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소>의 한 장면.

영화 <시소>는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 대명문화공장


한 사람은 앞을 볼 수 없고, 다른 한 사람은 앞만 볼 수 있다. 이 중 앞만 볼 수 있는 사람이 앞을 볼 수 없는 이에게 눈을 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우리에게 개그맨으로 잘 알려진 이동우와 평범한 가장 임재신씨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됐다.

두 사람의 제주 여행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시소>가 31일 오후 서울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첫 상영회를 가졌다. 불편한 몸을 끌고 온 이들의 표정이 평온해 보였다. "뭔가 마음속에 설레는 꿈 하나를 또 꾸게 된 거 같아 여러모로 기쁘다"고 이동우가 심경을 전했다.

서로에게 주어진 선물

이동우는 잘 나가는 개그맨이었다. 결혼 직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이후 그의 사연이 MBC 다큐멘터리로 방송되면서 사람들은 안타까워했지만, 정작 영화에 담긴 그의 모습은 편안했고 초연했다. 이런 변화가 "친구 임재신 덕"이라고 망설임 없이 그는 고백했다. 임재신씨는 근육병 장애로 서서히 힘을 잃다가 이젠 휠체어 없이 거동할 수 없는 상태다. 그의 몸에서 온전한 건 두 눈뿐. MBC 다큐멘터리를 본 임재신씨는 "내 남은 5%를 저 사람에게 주면 100%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기증 의사를 밝혔었다.

이동우는 임재신과 친구가 됐다. 두 눈을 받지 않았지만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는 바로 그런 그들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한 과정을 담았다. 열흘간 제주도 곳곳을 다니며 서로의 눈이 돼주고 힘이 되어주는 과정이 잔잔하게 담겼다. 애초부터 서로에 대한 등불 같은 존재로 인식했기에 갈등이나 사건 발생이 아닌 보다 깊이 있는 탐구 과정이 담기게 됐다.

"라디오 생방송을 가려는데 매니저가 차에서 울고 있더라고요. '형님에게 눈을 준답니다!' 그 말에 차 안에서 출발도 못 하고 많이 울었습니다. 숨을 못 쉬겠더라고요.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 날 방송에서 원고와 상관없이 그 사연을 이야기했죠. 세상이 따뜻하다는 걸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이 그 사연을 알고 이렇게 여행이 시작된 거죠." (이동우)

영화 안에서 주로 이동우가 질문을 던지고 임재신씨가 답을 한다. 가령 "무인도에 딱 세 가지만 가지고 간다면 무얼 가져가고 싶은지" 같은 일반적 질문부터 "만화처럼 우리가 나무가 된다면 어떨까?" 등의 상상이 가득 담긴 질문까지 매우 다양했다. 그럴 때마다 임재신씨는 웃으며 속생각을 터놓는다. 전혀 삶을 원망하거나 찌든 이의 답이 아니다. "나무가 된다면 까마귀를 꾀어 이 사실을 딸에게 전해야지"라는 임재신씨의 대답이 신선하다.

시소 같은 삶

 영화 <시소>의 한 장면.

잔잔하지만 묵직하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만드는 울림이 꽤 크다. ⓒ 대명문화공장


잔잔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묵직함이 커진다. 비단 알려진 연예인의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서로에 대한 탐구 과정이 애정으로 커지고 깊은 이해로 승화되기까지 제법 진솔한 묘사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에겐 의미 없을 수 있는 질문이 이들에겐 주효했다. 무엇이 소중하고 본질이 무엇인지를 두 사람 모두 바라보려 한다. 영화의 중반 이후 이들이 나누는 대화에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

영화의 제목은 이동우의 아이디어였다. 여행 중 맞은 아침에 문득 이 단어를 생각했다는 이동우는 "마주 앉은 친구를 재미있게 할 마음이 없으면 자기도 재미없어지는 게 시소다"라며 "세상이 그런 놀이터 같았으면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고 말했다. 한글로 시소지만 영어제 목은 'See Saw'다. 중의적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화 제안을 선뜻 수락했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며 이동우는 "제가 임재신에게 받은 감동을 바로 생방송으로 전했듯 이 마음을 세상에 더 알리고 싶었다"고 답했다. 임재신씨 역시 "내가 좋아하는 동우 형과 여행한다고 하니 제주에서의 그 시간이 선뜻 응해졌다"고 전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자 딸을 둔 아빠. 그것 말고도 둘은 공통점이 참 많다. 이 모든 게 <시소>에 담겨 있었다. 이동우는 시사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 사름들을 보고 종종 우린 나쁜 사람들이라 한다"며 마음과 생각이 병든 이들을 지칭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함께 생각할 화두 중 하나 아닐까.

"나쁜 사람들이기 전에 아픈 사람들이죠. 그런데 그들은 절대 아프다고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아요. 그리고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죠. 그래서 문제가 되고요. 이 영화를 보고 아픈 분이 있다면 아프다고 고백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한줄평 : 서로를 이해하려는 두 사람의 진실한 몸부림이 마음을 울린다
평점 : ★★★★(4/5)

다큐멘터리 <시소> 관련 정보


제작 : SM C&C
제공 : 대명문화공장
배급 : 대명문화공장, 리틀빅픽쳐스
감독 : 고희영
출연 : 이동우, 임재신
러닝타임 : 76분
개봉 : 2016년 11월 10일(예정)



시소 이동우 임재신 개그맨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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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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