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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 번도 저희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1일 오후 2시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1000여 명의 당원들이 모인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한 대학생이 쭈뼛거리며 단상 위에 올랐다. 이날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 국민보고대회'에서 청년을 대표해 연설을 한 이소라(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씨였다.

자리가 어색한 듯, "많이 떨리네요"라며 연설을 시작한 이씨는 "대한민국 최고 치맛바람인 최순실의 힘으로, 정씨만을 위한 대학 학칙 개정, 지도교수 교체 등 우주의 기운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능력을 보며 참으로 놀라웠다"라고 말하며 청중으로부터 웃음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을 이어가던 이씨는 이내 울먹였다.

"취업·스펙·장학금…. 하아, 제가 너무 화가나서요. 취업·스펙·장학금 등을 위해…. 학점 관리를 열심히 하는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현실과 정유라씨가 살아온 삶은 너무나 대조됐습니다."

이씨는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이란 이유로 각종 특혜를 받아 온 정유라씨와 자신, 그리고 자신의 주변 친구들을 떠올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목을 추스른 채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특권을 그들이 누릴 수 있게 허락한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저희가 살았다는 것에 정말 배신감을 느낀다"라고 말을 이어가던 이씨는, 정씨의 SNS 글을 거론하며 다시 눈물을 훔쳤다.

"제가 더 화가 났던 건 정씨가 과거 SNS에 '돈도 실력이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을 작성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저희 학생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저희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누구와는 다르게 특별한 집안에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항상 근면한 모습으로 저희를 위해 희생하신 우리 부모님을 항상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건 저 뿐만이 아닌 대한민국 모든 청년이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그 권력 이용해 책임 물을 것"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진상규명 보고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검찰조사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추미애 "박근혜를 조사하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진상규명 보고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검찰조사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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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숨을 고른 이씨는, 단호한 어투로 전날 이경재 변호사(최순실씨 변호인)가 한 말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씨가 검찰에 출석한 뒤, 이 변호사는 아직 귀국하지 않은 정씨를 두고 "풍파를 견딜 나이가 아니다"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이씨는 "진정 풍파를 겪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20대 청년들이며,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우리 국민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씨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며 "그들이 허용되지 않은 권력을 누린 만큼, 저희는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력을 이용해 그들에게 책임을 물게 할 것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이씨는 "그들과 달리 남들이 평소 누릴 수 있는 정당한 행복을 가르쳐주고 키워준 저희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부모님들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라며 연설을 마쳤다.

이씨가 연설을 하는 도중, 그리고 연설을 마친 후에도 현장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국회의원, 지역위원장, 광역·기초의원, 일반당원들은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가 눈물을 흘릴 땐 응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추미애 대표는 이씨가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자 앞으로 나가 이씨를 껴안으며 등을 두드리기도 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도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등 이씨를 격려했다.

이석현 "대통령, 검찰에 세울 것"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의원 및 전국 시도당원들이 1일 오후 국회에서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진상규명 보고대회를 마친 뒤 본청 앞 계단에서 박근혜 대통령 검찰조사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박 대통령을 조사하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의원 및 전국 시도당원들이 1일 오후 국회에서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진상규명 보고대회를 마친 뒤 본청 앞 계단에서 박근혜 대통령 검찰조사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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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보고대회에 참석한 추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은 반드시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 조사받겠다고 발표해달라"라며 "또 총리와 법무장관을 즉각 해임해 성역없는 특검, 대통령 조사도 할 수 있는 특별법에 의한 특검과 국정조사를 들이라"라고 강조했다.

이어 추 대표는 "당정청에 깔려 있는 최순실 부역자를 모두 정리하라"라며 "진심어린 사과, 책임자 정리, 이것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먼저 국민 앞에 보여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추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은 거리에 나선 국민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분노를 억누른 채 대신 국민의 원성에 귀 기울이고 있다"라며 "나라의 정의를 세우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여전히 건재하다.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일을 다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더불어민주당 국민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석현 의원은 "국정감사 증인채택을 가로막고 방해한 정당, 정씨 승마 특혜가 터졌을 때 감싸고 돈 정당, 그 정당이 어디었나"라며 "이런 사람들이 지금은 자기들이 아무 잘못 없는 것처럼, 청와대만 잘못한 것처럼 의리 없이 행동하고 있다. 사람이 무능하고, 잘못됐으면 의리라도 있어야 하는데, (새누리당 모습은) 조폭만도 못하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의원은 "어떤 탄압에도 굽힘없이 국민과 당원을 믿고 반드시 진상을 밝힐 것"이라며 "박 대통령을 검찰 앞에 세우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보고대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당원 1000여 명은 국회 본관 앞으로 이동해 손팻말을 든 채 "국민의 뜻이다, 대통령을 조사하라"라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아래는 이소라씨의 연설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 소재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대학생 당원 이소라입니다. 벌써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3년 전 제가 수능을 봤던 그 때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61만명의 수험생들은 대학 입학을 목표로 추운 날씨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반면 최순실 국정개입 사건과 관련해 딸 정유라씨는 고3 수험생 시절 수업일수가 50일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소위 명문대로 불리는 이화여대에 입학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과정에서도 특혜 논란이 드러나 많은 수험생들과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저와 같은 많은 대학생들에게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치맛바람인 최순실의 힘으로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정씨는 출석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정씨만을 위한 대학 학칙 개정, 지도교수 교체 등 우주의 기운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능력을 보며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정씨의 특혜입학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정씨의 공주학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게 자란 저와 달리, 비선실세인 부모를 둔 덕분에, 정씨는 열심히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남들과 같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학점을 관리하기 위해 밤새 과제와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것과 달리, 정씨는 학점 관리를 딱히 하지 않아도 최순실씨가 학교에만 뜨면 F학점이 B학점이 되는 마술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B학점이라도 받기 위해 당 활동을 하면서 학점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취업, 스펙, 장학금 등을 위해 학점 관리를 열심히 하는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삶의 현실과 정씨가 살아온 삶은 너무나 대조됐습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특권을 그들이 누릴 수 있게 허락한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저희가 살았다는 것에 정말 배신감을 느낍니다.

제가 더 화가 났던 건 정씨가 과거 SNS에 '돈도 실력이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을 작성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저희 학생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저희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누구와는 다르게 특별한 집안에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항상 근면한 모습으로 저희를 위해 희생하신 우리 부모님을 항상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건 저 뿐만이 아닌 대한민국 모든 청년이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글을 보면서 그런 부모를 만난 걸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정씨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딸 정씨가 누리는 행복이 정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행복이 계속 지속될 수 없을 것이며, 지속돼서도 안 됩니다. 어쩌면 지금은 정씨가 자기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저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만약 정씨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면, 신의 수저인 주인공만큼 군면제, 병역비리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그만큼 최순실씨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최순실 변호인 측에서 '정씨가 풍파를 겪을 나이가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진정 풍파를 겪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20대 청년들이며,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우리 국민들입니다. 국민들을 기만하고 농락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사건, 딸 정씨의 특혜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시 그에 따른 엄중한 처벌이 가해져야 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들이 허용되지 않은 권력을 누린 만큼 저희는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력을 이용해 그들에게 책임을 물게 할 것입니다.

끝으로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들과 달리 남들이 평소 누릴 수 있는 정당한 행복을 가르쳐주시고 키워주신 저희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부모님들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태그:#최순실, #박근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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