잘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육아를 경험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상황을 다르게 보는 시각을 가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일하지 않는 경우 성장한 자신을 드러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전업맘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업주부 역시 전업맘dl라는 이름 이외의 직업이 필요함을 많이 느끼고 있다는 얘기죠.


일본에서는 이런 주부들이 '사로네제'라는 이름으로 집에서 살롱처럼 사람들을 초대해 약간의 수고료를 받으며 가지고 있는 재능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리같은 취미활동이 제2의 직업이 되기도 하고, 육아전문가로 거듭나는 겁니다. 이런 변화는 육아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사회적 성장 역시 삶에 중요한 축으로 작용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워킹맘을 유지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아직 사회가 충분히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저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일과 비교 불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라도 일하는 것이 육아와 비교했을 때 어떤 가치가 있는지 꼽아보고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고 애쓰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장을 다님으로써 아이의 소중한 성장과정을 놓치는 일이 빈번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아플 때 바로 병원에 데려가 주지 못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눈을 마주치며 함께 웃어주지 못하는 많은 순간들은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가치로는 절대로 대체시킬 수 없을 겁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를 돌볼 환경을 만들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는 엄마들도 있지만 아이의 성장과정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그 과정을 놓치지 않고 함께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 좀 더 아이를 잘 키워내기 위해 아이의 일상에 집착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누구누구의 엄마로서 올인하게 되더군요.


그러다가 아이가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을 때, 빈둥지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사례는 신문기사로도 종종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일생 전체를 부모가 함께 할 수 없듯이 서로 간에 공유되지 못하는 시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직 엄마의 일을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라 안타까울 때도 많지만 엄마가 일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아이도 배워야 합니다. 성장한 아이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려고 할 때 워킹맘이 버텨낸 직장의 가치가 더욱 커질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워킹맘육아, #워킹맘, #쌍둥이육아,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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