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기사 한눈에

  • 지금 여러분들이 해야 할 공부는 대통령에게, 국회의원에게, 실력보다는 청탁으로 한 자리 꿰차고 있는 어른들을 향해 '당신들의 잘못이야'라고 외치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알려지고 처음 맞는 주말이었던 지난 29일, 약 2만 여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여기에는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을 약 20여 일 앞둔 고3 수험생들도 섞여 있었다. 이들은 "수능 이십일 남았지만 당신의 무능과 기만에 경악을 금치 못해 뛰쳐 나왔습니다"는 격문이 적힌 펼침막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이에 앞서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과 청소년행동 '여명',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 청소년 단체 소속 169명은 같은 날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거리에서 "우리 청소년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 청소년들은 "우리 청소년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이 진짜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행동에 함께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청소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 정권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 붙이듯 추진하자 청소년들은 "대한민국의 역사 교육은 죽었다"고 외쳤다. 12.28한일위안부 합의가 발표되자 청소년들은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이 매주 수요일 시위를 하는 주한일본대사관으로 달려갔다.

청소년들의 행동을 보며 상반된 감정이 교차한다. 어른들은 바른 말 못하고 어떻게든 권력의 환심을 사려고 사슴을 말이라 우기는데, 청소년들이 바른 목소리를 내주니 고맙다. 다른 한편으로 어른들이 잘 못해 미래의 꿈을 키워나가야 할 청소년들을 거리로 내몰았기에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때마다 나이 많고 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어른들은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훈계하기 일쑤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

이런 훈계를 무력화시키도록 조언하고자 이 못난 어른이 몇 자 적고자 한다.

갈릴레이와 케플러의 엇갈린 운명 

지구는 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역사에서 이토록 당연한 사실이 하느님의 절대 진리에 도전하는 금기로 여겨진 시절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종교적 교의가 지배하던 시절, 천체를 연구하다가 재판 받은 비운의 과학자였다. 이탈리아 피사에서 태어난 갈릴레이는 피사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다 수학, 천문학, 물리학에 흥미를 느껴 의학 공부를 그만두고 수학·천문학 연구로 방향을 바꿨다.

그는 망원경으로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당시는 천동설, 즉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행성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학설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폴란드 출신의 사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갈릴레이 탄생 20년 전, "지구는 화성이나 금성 같은 행성 중 하나로 태양 주위를 돈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이른바 지동설이었다.

갈릴레이는 천체를 관찰하면서 금성이 주기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금성의 변화는 기존의 천동설이 아니라, '금성이 태양을 돈다'고 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으로만 설명될 수 있었다.

당시는 가톨릭 교회가 세속 권력을 틀어쥐고 있었다. 가톨릭 교회는 갈릴레이의 연구가 성서와 배치된다고 보았고, 이에 1615년 갈릴레이를 로마 교황청에 고발했다. 교황청 재판은 모골이 송연했다.

갈릴레이가 고발당하기 17년 전 지오르다노 부르노라는 사제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추종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돼 산 채로 화형 당했다. 교황청은 갈릴레이에게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절대로 말이나 글로 주장해서도, 가르쳐서도, 변호해서도 안된다"고 엄중 경고했다.

갈릴레이와 비슷한 시기에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에 관심을 보인 천문학자가 있었다. 바로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였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에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케플러에게 편지를 보내 이 같은 확신을 전했다.

편지를 받은 케플러는 갈릴레이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학계에 인정 받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두 사람은 계속 천체 연구에 매진해 태양흑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갈릴레이는 태양흑점 연구를 글로 정리했고, 케플러는 갈릴레이에게 연구성과를 공개하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에 불려갔다. 반면 케플러는 교회의 간섭을 받지 않았다. 바로 두 사람이 처한 정치상황이 운명을 가른 것이다.

이탈리아는 로마 교황청이 정치와 종교 두 영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교회는 성서 무오류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자연과학의 발견을 배척했다. 반면 알프스 이북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운동이 일고 있었고, 이에 힘입어 성서의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했다. 갈릴레이가 교회의 권위에 짓눌린 반면, 신교도인 케플러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수혜를 입은 셈이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온 나라를 뒤흔드는 2016년 대한민국은 어떨까? 이 나라는 민감한 쟁점현안이 불거지고, 그래서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다 싶기 무섭게 학생들더러 '공부나' 하라는 질타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런 일이 아주 빈번해졌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하자 가장 먼저 중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들었다. 이어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국가정보원이 개입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대학가에서 시국선언이 잇달았고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 이후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럴 때마다 높은 분들은 보수 언론을 통해 공부에 매진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앞서든 갈릴레이와 케플러의 운명이 엇갈린 데서 보듯 공부는 정치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가 바로서야 학생들도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법이다.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하고, 더구나 지금은 비선실세가 국기를 뒤흔들고 있는데, 학생들더러 교실에 처박혀 공부에만 전념하라는 말은 그냥 바보 되라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청소년들과 청년 학생들이여, 지금 당장 거리로 나가라. 지금 여러분들이 해야 할 공부는 대통령에게, 국회의원에게, 실력보다는 청탁으로 한 자리 꿰차고 있는 어른들을 향해 '당신들의 잘못이야'라고 외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미국 뉴욕에 위치한 한인 인터넷 매체 <뉴스M>에 동시 송고한 칼럼입니다. 내용 중 일부는 수정 보강됐습니다.



태그:#비선실세, #청소년 시국선언, #갈릴레이, #요하네스 케플러, #정치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