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중  하나로 문화예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차은택이 문화융성위원으로 있던 당시, 문화융성위원회 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중 하나로 문화예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차은택이 문화융성위원으로 있던 당시, 문화융성위원회 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원로영화인들이 시국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영화계의 대표적 보수 인사들의 시국성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특별하다. 정치적 현안에 거리를 두던 원로보수영화인들이 영화계에서 먼저 시국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원로감독과 촬영, 조명감독 등이 중심을 이룬 영화인들은 31일 정의구현전국영화인연대의 명의로 성명을 발표해 문화예술이 대통령 비선세력에게 농락 당한 데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는 현실과 최근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영화진흥위원회 문제, 영화기관들의 낙하산 인사 등도 싸잡아 비난했다.

"광고업자에게 유린당한 문화예술, 표현의 자유도 침해"

정의구현전국영화인연대는 성명에서 '예술의 꽃인 영화가 최순실과 인연이 있는 차은택이라는 광고업자에게 유린당했다'고 분개했다. 또 '예술가가 아닌 한낮 장사치에 불과한 광고업자가 우리문화와 소위 창조경제의 심장이라고 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까지 차지하고 있고, 다른 영화 관련 투자기관은 편향된 인물들로 구성됐다'며 '영화인의 자유창작을 결박하고 있고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다는 영화 후배들의 외침에 가슴이 아프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어 '광고를 했던 사람이 장관을 하고, 만화를 가르치던 사람이 영화진흥의 수장이 되고, 영화와 관련 없던 사람이 영화진흥의 사무를 총괄하고, 신문사 사진기자가 영상자료원 원장을 하고, 광고사 직원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이라며, 낙하산 인사를 비판했다.

또한 '법인카드로 유흥업소에 출입하고 4억9천여 만원을 사택 관리비, 출장비 등으로  부정 유용한 도덕불감증의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위원회의 심의나 의결 없이 38억짜리 렌더팜 구축 사업 예산을 138억으로 둔갑시킨 만화의 주인공 같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을 거론하며, 이 모든 것이 영화의 역사와 영화제작 현장의 현실을 모르는 낙하산 인사의 병폐'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원로영화인들은 영화계가 허탈해 하고 있는 남양주종합촬영소의 매각 완료에 대해서도 제작비용 상승을 유발하는 한국영화 말살 정책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이어 '낙하산 인사로 인해 왜곡되고, 비틀어지고, 찢겨진 우리 영화계가 제 자리로 돌아가는 날까지 우리 영화감독, 영화기술인, 영화종사자들은 싸우고, 또 싸울 것'이라며 '이 외침은 정파를 초월한 오직 우리 영화를 지키기 위한 양심의 목소리'라고 강조했다.

성명에는 한국영화감독협회 정진우 이사장을 비롯해 김기, 이은수, 황동주 등 70~80년대 활동했던 충무로의 원로감독들과 <리베라메>를 연출한 양윤호 감독, <올드보이> <박쥐> 등에 참여한 박현원 조명감독 등 현장 영화인들이 참여했다. 

영화기관 곳곳 낙하산 인사도 시발점은 최순실?

 최순실-차은택-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최순실-차은택-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 시사IN/연합뉴스/오마이뉴스


영화계는 원로영화인들의 시국성명이 뜻밖이라는 분위기인데, 최근 영화계 현안에 대한 불만이 쌓여 나가던 과정에서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커지자 폭발한 것으로 이해하는 모양새다.

원로영화인들의 지적대로 최순실-차은택-김종덕(전 문화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인연들이 얽히면서 영화관련 기관의 낙하산 인사가 꽃을 피운 것으로 영화인들은 보고 있다. 차은택과 연관 있는 사람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됐고, 이들과 관련 있는 인사들이 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자료원 등에 낙하산으로 떨어졌다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경우 김종덕 문체부 장관이 재임하면서 임명된 김세훈 위원장과 일부 영진위원 등이 장관과 같은 홍대 출신이거나 학연이 얽혀있는 인물들이다. 차은택과 인연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김종덕 전 장관이 자기 사람을 챙긴 인사로 평가되면서 '괄목홍대'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이들을 잘 아는 한 홍대 출신 영화계 인사는 "주로 김 전 장관과 함께 등산모임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규정에 없는 비용을 써서  문제가 드러난 박환문 영진위 사무국장의 비위 사실도 영화와 관련 없는 사람을 낙하산으로 앉히면서 초래된 일이라는 것이 영화인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박환문 사무국장은 영화 일과 무관한 사람을 영진위 사무를 총괄하는 직에 임명해 영화계는 물론 영진위 내부에서도 비판이 많았다.

한국영상자료원장의 경우 아직 구체적인 사항이 나오는 것은 없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인사였다는 점에서 이번 원로영화인들의 낙하산 인사 퇴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서울신문 사진부장을 역임한 류재림 원장이 지난해 10월 임명됐다. 영화와 관련없는 사진기자 출신이 임명된 것에 당시 영화계 인사들이 의구심을 나타내기는 했다.

지난해 영상자료원장 공모에는 보수적 영화평론가협회의 한 이사와 대선 당시 박근혜 선거운동을 한 영화계 인사 등이 지원했으나 신문사 사진부장 출신이 선임되면서 도대체 누구 줄로 된 것이냐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영상자료원 류 원장은 "정식 공모절차를 밟아서 임명된 것일 뿐"이라며 "한국영상자료원 전임 원장도 신문사 사진부국장 출신으로 6년간 업무를 잘 하지 않았냐, 이런 상황에서 영화와 관련성을 지적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시절 임명 영화기관장들 모두 사퇴해야

당시 영상자료원장 공모에 응했던 영화계 인사는 29일 전화통화에서 "이제야 영화관련 기관 인사가 어떤 식으로 났는지 이해가 된다"며 "비선세력에 의해 국정이 농단된 것이 창피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게 부끄러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화예술계가 차은택이라는 사람에 의해 좌우되고 영화계에도 그 영향이 미친 만큼 김종덕 전 장관 시절 임명된 인사들은 모두 사퇴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영화계 쪽으로도 확산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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